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키어 스타머(Keir Starmer) 총리가 서방 동맹국들을 상대로 무기 공동구매를 통한 방위 조달 비용 절감을 골자로 한 다국적 방위조달 이니셔티브를 제안할 계획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이번 구상은 무기 구매를 조정해 재무적 부담을 낮추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2026년 2월 13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스타머 총리는 이번 주말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뮌헨안보회의(Munich Security Conference)에서 이 제안을 공식적으로 제기할 예정이며, 주말 동안 열리는 3일간의 행사에서 동료 정상들과의 연설 및 비공개 회동을 통해 보다 심도 있게 논의할 계획이다.
보도에 따르면 스타머 총리는 토요일 연설과 정상 간 비공개 면담에서 방위협력의 강화를 촉구할 예정이다. 이 구상은 영국이 향후 10년간 최대 280억 파운드(£28 billion)의 방위 재원 부족에 직면해 있다는 국내 재정 상황에서 제안된 것이다. FT는 이를 인용해 영국의 재정적 제약이 목표 달성 경로를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배경과 국제적 맥락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영국과 나토(NATO) 동맹국들은 국내총생산(GDP)의 3.5%를 방위비로 책정하는 목표를 2035년까지 달성하겠다고 공약했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으로 동맹 내 방위비 확대 요구가 커진 상황이다. 하지만 영국 정부의 긴축된 재정 상황은 해당 목표를 달성할 명확한 재정 경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재무장관(Chancellor) 레이첼 리브스(Rachel Reeves)는 이번 주 유럽 연합(EU) 회원국들과 영국이 증가하는 방위비에 대해 더 나은 ‘가성비(value for money)’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리브스 장관은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 강화, 공동 조달 확대, 무기 규격의 표준화 등을 제안하며 유럽 차원의 협력 필요성을 강조했다.
공동 조달 메커니즘의 구조적 제안
FT 보도에 따르면 한 방안은 유럽 차원의 방위기구가 채권을 발행(debt issuance)해 집단적 무기 구매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브뤼셀(Brussels) 기반의 싱크탱크 브뤼겔(Bruegel)이 제시한 개념 중 하나다. 제안된 구조에서는 공동으로 재원을 조달한 무기를 일시적으로 비축(stockpile)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채를 참여국들의 재무제표에서 일시적으로 제외(off-balance)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네덜란드의 소수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정당들은 지난달 연립 협약에서 비슷한 메커니즘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며, 비EU 나토 파트너(예: 영국)와의 긴밀한 협력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명시했다. 이는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다자간 방위 조달을 둘러싼 논의가 확산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영국과 EU 간 기존 논의와 현황
스타머 총리는 작년 영국의 재정 기여 거부로 교착 상태에 빠졌던 Security Action for Europe라는 EU 주도의 재무·재장비 프로그램에 대한 참여 재논의를 재개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EU 차원의 재무·조달 협력을 통해 회원국들의 재무적 부담을 나누는 것을 목표로 했으나,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역할과 재정 기여 문제가 걸림돌이 됐다.
독일과 다른 동맹국의 입장
한편 독일은 자체적인 재무장 프로그램에 보다 집중하는 모습이다. 브뤼겔의 수석 연구원 건트람 볼프(Guntram Wolff)는 FT에 “The truth is that with less trust in the U.S., at some stage we will all have to think about it“라고 말하며, 미국에 대한 신뢰가 약화된 상황에서는 유럽 자체의 방위 역량 확대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재무부 관계자는 영국이 동맹들과의 협력 심화에 여전히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 용어 및 메커니즘 설명
공동 조달(joint procurement)은 여러 국가가 함께 무기나 군수품을 대량으로 구매해 개별 국가가 단독으로 구매할 때보다 단가를 낮추고, 물량 확보와 공급망 안정화를 도모하는 방식이다. 오프-밸런스(off-balance) 처리란 공동으로 조달한 자산이나 관련 채무를 참여 각국의 재무제표에 즉시 반영하지 않아 단기적으로 국가 부채비율이나 재정적 제약을 완화하는 회계적·구조적 장치다. 다만 이런 처리 방식은 회계 규정, 국제 재무 보고 기준, 정치적 투명성 문제에서 논쟁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
브뤼겔(Bruegel)은 경제·정책 분야의 유럽 기반 싱크탱크로, 유럽 차원의 재정·경제 정책에 대한 연구와 대안을 제시하는 기관이다. Security Action for Europe은 EU가 주도하는 안보 및 재무·조달 협력 프로그램의 명칭으로, 회원국 간 공동 재정 조달과 무기비축 등 집단 방위 역량 강화 방안을 포함한다.
시장 및 경제적 영향 분석
전문가들은 다국적 공동 조달이 실현될 경우 단기적으로는 무기 단가 하락과 방산업체의 생산규모 확대에 따른 규모의 경제 도입으로 방산 기업의 개별 계약 수익성에 변화가 올 것으로 보고 있다. 대량 구매에 따른 단가 협상력 증대는 일부 방산업체의 마진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으나, 반대로 대형 장기계약 확보를 통해 안정적인 매출 흐름을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또한 공동 채권 발행과 같은 집단적 자금조달 방식은 각국의 단기 채무부담을 완화해 국가별 채권시장과 금리 환경에 영향을 미칠 소지가 있다. 채권을 통해 조달된 자금이 오프-밸런스 처리될 경우 단기적으로는 국가 신용도 지표가 안정되는 효과를 낳을 수 있으나, 장기적 관점에서는 투명성 이슈와 채무 책임 귀속 문제로 인해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증가할 수 있다.
금융시장 관점에서 보면 방산 부문의 구조적 수요 증대는 관련 장비·부품 공급업체와 방산주에 대한 관심을 높일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표준화와 공동 조달 확대는 경쟁구조를 재편하고 일부 소규모 공급업체의 시장 접근성을 낮출 우려가 있어 산업 재편(mergers & acquisitions) 가능성을 자극할 수 있다.
정책적 쟁점과 향후 관전 포인트
핵심 쟁점은 참여국 간의 무기 규격 표준화 수준, 재무적 위험의 분담 방식, 회계·법률적 처리, 그리고 정치적 수용성이다. 유럽 내에서 표준 규격을 합의하면 단가 절감과 상호운용성이 크게 개선되지만, 각국의 군사 요구사항과 산업 보호 논리로 인해 합의 도출이 쉽지 않다. 또한 오프-밸런스 처리의 회계적 정당성은 국제 회계 기준 및 각국의 의회 승인 절차에서 추가 논쟁을 야기할 수 있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첫째, 뮌헨안보회의에서 스타머 총리의 제안이 어떻게 제시되고 동맹국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둘째, 네덜란드 등 일부 유럽국가들이 해당 메커니즘을 실제 정책으로 전환할 의지가 있는지. 셋째, 방산업계·금융시장에서 공동 조달과 집단 채권 발행의 실현 가능성과 그에 따른 가격·수급 변화가 어떻게 반영되는가이다.
영국 재무부 대변인은 보도에 대해 영국은 동맹들과의 협력 심화에 “여전히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타머 총리의 이번 제안은 국내 재정제약과 유럽 및 대서양 동맹의 안보 요구 사이에서 현실적 대안을 모색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