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치 ‘눈찢기’ 광고 논란…다양성 후퇴 속 기업들의 위험 감수 마케팅에 경고음

■ 글로벌 브랜드들이 ‘바이럴’ 효과를 노리고 점점 자극적인 광고를 택하고 있다

최근 스위스 시계 제조사 스와치(Swatch)가 아시아인을 조롱하는 ‘눈찢기’ 제스처를 담은 광고를 공개했다가 거센 역풍을 맞고 사과하는 일이 벌어졌다. 다양성과 포용성을 둘러싼 미국 내 분위기가 급격히 후퇴하는 가운데, 기업들이 짧은 소비자 주목 시간을 뚫기 위해 더 공격적인 캠페인을 시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25년 8월 20일, 인베스팅닷컴이 로이터 통신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스와치는 해당 이미지가 “젊고 의욕적인 팀의 실수”였다고 해명하며 광고를 전면 삭제했다. 회사 측은 “누군가를 불쾌하게 하거나 상처 주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지만, 이미 온라인에서는 #SwatchBoycott 해시태그가 빠르게 확산됐다.

● ‘눈찢기’ 제스처의 문제점

이번 광고에는 아시아계 남성 모델이 손가락으로 눈꼬리를 위아래로 잡아당기는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서구권에서 흔히 동아시아인을 비하할 때 사용되는 이 제스처는, 인종차별의 상징으로 꼽혀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도 금지되는 행위다. 그럼에도 스와치 내부 검증 절차를 통과했다는 점이 논란의 핵심이다.

이는 단순 실수가 아니라 다문화 감수성 결여라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라고 뉴욕대 마케팅 강사 안젤리 지안찬다니(Angeli Gianchandani)는 지적했다.


●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프로그램의 후퇴와 ‘모 아니면 도’ 전략

트럼프 행정부가 “각종 다양성 교육은 역차별”이라며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프로그램을 압박하고, 공화당 주 지자체가 관련 예산을 축소하자, 기업들은 ‘포용성’보다 ‘화제성’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DEI란 인종·성별·성적 지향·장애 여부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구성원이 차별 없이 일하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기업·기관의 내부 정책을 말한다.

마케팅 컨설팅사 메타포스(Metaforce) 공동 창립자 앨런 애덤슨(Allen Adamson)은 “포용성을 강화하면 소셜미디어 상에서 큰 ‘노이즈’를 만들기 어렵다”라며, “브랜드들이 젊은 층에게 주목받기 위해 더 큰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 다른 브랜드도 ‘논란성 광고’로 주목받기 경쟁

미국 의류기업 아메리칸이글(American Eagle Outfitters)은 Z세대 스타 시드니 스위니(Sydney Sweeney)를 내세운 광고에서 ‘청바지(Jeans)’와 ‘유전자(Genes)’의 발음을 희화화해 “유전적 특질을 인종적 맥락으로 연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 2024년 10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SNS에 해당 광고를 가리켜 “HOTTEST ad out there”라며 “Being WOKE is for losers”라고 올려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커피·도넛 체인 던킨(Dunkin)도 배우 개빈 카살레뇨(Gavin Casalegno)“이 태닝, 유전이에요”라며 ‘골든 아워(Golden Hour)’ 음료를 홍보하는 영상을 공개했다가 ‘백인 피부색 이상화’라는 비난을 받았다. 저가 화장품 엘프 뷰티(e.l.f Beauty)가정폭력 소재로 농담을 해 물의를 빚은 코미디언 맷 라이프(Matt Rife)를 기용했다가 하루 만에 사과문을 내고 영상을 삭제했다.

프랑스 화장품 대기업 로레알(L’Oréal)“라이프스타일과 성인용 콘텐츠를 함께 게시한다”는 이유로 온리팬스(OnlyFans) 크리에이터와 협업한 사실이 드러나, 자사 “포르노를 연상시키는 행위를 금지”한 가이드라인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 브랜드 평판·매출에 미칠 장기적 파장

지안찬다니 강사는 “미국 내 구매력은 여전히 비(非)히스패닉 백인층이 크지만, 흑인·아시아·라틴 소비자 집단의 성장세가 훨씬 빠르다”며 “이들을 소외시키면 곧 매출 기회 손실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로레알, 엘프, 스와치 사례를 ‘자충수(unforced error)’라 칭하며 “광고가 순간적 화제성은 얻을지 몰라도 브랜드 신뢰 하락이라는 비용을 장기적으로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브랜드 가치는 한순간에 무너지지만 재건에는 수년이 걸린다” — 안젤리 지안찬다니


● 기업 대응 엇갈려…‘빠른 사과’ vs ‘소신 고수’

스와치와 엘프는 빠르게 사과문을 내고 이미지 삭제·캠페인 중단에 나섰다. 반면, 아메리칸이글은 “젊은 층의 창의적 표현을 지지한다”며 광고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마케팅담당 부사장 애슐리 샤피로(Ashley Schapiro)는 링크드인에서 “‘얼마나 세게 밀어붙일까?’라는 질문에 시드니 스위니가 즉시 ‘끝까지 가보자’고 답했다”며 “우리도 도전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 기자 관점: ‘바이럴’ 지상주의가 만든 역설

기자는 ‘짧은 주목 집중 시간’과 ‘플랫폼 알고리즘’이 리스크 감수형 마케팅을 부추기고 있다고 본다. 사용자 피드에 하루 수천 개의 콘텐츠가 쏟아지는 환경에서, 브랜드들은 1~2초 만에 스크롤을 멈출 ‘충격 요법’을 선택한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브랜드 구축에 필요한 것은 단발적 노이즈보다 신뢰관계다. 결국 기업은 ‘일시적 바이럴’과 ‘장기적 가치를 훼손할 위험’ 사이에서 냉정히 균형을 잡아야 한다.

또한 Z세대·알파세대는 다문화 감수성이 높고, 소셜이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특징이 있다. 이들에게 ‘선 넘은’ 광고는 곧바로 불매운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데이터 기반 타깃팅과 크리에이티브 실험은 필요하지만, 사전 검증 과정에서 다양성 전담 인력을 배제하면 ‘알고도 밟는 지뢰’가 될 수 있음을 스와치 사태가 입증했다.


■ 결론

다양성 프로그램 축소로 생긴 ‘문화적 완충 장치’ 부재가 광고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 스와치·엘프·로레알 등 글로벌 브랜드 사례는 “바이럴을 노린 파격”과 “문화적 민감성”이 충돌할 때 어떤 후폭풍이 발생하는지 보여준다. 결국 기업들이 얻을 교훈은 분명하다. 짧은 주목 한 번보다는, 포용적 가치 위에 구축된 지속 가능성이 장기 매출과 평판을 지키는 유일한 해법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