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리히] 스위스 연방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고한 39% 대미(對美) 수입관세에 대응해 자국의 양자 무역제안을 수정할 의사를 밝혔다. 가이 파르멜랭 경제장관은 관세가 실제 발효되기 전까지 ‘선의(善意)’를 보여줄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강조했다.
2025년 8월 3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스위스 전문가들은 이번 초고율 관세가 자국 경제에 경기침체(recession)를 야기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산업계는 수만 개 일자리의 상실을 우려하며 정부의 ‘초강수’ 협상을 촉구하고 있다.
스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단행한 ‘글로벌 무역 재설정’ 조치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관세를 부과받았다. 지난 1일(현지시간) 발표 직후 스위스 산업협회들은 즉각 성명을 내고 “수출기업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파르멜랭 장관은 방송사 RTS 인터뷰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왜 미국 대통령이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철저히 파악한 뒤 대응책을 확정하겠다”며 “8월 7일 관세 발효 전까지 시간이 촉박하지만, 수정 제안을 통해 협의 의지를 보여 줄 것”이라고 말했다.
스위스 연방 내각은 4일(월) 긴급각의를 열어 향후 로드맵을 논의할 예정이며, 파르멜랭 장관과 카린 켈러-주터 대통령 모두 필요하다면 워싱턴 방문도 불사할 태세다.
● 미국 무역적자·LNG·투자 확대가 해법?
파르멜랭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380억 5천만 스위스프랑(480억 달러) 규모의 대(對)스위스 무역적자에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카드로 LNG(액화천연가스) 수입 확대와 스위스 기업의 미국 투자 증대를 언급했다.
그는 “EU도 미국산 LNG 구매를 약속하지 않았느냐”며 “스위스 역시 LNG를 수입하는 만큼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경로”라고 설명했다. 이어 “더 많은 투자를 포함해 미국이 어떤 기대를 갖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해야 협상이 지속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전화통화 설전(說戰) 의혹 일축
일부 현지 매체는 ‘켈러-주터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1일 밤 거친 언쟁을 벌였고, 그 결과 관세율이 높아졌다’는 보도를 내놨다. 그러나 스위스 정부 고위 소식통은 “통화 결과가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말다툼은 없었다”고 일축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처음부터 10% 관세는 부족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고, 우리는 8월 7일 이전 해결을 위해 미국 측과 긴밀히 접촉 중”이라고 말했다.
● ETH 취리히 분석 ‘GDP 최대 –1%’
추리히 공대(ETH)의 한스 게르스바흐 교수는 “39% 관세가 실제 부과될 경우 스위스 GDP가 0.3%~0.6%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만약 현재 관세 대상에서 제외된 제약품까지 포함되면 감소폭은 0.7% 이상, 장기적 혼란이 지속되면 1% 이상까지 축소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리세션 위험이 현실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금융시장 충격 및 통화정책 전망
스위스 증시는 8월 1일 국경일로 휴장했다가 5일(월) 재개장과 동시에 관세 악재를 반영할 전망이다. 일본계 투자은행 노무라(Nomura)는 보고서에서 “스위스국립은행(SNB)이 9월 정책금리를 25bp 인하해 -0.25%로 조정할 가능성이 높다”며 “수출 둔화가 성장과 물가에 하방 압력을 가해 추가 완화가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 용어풀이
LNG(Liquefied Natural Gas)는 천연가스를 영하 162도까지 냉각해 액체 상태로 만든 연료로, 파이프라인이 없는 지역에서도 운송이 가능하다.
SNB(Swiss National Bank)는 스위스의 중앙은행으로, 통화정책을 통해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목표로 한다.
■ 기자 해설
이번 고율 관세는 전통적으로 ‘중립국’ 이미지를 바탕으로 복잡한 글로벌 공급망을 운영해 온 스위스 경제에 전례 없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특히 제약·시계·기계 등 고부가가치 산업 비중이 크다는 점에서, 환율·금리·무역이 겹치는 복합 리스크 관리 전략이 요구된다. 정부가 LNG 수입 확대나 대미 투자 증대를 제시했지만, 이는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근본 처방’이라기보다 단기적 ‘관세 회피용 패키지’로 풀이된다. 실질적 해결을 위해서는 양국 간 제도적 무역협정 개정까지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