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리히=로이터 ― 스위스 연방 정부가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스위스산 수입품에 대해 39%의 초고율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결정에 대응하기 위해 5일(현지시간) 임시(Extraordinary) 각의를 열기로 했다.
2025년 8월 4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번 관세 조치는 스위스가 미국 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럭셔리 제품·제약·기계 산업에 막대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단체들은 수만 개의 일자리가 위험에 처했다고 경고했다.
관세 (Tariff)란 정부가 해외로부터 들어오는 상품에 매기는 세금으로, 자국 산업 보호나 교역 상대국 압박을 목적으로 한다. 시장 참가자들은 스위스가 EU·일본·한국보다 훨씬 높은 세율을 적용받은 이유를 두고 ‘정치적 메시지’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관세 발효 임박 — 협상 시한은 나흘
해당 관세는 8월 7일(목) 발효될 예정으로, 스위스가 미국 측과 더 나은 조건을 타결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나흘 남았다. 이번 결정이 발표된 지난 1일 금요일, 스위스 정부와 산업계는 사실상 패닉 상태에 빠졌다.
미국이 스위스를 표적 삼은 직접적 이유는 명확히 설명되지 않았다. 다만 스위스는 지난해 미국과의 교역에서 382억5,000만 스위스프랑(약 480억 달러) 규모의 흑자를 기록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해 온 ‘무역적자 해소’ 기조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수지 적자를 미국의 손실로 인식하고 있다. 스위스가 매년 382억5,000만 프랑의 흑자를 내는 것이 곧 미국의 손해라고 보는 셈이다.” ― 카린 켈러-주터 스위스 대통령(4일 로이터 인터뷰)
켈러-주터 대통령은 “미국 상품이 사실상 무관세로 스위스 시장에 들어오고 있고, 스위스 기업들은 미국에 대규모 직접투자를 이어왔다”면서도, “추가 제안을 지금 당장 내놓을 단계는 아니며, 정부 차원에서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화 통화설 일축 · 대미 제안 재검토
스위스 정부는 지난주 목요일 늦은 밤 켈러-주터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 불편한 통화가 관세 인상으로 이어졌다는 일부 보도를 부인했다. 다만, 가이 파르믈랭 경제장관은 3일 일요 인터뷰에서 “관세율이 현실화되기 전에 스위스도 대미 제안을 수정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 옵션으로는 미국산 LNG(액화천연가스) 구매 확대, 스위스 기업의 미국 내 추가 투자 등이 거론된다. 미국은 스위스 제약·시계·기계류 수출의 최대 시장이다.
금융시장 충격 — 증시·환율 동반 급락
4일 취리히 증시에서 스위스 대형주 지수(SMI)는 0.6% 하락해 4월 중순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면 범유럽 지수인 STOXX 600은 같은 시각 0.6% 상승해 대비가 뚜렷했다.
특히 고가 시계업체인 리치몬트와 스와치 주가가 변동성을 보였다. 리치몬트는 장중 최대 3.5% 급락한 뒤 0.8% 하락 마감했고, 스와치는 최대 낙폭 5% 후 0.7% 내렸다.
제약 수출품에 대한 추가 관세 가능성도 거론되면서 관련 주식이 동반 약세를 나타냈다.
외환시장에서도 스위스프랑(CHF)이 주요 통화 중 가장 약세를 보였다. 달러/프랑 환율은 0.7% 오른 1달러=0.809프랑 선까지 상승하며 전 거래일 1개월 최고치 부근을 다시 시험했다.
용어·배경 설명
관세(Tariff): 정부가 특정 제품의 수입 또는 수출에 부과하는 세금으로, 보호무역이나 재정 확보를 목적으로 한다. 높은 관세는 해당 상품 가격을 상승시켜 수입량을 억제한다.
럭셔리(사치재) 산업: 고가 시계·보석·명품 의류 등 가격 탄력성이 낮은 상품군으로, 부유층을 주요 고객층으로 한다. 스위스의 리치몬트·스와치그룹이 대표적 기업이다.
직접투자(FDI): 기업이 해외법인 설립·공장 건설 등을 통해 장기적 경영 참여를 목적으로 투자하는 방식이다.
전문가 시각 & 전망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를 “협상용 지렛대”로 해석한다. 스위스가 미국산 에너지 구매 확대 등 경제적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한 강수라는 분석이다. 반면 스위스 정부가 강경 대응에 나설 경우 보복 관세·WTO 제소 등 무역 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로서는 8월 7일 이전 양국이 타협점을 찾느냐가 최대 변수다. 스위스 루체른대 국제무역연구소는 “스위스가 에너지 구매나 방위비 분담 확대 카드를 제시해 ‘윈-윈’ 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합의 실패 시 스위스 럭셔리·제약 업종 영업이익이 연간 최소 15% 감소할 것이라는 JP모건 추정치도 있다.
결국 스위스 정부가 ‘무역 흑자 축소’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요구를 어떻게 수용할지가 관전 포인트다. 이번 사안은 향후 스위스-미국 FTA 논의, 나아가 유럽 전반의 대미 교역 전략에까지 여파를 미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