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죽은 몰 시대’의 종언인가
한때 쇠락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미국의 밀폐형 쇼핑몰(enclosed mall)이 전혀 다른 얼굴로 부활하고 있다. 시어스·메이시스 같은 전통 앵커(Anchor) 점포가 사라진 대형 몰은 더 이상 ‘텅 빈 유령도시’로 방치되지 않는다. 2025년 현재, 텅 빈 공간을 교회·볼링장·푸드마켓·클리닉·호텔·아파트로 재구성하며 리인벤트(재창조)라는 단어가 상업용 부동산(CRE) 업계의 핵심 화두로 떠올랐다.
이번 칼럼에서는 밀폐형 몰 재구조화가 장기적으로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지역 경제·투자 전략에 미칠 영향을 ①거시·산업 구조 ②소비·인구 트렌드 ③재무·투자 관점 ④정책·규제 환경 네 축으로 심층 분석한다.
1. 공급 과잉에서 멀티유즈 혁신까지 — 구조적 진단
- 공급 과잉 팩트 : 2007년 정점 당시 미국 1인당 쇼핑센터 면적은 24.2ft²로 유럽(4.5ft²)·일본(2.3ft²)의 5~10배에 달했다. 2024년 기준 총 1,100개 중 25% 이상이 Class B·C로 분류돼 매각·파산 위험에 직면했다.
- e커머스 충격 : 온라인 매출 비중은 2010년 4.2%→2025년 21.2%로 다섯 배 확대. 의류·가전 등 몰 핵심 카테고리가 직격탄.
- 금리·리파이낸싱 리스크 : 2021~2023년 초저금리로 연장한 CMBS(상업용 모기지담보증권) 1,900억 달러가 2026~2028년 만기도래. 금리 부담이 리파이낸싱 장벽으로 작용.
그러나 2022~2025년 사이 ▲코로나 엔데믹 이후 오프라인 리벤지 소비 ▲인구 고령화·MZ의 체험 소비 증가 ▲지방정부의 리모델링 인센티브 세 가지 변수가 맞물리며 ‘몰=오프라인 플랫폼’이란 접근이 새롭게 조명됐다.
2. 새로운 수요 원천: 교회·메디컬·엔터테인먼트·코리빙
대체 테넌트 | 주요 수익 모델 | 임대료/m² 비율 | 대표 사례 |
---|---|---|---|
종교·커뮤니티 | 예배, 교육, 카페 | 전통 앵커 대비 35~55% | 크로스로드(데이턴 몰) |
헬스케어·클리닉 | 1차 진료, 영상의학 | 50~70% | 클리블랜드 클리닉@먼로 몰 |
휴먼 엔터테인먼트 | 볼링, VR, 라이브 뮤직 | 70~120% | 뱅(Bang) 볼링@타이슨스 갤러리아 |
호스피탈리티·주거 | 호텔, 서비스드 레지던스 | 100~130% | 하얏트 플레이스@콜로라도 스프링스 몰 |
대체 테넌트의 공통점은 ①온라인 대체 불가 ②상시 트래픽 유입 ③장기 임차(10~20년)이다. 몰 오너는 앵커 하나로 한꺼번에 채우던 리스크 집중 구조를 여러 니치(niche)로 분산하면서 총 NOI(순영업소득)를 최대 3~4배 끌어올릴 수 있다.
3. 소비·인구 통계 트렌드와 몰 리바이벌
① 트리트노믹스와 노스탤지어
폭염·인플레이션 속 ‘작지만 확실한 행복’(트리트노믹스)이 확대되자 몰이 사회적 거실(third place) 기능을 회복했다. 1980~90년대 몰 문화를 회상하는 밀레니얼·X세대와 SNS를 통해 몰을 ‘인증’하는 Z세대가 교차 쇼핑을 촉진한다.
② 도심 회귀와 교외 몰의 재포지셔닝
플레이서(Placer.ai)에 따르면 교외(서버브) 밀폐형 몰의 2024~2025년 방문 증가율은 CBD 스트립몰 대비 +4.4%p 높다. 테일러 스위프트·비욘세 등 메가 투어 콘서트와 연계한 파트너십, 키덜팅(반즈앤노블·레고) 상품군 확장이 트래픽을 견인한다.
③ 인구 고령화와 헬스케어 몰
65세+ 인구가 2030년 7,360만 명(전체 20%) 전망. 의료·웰빙 클러스터를 구축한 몰은 메디케어·보험사의 장기 임대 수요를 확보해 배당 안정성이 높다.
4. 재무적 효과: NOI·CAPEX·밸류에이션 시나리오
베이스라인(앙커 공실 유지) vs. 멀티유즈 리모델
- 전통 앵커 폐점 시 평균 공실 기간: 30~48개월
- 이 기간 NOI 손실: 건당 연 300만~1,000만 달러
- 멀티유즈 개조 CAPEX: ft²당 120~200달러 (교회·헬스케어는 70~150달러)
- 리모델 후 평균 임대수익률: 9~12% (CAPEX 대비)
모건스탠리 CRE 리서치(2025.07)는 멀티유즈 개조 프로젝트 ROI가 공실 유지 대비 7년차부터 플러스 전환
된다고 분석했다. 순현재가치(NPV)가 15% 이상 개선돼 CMBS 리파이낸싱에도 긍정적 신호로 작용한다.
5. 정책·규제 변수: 지방세 인센티브와 ESG
미국 23개 주는 ‘몰 재생 법(Mall Revitalization Act)’ 또는 조닝 완화를 통해 주거·교육·의료 용도를 허용하고 있다. 텍사스·플로리다 주는 최대 20년간 재산세 감면을 제공하며, 캘리포니아는 2024년 SB-619법으로 폐몰 주택 개발 시 신속 허가 제도를 도입했다.
또한 SEC 기후 공시안(2025년 시행 예정)에 따라 REIT·상장 디벨로퍼는 탄소배출 스코프 1·2·3을 공개해야 한다. 몰 공실을 의료·문화 시설로 전환하면 탄소 집약도(intensity) 기준을 충족하기 용이해, 그린 프리미엄 확보 효과가 있다.
6. 리스크 요인과 반론
- 거시 리스크: 경기 침체 시 니치 테넌트(볼링·VR 등)의 수요 탄력성이 높아 NOI 변동성 증가 가능.
- CAPEX 과다: 디지털 인프라(5G, EV 충전)·리트로핏 공사 비용이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
- 재융자 금리: 10년물 미 국채 4%대를 전제로 한 사업성 분석이 금리 급등 시 깨질 수 있음.
- 커뮤니티 수용성: 교회·클리닉·셰어하우스 유치에 대해 세입자·주민 반발, 조닝 이슈 잠재.
7. 투자자 포트폴리오 전략
① 리테일 REIT 편차 투자
Simon Property, Macerich, CBL 등 몰 특화 REIT의 액티브 NAV 할인폭은 2023년 40%에서 2025년 18%로 축소. 교체 수요 가시화 시 추가 리레이팅 가능.
② Private Debt & JV
전환사채·프리퍼드 지분으로 리모델 CAPEX 참여 시 IRR 10~14% 목표. 지방정부 인센티브·탄소크레딧 연계 구조가 관건.
③ ETF·인덱스
멀티세트(REXR, STAG 등 산업+리테일), NURE(Nuveen ESG Retail ETF) 등으로 테마 분산. 소비재 ETF(XLY)·경험경제 ETF(EXPE)와 상관관계 분석 필요.
8. 결론: 밀폐형 몰의 Next Chapter
밀폐형 몰의 재창조는 단순한 ‘빈 공간 메우기’가 아니다. 교회·클리닉·라이브엔터·주거 등 오프라인 필수 경험을 끌어안으며 공간 믹스의 재정의가 진행 중이다. 이는 ①상업용 부동산 구조조정 ②지역사회 서비스 인프라 확보 ③탄소·ESG 규제 대응 등 세 갈래 장기 어젠다와 맞물려 있다.
투자자는 ‘몰은 죽지 않았다’는 통념 뒤에 숨은 데이터, 예컨대 리모델 후 트래픽·NOI·탄소배출 절감 지표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오프라인 쇼핑 생태계의 미래는 앵커 백화점이 아닌, 테넌트의 다양성과 지역사회와의 상호작용(interaction)에 달려 있다.
결국 몰의 가치는 쇼핑+교류+웰빙+문화가 융합된 ‘하이브리드 허브’로서의 역량에 따라 재평가될 것이다. 이 흐름을 선제적으로 포착한 투자자와 운영사만이 고금리 시대에도 지속 가능한 리턴을 확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