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시장의 운명을 가를 중대 시점] 터키 금융시장이 야당 지도부를 겨냥한 중대한 사법 판결을 불과 며칠 앞두고 극도의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9월 16일(월) 열릴 이번 선고는 터키 공화인민당(CHP) 지도부 교체 여부를 가름할 것으로 전망되며, 이미 흔들린 주식·채권·외환 시장을 또다시 시험대에 올려놓을 것으로 보인다.
2025년 9월 12일, 로이터통신(Reuters) 보도에 따르면, 이번 판결은 3월 이스탄불 시장 에크렘 이마모울루(Ekrem Imamoglu) 구금 이후 이어진 정치‧사법 리스크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당시 ‘에르도안 최대 라이벌’로 꼽히던 이마모울루 체포 소식은 터키 증시와 리라화에 대규모 매도세를 촉발했다.
이번 판결 결과에 따라 야당 지도부 공백이 현실화할 경우,1 시장 참여자들은 정치 위험 프리미엄이 급격히 확대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포트폴리오 매니저 줄리아 펠레그리니(Allianz)는 “터키에겐 매우 중대한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1. 주식시장: 급락세 속 외국인 투자 이탈
9월 2일 이스탄불 CHP 도당위원장 해임 판결 직후, BIST 100 지수는 하루 동안 최대 5% 급락하며 6개월 만에 최악의 일일 낙폭을 기록했다. 은행업종 지수는 낙폭이 더 컸다. 특히 달러 환산 기준으로 보면, 3월 이후 벤치마크 지수 -15%, 은행 지수 -10%로 하락한 반면, 같은 기간 MSCI 신흥시장 지수는 23% 상승했다.
MSCI 신흥시장 지수는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MSCI)이 20여 개 신흥국 대표 종목으로 산출하는 글로벌 벤치마크다. 투자자들은 이를 통해 각국 증시 성과를 상대 비교한다.
2. 외환시장: 리라화 약세 지속
이마모울루 체포일인 3월, 리라화는 달러 대비 2.6% 급락하며 사상 처음 달러/리라 42.00을 터치했다. 이후 낙폭은 완화됐지만, 연중 누적 하락률은 9%를 넘어 신흥국 통화 중 최악의 부진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 미 달러 인덱스는 올해 10% 가까이 약세를 보이며 20년 만에 최악의 연간 성적을 내고 있다.
Ninety One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그랜트 웹스터는 “9월 초 판결 때와 유사하게 당국이 외환시장을 방어할 준비가 돼 있다”며 급격한 추가 폭락 가능성은 낮게 봤다. 그는 “당국은 달러 매도 및 유동성 흡수를 위한 절차를 마련해뒀다”고 설명했다.
3. 중앙은행 역할 및 외환보유액
터키 중앙은행(TCMB)의 경화(하드커런시) 보유액은 오랜 논란거리다. 3월 시장 혼란 직후 TCMB는 약 570억 달러를 투입했고, 9월 초 판결 직후에도 40억~50억 달러를 추가 사용해 재건 노력을 다시 후퇴시켰다.
금리 결정 역시 정치 변동의 직격탄을 맞았다. 3월 폭락 사태 후 TCMB는 350bp 인상(정책금리 46%)으로 긴급 선회했으나, 7월·9월 두 차례 연속 누적 550bp 인하를 단행하며 금리는 40.5%로 내려앉았다.
4. 채권‧CDS: 수익률 변동성↑‧기본 리스크↓?
국채 금리는 4월 중순 5개월 최고치를 기록한 뒤 최근 다시 상승 추세다. 외화 표시 장기국채(달러본드)는 1년 만에 최고 수준인데, 이는 신용스프레드가 축소됐음을 시사한다.
CDS(신용부도스와프)는 국가‧기업의 채무 불이행 위험을 헤지(보험)하는 파생상품이다. 수치가 낮을수록 ‘디폴트 보험료’가 저렴하다는 뜻으로, 투자자 신뢰 회복을 의미한다.
터키 5년물 CDS는 3월 급등 이후 점진적으로 하락해 현재는 사태 전 수준에 근접했다. 다만 BBVA 애널리스트들은 “월요일 판결이 터키 정치 지형을 재편해 자산가격에 새 위험 프리미엄을 가산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5. 전문가 시각 및 향후 변수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 결과가 에르도안 대통령의 최장기 집권 플랜과 야권 결집도를 동시에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본다. 사법부가 야당 지도부 공백 사태를 확정할 경우, 지방선거(2026년 예정) 및 차기 대선(2028년 예정)까지 정치 불확실성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투자 포인트: (1) 리라 수급 관리 능력, (2)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 방어 여력, (3) CDS 및 국채금리의 변동성 확대 여부가 단기 관전 포인트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는 ‘정치 리스크 프리미엄’과 ‘고금리 캐리매력’ 간 셈법을 저울질할 가능성이 높다.
용어 해설 & 추가 맥락
하드커런시는 달러·유로·엔화 등 국제 결제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통화를 말한다. 터키처럼 경화가 부족한 신흥국일수록 외환보유액의 크기와 질이 통화 안정성의 핵심이다.
리스크 프리미엄은 자산 가격에 내재된 ‘추가 위험비용’을 의미한다. 정치‧사법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투자자는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해 가격이 조정된다.
캐리트레이드는 고금리 통화를 매수하고 저금리 통화를 매도해 금리차(캐리)를 수익원으로 삼는 전략이다. 터키는 높은 정책금리 덕분에 캐리 매력이 크지만, 리라화 변동성이 이를 상쇄할 수 있다.
전문가 통찰
필자는 단기적으로 ‘속도 조절된 개입’을 통한 리라 방어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그러나 구조적 투자 심리 회복을 위해서는 사법 불확실성 해소와 독립적 통화정책 복원이 필수다. 시장이 주목하는 건 ‘판결 자체’보다 판결이 불러올 정치·정책 연쇄 반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