스페인 소비자신용이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수준에 근접했다. 은행권의 주력 대출이 주택담보대출에서 수익성이 높은 무담보 소비자신용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과, 스페인 경제의 강한 성장세가 맞물리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2025년 12월 19일, 로이터의 보도에 따르면, 2008~2009년 위기 이후 급감했던 소비자 대출이 재차 증가세를 보이며 최근 18년 만에 최고치에 근접했다. 이는 은행들의 수익성 개선 전략과 소비자 신뢰 회복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사바델은행(Sabadell)의 하부서인 대출 및 결제 담당 부총재 하비에르 가스텔루(Javier Gaztelu)는 “노동시장이 매우 견실하기 때문에 소비자신용이 건전한 방식으로 더 성장할 여지가 있다고 여전히 믿는다”고 말했다. 사바델의 연체되지 않은 소비자 대출 잔액은 9월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19% 증가했으며,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은 5.6% 증가에 그쳤다.
인구·고용 변화가 대출 확대를 견인하고 있다. 가스텔루는 2019년 말 이후 노동인구 증가가 대출 확대를 주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으로 스페인 인구는 거의 5천만 명에 육박하는 기록을 세우고 있다고 보도는 전했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새로운 소비자 대출은 10월 한 달에 거의 45억 유로에 달해 전년 동기 대비 21.8% 증가했으며 이는 2007년 이후 월간 기준 최고치다. 이는 범유로존의 상황과 대조적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의 10월 대출조사에서는 경제 전망에 대한 우려로 소비자신용이 완화되기보다 오히려 ‘다소 엄격해졌다’고 응답한 사례가 있었다.
시장 관점에서의 평가로, 스페인 증권사 렌타4(Renta 4)의 분석가 누리아 알바레즈(Nuria Alvarez)는 2026년 스페인 은행의 수익성을 견인할 핵심 요인으로 소비자신용·기업대출·자산관리·보험을 꼽았다.
연체율(부실비율) 상승과 리스크
무담보 소비자 대출은 은행 입장에서는 수익성이 높은 반면 리스크가 큰 대출이다. 중앙은행 자료에 따르면 이들 대출의 연체율은 10월에 약 4% 수준으로 상승했으며, 이는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의 거의 두 배 수준이다. 다만 2009년 6월의 정점인 8.3%와 비교하면 훨씬 낮다.
은행별 전략 차이도 나타난다. 은행인터( Bankinter )는 올해 일부 고위험 소비자 포트폴리오의 노출을 축소했으나, 스페인 5위권 은행들은 대체로 소비자신용을 확대하고 있다. 중앙은행 데이터에 따르면 10월 기준 소비자대출의 수익률은 주택담보대출 수익률(2.67%)보다 거의 세 배에 달해 은행 입장에서는 매력적이다. 주택담보대출 수익률은 금리 하락의 영향을 받고 있다.
중견은행인 유니카하(Unicaja)의 엘비라 데 라 크루즈(Elvira de la Cruz)는 로이터에 “소비자신용은 향후 몇 년간 계속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성장 속도는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니카하는 2027년까지 신규 소비자 대출을 두 배로 늘릴 계획이다. 데 라 크루즈는 “신규 소비자신용의 50% 이상이 사전승인 대출(pre-authorised loans)을 통해 공급되므로 알려진 고객들과 안정적 소득을 대상으로 해 채무불이행 가능성을 최소화한다”고 덧붙였다.
은행권 전반의 현황을 보면 스페인 은행들의 전체 소비자대출 잔액은 6월 말 기준 전년 동기 대비 7.2% 증가한 1,059억 유로로, 이는 2008년 7월의 사상 최고치에 근접한 수준이다. 소비자신용은 전체 대출에서 8.7%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지난해 8.3%에서 증가한 수치이고, 위기 이전인 5.8%와 비교하면 크게 확대된 것이다.
BBVA의 경우 9월 기준으로 소비자대출 및 신용카드 사업 부문이 주택담보대출보다 여섯 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는 은행권 수익성 개선에 기여하는 동시에 가계부채의 질적 변화를 의미한다.
정부의 규제 강화 움직임
노동시장이 견조한 한 주요 은행 대출에 대한 우려는 제한적이다. 그러나 스페인 정부는 고금리 대출을 취급하는 비규제 업체들의 급성장에 대해 점차 우려를 표하고 있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향후 몇 주 안에 회전형 신용 한도(revolving credit lines)에 대한 금리 상한을 설정하는 절차를 시작할 예정이며 이는 EU 지침을 이행하기 위한 광범위한 조치의 일환이다.
문제의 대부업체들은 연 18% 수준에서 시작하는 이자율이 1,000%를 넘기는 경우도 있어, 짧은 상환 기간과 고정 수수료의 결합으로 끝없는 채무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대출은 스페인 경제의 강점을 반영하기보다는 많은 이들의 재정적 취약성을 드러낸다. 소비자단체 아수핀(Asufin)의 연구 책임자 안토니오 가야르도(Antonio Gallardo)는 “일상생활 자금이 필요한 사람들이 신용카드 조차 쓰지 못해 마이크로론(소액대출)으로 몰리고 있으며, 마이크로론은 터무니없는 이자율을 부과한다”고 지적했다.
“일상생활을 위한 자금 수요가 마이크로론으로 유입되고 있고, 이는 매우 높은 금리로 이어진다” — 안토니오 가야르도(아수핀)
용어 설명
무담보 소비자대출은 주택 등 담보물을 제공하지 않고 개인에게 대출하는 것으로, 통상 신용카드, 개인대출, 할부금융 등이 포함된다. 담보가 없는 만큼 은행은 대출금리에서 위험프리미엄을 높여 수익을 확보한다. 회전형 신용한도(revolving credit)는 신용한도 내에서 여러 번 빌리고 상환할 수 있는 상품으로 신용카드가 대표적이며, 단기간 반복 대출 특성 때문에 고금리·단기 수수료 구조와 결합되면 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마이크로론(소액대출)은 소액을 단기간 대출해주는 상품으로 취약계층이 주로 이용하지만 금리가 매우 높을 수 있다.
금융·경제적 영향 분석
단기적으로 은행들은 소비자신용 확대를 통해 수익성을 빠르게 개선할 수 있다. 중앙은행 자료의 수익률 격차는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연체율 상승은 은행의 자본비율과 대손충당금 부담을 키울 수 있으며, 장기간 금리 상승 압력이 발생하거나 고용이 약화될 경우 소비자 대출 포트폴리오의 건전성이 악화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정책 측면에서는 정부의 회전형 신용금리 상한 도입이 이자율과 대출 공급 구조에 실질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상한 도입 시 비규제 대출업체의 수익성은 악화되어 시장에서 퇴출되거나 비공식 채널로 이동할 우려가 있으며, 일부 취약 계층은 합법적 금융시장에서 배제될 가능성도 있다. 반면 합리적 규제는 장기적으로 가계부채의 질을 향상시키고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중기적 전망으로는 스페인 경제가 EU 평균을 상회하는 성장세를 이어갈 경우 소비자신용 수요는 계속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거시경제적 충격이 발생하거나 실업률이 상승하면 연체율은 빠르게 악화될 수 있어 은행의 위험관리와 규제당국의 모니터링이 핵심 변수가 될 것이다.
종합
스페인의 소비자신용 증가는 경제 회복과 인구·고용구조의 변화, 은행의 수익성 추구가 맞물린 결과다. 다만 연체율 상승, 고금리 비규제 대출의 확산, 규제 대응의 향방 등은 향후 금융안정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은행들의 포트폴리오 구성, 정부의 금리 상한 도입 효과, 그리고 경기 흐름이 향후 몇 년간 이 추세의 지속 여부를 가르는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