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설명: 스위스 제네바 레만호(레이크 제네바)에서 촬영된 스위스 국기(2025년 8월 5일 화요일). 같은 날 스위스 대통령은 미국이 선진국 가운데 최고 수준의 관세를 스위스에 부과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급히 워싱턴 DC로 이동했다. 사진=Andrew Kravchenko/Bloomberg via Getty Images
스위스-미국 무역협정을 둘러싸고 국내 여론이 갈리고 있다. 스위스 정부와 재계는 이번 합의를 국가의 ‘리스타트(restart)’로 반기며 대미 관세 39%→15% 인하와 함께 미국 내 제조 확대와 2,000억달러(약 272조원) 규모의 스위스 기업의 대미 투자 약속을 성과로 꼽았다. 반면 비판론자들은 이번 합의가 백악관에 대한 ‘굴복’에 가깝다며 소비자·농가 부담 가능성을 경고했다.
2025년 11월 17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무역협정은 지난 금요일 공식 발표됐으며 스위스산 대미 수출품에 부과된 관세가 39%에서 15%로 대폭 낮아졌다. 이에 더해 스위스 기업들은 미국 내 제조설비 확대를 포함한 2,000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양국 간 교역과 투자 환경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산업 경쟁력을 회복하겠다는 입장이다.

출처: CNBC
스위스는 협상 타결에 앞서 대대적인 ‘구애(offensive)’ 행보를 보였다. 11월 초에는 롤렉스(Rolex)와 리슈몽(Richemont) 등 명품 대기업 CEO를 포함한 최고경영자단이 워싱턴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골드 롤렉스 시계와 특별 각인된 금괴를 선물하는 등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러한 재계의 로비 활동이 새로운 프레임워크(기본) 무역협정 도출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주말 동안 비판도 거셌다. 녹색당(Greens)은 이번 합의를 ‘항복 협정’이라고 규정했다. 당수 리사 마초네(Lisa Mazzone)는 스위스의 경제 엘리트와 연방평의회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굴복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그 대가를 스위스 소비자와 농민이 치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재계 인사의 협상 관여에 대해 “정부가 의심스러운 방법과 금 선물로 거래를 샀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가이 파르멜랭(Guy Parmelin) 스위스 경제장관은 ‘백기투항’ 비판을 일축했다. 그는 주말 Tagesanzeiger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지 않았다”고 말하며, 합의에 대해 “만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그는 합의가 향후 조정·개선될 여지가 있으며, “관세를 0%로 되돌릴 수 있다면 자랑스러울 것이다. 오랜 여정이었고, 이번 결과는 우리가 달성할 수 있었던 최선이다. 무엇보다 다음 협상을 위한 출발점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파르멜랭 장관은 워싱턴을 찾은 경영진에 대해서도 “그들은 단지 자신의 입장과 관세가 교역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러 갔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다만 그는 “그들이 미국 내에 좋은 인맥이 많기 때문에 영향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트럼프 일가뿐 아니라 일부는 골프를 함께 치는 친구이기도 하다. 나는 골프를 치지 않는다. 그것이 나의 핸디캡일지도 모르지만, 그게 인생”이라고 말했다.
합의는 ‘리스타트’, 그러나 불확실성은 남아
스위스 산업계는 프레임워크(기본) 합의가 도출된 점에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다만 실제 이행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며, 세부조건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남아 있다. 예컨대 유럽에서 논란이 큰 염소 소독 처리 닭(chlorinated chicken)이나 호르몬 처리 쇠고기 등 미국산 육류를 무관세 양자 관세쿼터에 포함해 허용해야 하는지 여부는 원칙적 합의만 있을 뿐 확정되지 않았다.
또한 이번 프레임워크 합의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non-binding) 성격이다. 구체 조항을 마무리하기 위한 후속 협상이 남아 있으며, 최종 합의안은 스위스 의회 승인과 경우에 따라 국민투표까지 거쳐야 할 수 있다. 절차적 문턱을 넘는 과정에서 정치적·사회적 논쟁이 재점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출처: CNBC
미국 측은 낙관적이다. 제이미슨 그리어(Jamieson Greer)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CNBC에 “스위스가 제약, 금 제련, 철도 장비 등 많은 제조업을 미국으로 이전할 것”이라며 “이번 합의가 미국 제조업에 의미 있는 호재”라고 말했다.
스위스 제조업계도 안도감을 표했다. 스위스멤(Swissmem)※ 스위스 기계·전기·금속(MEM) 산업 협회의 슈테판 브루프바허(Stefan Brupbacher) CEO는 8월 이후 대미 수출이 15% 감소했으며, 특히 기계 수출업체는 그 타격이 더욱 컸다고 전했다. 그는 “39%에서 15%로 내려온 관세는 우리를 유럽·일본 주요 경쟁국과 동등한 위치로 되돌려 놨다”며 “지난 석 달간 15~40%에 달한 대미 수출 급감의 고통이 컸다. 이제야 다시 시작(restart)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거시지표도 무거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스위스 경제부의 플래시 통계에 따르면 2025년 3분기 GDP는 전기 대비 0.5% 감소했다. 경제부는 그 배경으로 “화학·제약 부문의 부가가치가 급감했고, 산업 전반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는 점을 지목했다.
UBS 이코노미스트 알레산드로 베(Alessandro Bee)는 “미·스위스 간 프레임워크 합의에도 불구하고, 스위스의 2026년 GDP는 약 1% 성장에 그칠 것”이라며 “이는 지난 15년 평균 1.9%에 현저히 못 미친다”고 분석했다.
그는 “내수가 성장을 지지하겠지만, 대외부문에서는 큰 동력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관세 인하에도 “대미 수출 관세 수준이 여전히 상당하기 때문에, 전년 대비 대미 수출 증가율은 뚜렷이 둔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베는 또 “스위스의 대미 수출 품목의 약 절반을 차지하는 제약 산업은 39% 관세의 영향을 애초에 받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일부 스위스 제약사가 이미 미국 내 생산 이전 계획을 시사한 만큼(예: 로슈(Roche)의 500억달러 대미 투자 계획), “이번 합의가 그러한 계획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제약 생산의 미국 이전이 중기적으로 스위스 성장률을 제약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용어 설명 및 쟁점 정리
프레임워크(기본) 합의: 최종 협상 전에 큰 틀과 원칙을 담은 비구속적 합의를 뜻한다. 구속력을 갖춘 최종 협정으로 가기까지 후속 협상, 의회 승인, 경우에 따라 국민투표가 필요할 수 있다.
염소 소독 처리 닭 및 호르몬 처리 쇠고기: 미국 일부 축산물의 가공·위생 처리 방식으로, 유럽에선 소비자 안전·규제 논쟁의 핵심 이슈다. 이번 합의에서 이러한 품목이 무관세 양자 관세쿼터에 포함될지 여부가 향후 쟁점이다.
무관세 양자 관세쿼터: 양국 간 합의한 특정 물량에 대해 관세를 면제하거나 낮추는 제도다. 쿼터 범위를 넘는 물량에는 일반 관세가 적용될 수 있다.
분석 및 전망
이번 스위스-미국 무역협정은 단기적으로는 관세 부담을 완화해 스위스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을 회복시키는 효과가 있다. 특히 MEM(기계·전기·금속) 등 관세 직격탄을 맞은 산업에선 동등경쟁의 장이 복원되며, 대미 투자 2,000억달러 약속은 공급망을 미국 쪽으로 재배치하려는 글로벌 추세에 부합한다. 다만 프레임워크의 비구속성, 국내 정치 절차, 민감 농축산물 수입 여부 등은 불확실성으로 남아 있다. 제약 산업 비중이 큰 스위스의 산업 구조상, 제약 생산의 미국 이전이 가속될 경우 국내 부가가치와 고용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대로 후속 협상에서 추가 관세 인하(잠재적 0%)와 명확한 원산지·위생 기준이 정교하게 합의된다면, 불확실성을 크게 줄이며 대미 수출의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요약하면, 이번 합의는 리스크 완화와 시간 벌기에 유효한 ‘다리’ 역할을 한다. 그러나 실질적 성장 회복을 위해서는 후속 협상에서의 법적 확정성 확보, 민감 품목에 대한 사회적 합의, 그리고 기업의 생산·투자 의사결정이 어떻게 현실화될지에 달려 있다. 스위스 경제는 여전히 내수 중심의 버팀목에 의존하는 가운데, 대외부문의 탄력 회복은 단계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