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바퀴벌레와 AI 로봇: 독일, 미래 전쟁 양상을 재편하다

[독일 국방 혁신 르포]

2025년 7월 23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독일 국방 스타트업 생태계의 지형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헬싱(Helsing)의 공동 창업자 군드버트 셰어프(Gundbert Scherf)는 불과 4년 전 군(軍)용 AI 시스템과 타격용 드론을 개발하는 회사를 설립할 당시 투자 유치에 난항을 겪었다. 그러나 2024년 6월 마무리된 신규 라운드에서 기업 가치는 120억 달러(약 16조 원)로 두 배 이상 뛰어올랐다.

셰어프는 “2024년, 유럽은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방위 기술 조달에 미국보다 많은 돈을 쓰고 있다”며 “유럽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맨해튼 프로젝트에 비견될 혁신 전환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AI·스타트업 기술에 집중하는 독일 정부

로이터가 경영진·투자자·정책 결정자 등 24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이끄는 정부는 AI 및 스타트업 기술을 핵심 동력으로 삼고 관료주의를 대폭 축소해 신생 기업을 군 수뇌부와 직접 연결하고 있다.

나치 군국주의에 대한 트라우마와 전후 평화주의 정서로 인해 독일은 오랫동안 소규모·보수적 방위 산업 구조를 유지해 왔다. 또한 ‘위험 회피’적 기업 문화 탓에 점진적 개선에 머물렀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러나 미국의 안보 공약이 불확실해진 상황에서 독일 정부는 2029년까지 연간 국방 예산을 약 1,620억 유로(2.5배)로 확대할 계획이다. 상당 부분이 전쟁 수행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하는 신기술에 투입될 전망이다.


헬싱을 필두로 한 혁신 군사 스타트업 대두

헬싱 외에도 AI 로봇, 무인 소형 잠수함, 스파이 바퀴벌레 등 첨단 플랫폼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셰어프는 “유럽의 척추를 다시 세우겠다”고 말했다.

이들 신생 기업은 전통 방산 대기업 라인메탈(Rheinmetall)·헨솔트(Hensoldt) 등과 함께 정부 자문 역할을 수행한다. 전통 업체는 기존 무기체계 수주 잔고가 두터워 혁신 유인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신규 조달법(6월 25일자 초안)은 현금 흐름에 취약한 스타트업이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선급금 지급을 허용하고, EU 역내 업체로 입찰을 제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자율주행 로봇 제조사 ARX 로보틱스의 마르크 비트펠트(Marc Wietfeld) CEO는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국방장관과의 면담에서 “‘이제 돈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전환점을 체감했다”고 전했다.


3.5% GDP 목표…독일, 유럽 재무장 주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NATO 회비 재논의 이후 독일은 2029년까지 국방비를 GDP 대비 3.5%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이는 다수 유럽 동맹국보다 빠른 속도다.

독일 정부는 미국 기업 의존도를 줄이고 유럽 방산 생태계 육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국가별 서로 다른 규격 등으로 시장이 분절돼 있어 스케일업 장벽이 높다.

미국은 이미 록히드마틴·RTX 같은 초대형 방산기업과 쉴드 AI, 앤두릴, 팔란티어 등 스타트업을 동시에 키워 왔다. 반면 유럽은 최근까지 정부 지원이 미미했다.

Aviation Week 분석(2024년 5월)에 따르면, 터키·우크라이나 포함 유럽 19개 주요 방위국의 2024년 조달 예산은 1,801억 달러로 미국(1,756억 달러)을 소폭 앞질렀다. 다만 미국의 전체 국방비는 여전히 가장 크다.

독일 방위산업협회(BDSV) 한스 크리스토프 아츠포디엔 회장은 “기존 조달 시스템은 신속성이 요구되는 신기술에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독일 국방부는 스타트업 통합·조달 가속화를 위한 조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무인지상·공중·해상 플랫폼, AI 기반 정보 분석 등이 핵심 영역으로 꼽힌다. 안네테 레니크-엠덴 조달청장은 “드론과 AI는 기관총·전차·항공기의 도입만큼 혁명적”이라고 말했다.


‘스파이 바퀴벌레’와 생체 로봇

연방군 혁신 가속기 ‘사이버 이노베이션 허브’를 이끄는 스벤 바이체네거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독일 사회가 방위산업 종사에 느끼던 ‘금기’가 빠르게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2020년 주당 2~3건이던 링크드인(LinkedIn) 제안이 지금은 하루 20~30건으로 급증했다고 전했다.

스타트업 스웜 바이오택틱스(Swarm Biotactics)는 소형 카메라·통신 모듈이 장착된 사이보그 바퀴벌레를 개발 중이다. 전기 자극을 활용해 곤충의 움직임을 원격 제어, 적 전력 배치 등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하는 것이 목표다.

CEO 스테판 빌헬름은 “우리 바이오 로봇은 단독·군집 형태 모두 운영 가능”이라고 설명했다.


역사적 맥락과 경제적 함의

20세기 전반 독일 과학자들은 탄도미사일·제트기·유도무기를 선도했으나, 패전 후 비(非)무장화로 연구 인력이 해외로 분산됐다. 대표적 사례가 베르너 폰 브라운 박사다. 그는 나치 독일 최초의 탄도미사일을 만든 뒤 미국 NASA에서 아폴로 우주선 달 착륙 로켓을 개발했다.

이처럼 군사 연구가 민간 기술 발전을 견인해 온 전례는 풍부하다. GPS·반도체·인터넷·제트엔진 모두 국방 연구에서 출발해 일상을 혁신했다.

고에너지 가격, 수출 둔화, 중국과의 경쟁 등으로 최근 2년간 역성장한 독일 4조7,500억 달러 규모 경제는 군사 연구 확대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주목하고 있다.

“강력한 방산 산업 기반은 강력한 경제와 ‘스테로이드 맞은’ 혁신을 의미한다.” ― 마르쿠스 페데를레(톨루스 캐피털)


‘데스 밸리’ 탈출과 벤처 투자

스타트업은 초기 자금 부족으로 ‘데스 밸리(Death Valley)’를 겪는다. 그러나 유럽 정부의 국방비 확대 이후 투자 기회가 빠르게 늘었다.

현재 유럽에는 헬싱·퀀텀 시스템즈(독일 드론 제조사)·테케버(포르투갈) 등 10억 달러 이상 가치의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 이상 스타트업)이 3곳이다.

퀀텀 시스템즈의 CSO 스벤 크루크는 “독일이 유럽 방위의 선도국”이라며 책임감을 강조했다. 실제로 독일은 미국에 이어 우크라이나 2대 군사지원국이다.

딜룸(Dealroom)에 따르면, 독일 방산 스타트업은 최근 5년간 14억 달러를 유치해 영국을 제쳤다. 2024년 유럽 방산 분야 VC 투자액은 10억 달러로 2022년 3억7,300만 달러 대비 급증했다.

프로젝트 A의 잭 왕 파트너는 “독일 공학 인재 풀은 유럽 최고”라고 평가했다. 자동차 산업 부진으로 여유 생산 능력을 가진 미텔슈탄트(SME)가 스타트업 생산 거점으로 부상 중이다.

바이에른 주 스타트업 도나우슈탈(Donaustahl)의 스테판 투만 CEO는 “스타트업이 ‘두뇌’를 제공하면 미텔슈탄트가 ‘근육’을 제공한다”며, 일 평균 3~5명의 자동차 업계 지원서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 시각 및 전망

방위산업과 첨단기술 융합은 기존 제조 강국 독일의 경쟁력을 재점화할 촉매제로 평가된다. ② 미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전략은 EU 차원 공동 표준화·규모의 경제 실현 여부에 달렸다. ③ 생체 로봇·AI 군집전술 등은 윤리·규제 공백 문제를 동반,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는 투명한 거버넌스 체계가 요구된다. ④ 벤처 캐피털과 중소 제조기업의 협업은 ‘브레인-머슬’ 모델로, 고부가가치 일자리 창출 효과가 기대된다.

궁극적으로 독일 방위·기술 부문의 가파른 투자 확대가 유럽 안보 공백을 메우는 동시에, 침체된 독일 경제의 신성장 동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