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발(Reuters) — 일본 기술투자회사 소프트뱅크그룹(9984.T)이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Intel)에 20억 달러를 신규 투자한다고 18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손정의 회장이 주도해 온 대규모 인공지능(AI) 및 반도체 전략의 일환으로, 소프트뱅크는 미국 내 칩 제조·공급망 확대를 선제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2025년 8월 19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지분 투자는 소프트뱅크가 최근 수년간 전개해 온 ‘AI 슈퍼사이클’ 포트폴리오 구축의 연장선에 위치한다. 손 회장은 “미국이 차세대 반도체 중심지로 발돋움할 것”이라는 신념을 거듭 강조해 왔으며, 인텔을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핵심 축’으로 평가한다.
소프트뱅크는 지난해 9월 ARM 상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을 바탕으로 AI·클라우드·데이터센터 생태계 전반에 공격적 투자를 이어 가고 있다. 이번 인텔 지분 취득도 그 연장선으로, 회사 측은 “미국 경제 내 반도체 공급망 다변화와 고부가가치 설계 역량을 동시에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요 투자 프로젝트 일람
1) STARGATE: 5,000억 달러 규모 데이터센터 구상
‘스타게이트(Stargate)’는 소프트뱅크·오픈AI(OpenAI)·오라클(Oracle) 3사가 함께 추진하는 초대형 데이터센터 합작법인이다.
※배경 지식 데이터센터(Data Center)는 AI 모델 학습·추론을 처리하는 컴퓨팅 시설로, 첨단 GPU·전력·냉각 인프라가 필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올해 1월 프로젝트를 공식 발표하며 “최대 5,000억 달러 투입”을 예고했다.
그러나 8월 7일 요시미쓰 고토 소프트뱅크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협력사와의 협상 장기화 및 부지 선정 문제로 일정이 지연됐다”고 밝혔으며, 일본 3대 ‘메가뱅크’를 포함한 미국계 금융사들이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8월 18일 폭스콘(Foxconn)은 “오하이오주 구(舊) 전기차 공장을 전환해 스타게이트용 데이터센터 장비를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
2) OPENAI: 400억 달러 투자 라운드 선도
챗GPT 개발사 오픈AI 지분 확대 역시 핵심 축이다. 소프트뱅크는 전체 400억 달러 규모 ‘시리즈 F’ 투자에서 225억 달러를 책임지며 2025년 말까지 자금을 납입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손 회장이 “AI 파트너 생태계 장악”을 위해 오픈AI 이사회 영향력을 노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3) PERPLEXITY AI: 차세대 검색엔진
3년 차 스타트업 ‘퍼플렉시티AI’는 AI 기반 검색 서비스를 운영한다. 엔비디아와 소프트뱅크 등으로부터 현재까지 총 10억 달러를 조달했으며, 기업가치는 140억 달러로 평가됐다.
퍼플렉시티AI는 ‘생성형 검색(Generative Search)’ 기법을 적용해 사용자가 질문하면 답을 직접 문장으로 생성·요약하는 것이 특징이다.
4) AMPERE COMPUTING: ARM 생태계 확장
지난 3월 소프트뱅크는 65억 달러에 앰페어 컴퓨팅(Ampere Computing) 인수를 발표했다. 앰페어는 ARM 설계 기반 데이터센터 CPU를 개발해 오라클 클라우드 등에서 사용 중이다. 이번 인수로 ARM 지분을 보유한 소프트뱅크가 서버용 고성능 CPU까지 수직계열화를 추진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5) GRAPHCORE: 영국 AI 칩 업계 재편
2024년 초 소프트뱅크는 영국 AI 칩 스타트업 그래프코어(Graphcore)를 비공개 금액에 인수했다. 그래프코어는 한때 ‘포스트 엔비디아’로 기대를 모았으나, 자금난과 제품 완성도 문제로 고전했다. 전문가들은 “소프트뱅크가 그래프코어 특허·인력을 흡수해 ARM·앰페어와 시너지를 노릴 것”이라고 전망한다.
6) ARM HOLDINGS: IPO 이후 지분 유지
2023년 9월 런던증시 대신 뉴욕 나스닥에서 상장한 ARM은 545억 달러 시가총액으로 데뷔했다. 소프트뱅크는 여전히 과반 이상의 지배권을 확보하고 있으며, 모바일·사물인터넷(IoT)·데이터센터용 칩 설계사업 외에 ‘완제품 레퍼런스 디자인’ 출시를 추진 중이다.
7) NVIDIA: 다시 쌓는 지분
소프트뱅크는 2019년까지 엔비디아 지분 약 5%를 보유했으나 처분했다. 챗GPT 열풍이 본격화된 2022년 말 이후 재매수에 나서 올해 6월 말 기준 48억 달러 규모 주식을 보유한 것으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에 나타났다.
용어·배경 설명
• AI 슈퍼사이클: 데이터, 알고리즘, 컴퓨팅 파워가 동시에 폭발적으로 증가해 AI 서비스가 생활·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장기 추세를 뜻한다.
• GPU(그래픽처리장치): 본래 그래픽 연산용 칩이지만, 병렬 처리에 강해 대규모 AI 모델 학습에 필수적이다.
• 파이낸싱(Financing): 프로젝트나 기업 인수 시 차입·지분 투자 등을 조합해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를 말한다.
전문가 시각
필자가 취재한 복수의 애널리스트들은 손정의 회장의 대규모 베팅을 두고 “AI 인프라 수직계열화”라는 공통 키워드를 제시한다. 즉, 칩 설계(ARM) → 칩 제조·패키징(INTC) → 서버용 CPU·가속기(AMPERE·GRAPHCORE) → 클라우드 인프라(ORCL·STARGATE) → AI 서비스(OPENAI·PERPLEXITY)로 이어지는 ‘끝단부터 끝단까지(End-to-End)’ 밸류체인을 손 회장 한 사람이 실질적 지배력 아래 두려 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정부가 CHIPS & Science Act를 통해 반도체 설비투자 세액공제를 확대하고, AI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규제 완화를 검토 중인 점은 소프트뱅크의 전략과 맞물린다. 인텔 투자 발표 시점도 미 정부의 2차 지원금 가이드라인 직후라는 점에서 ‘정책 프리미엄’을 선점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반면 리스크 요인도 적지 않다. 첫째, 고금리 환경에서 5,000억 달러 규모 데이터센터 건설 자금을 온전히 외부 차입으로 충당하기는 쉽지 않다. 둘째, 글로벌 칩 공급망이 지정학적 변수에 취약해 타이밍이 중요하다. 셋째, 오픈AI 지분법 평가가치가 하락할 경우 차입 레버리지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시장 참여자들은 “소프트뱅크 비전펀드 1·2호의 잇따른 평가손실” 경험을 상기하며 실적 가시성을 요구하고 있다.
향후 관전 포인트
1) 스타게이트 사이트 확정: 미국 내 전력·수자원·토지비용을 감안할 때 서부 사막 지역 또는 남부 휴스턴 벨트가 유력하다는 관측.
2) 인텔-ARM 협력 구체화: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IFS)가 ARM 기반 서버 칩 생산을 확대할지에 따라 소프트뱅크 생태계의 시너지 폭이 달라질 전망.
3) 엔비디아 주가 방향성: 손 회장이 보유 지분을 확대할수록 비전펀드의 순자산가치(NAV) 변동성이 높아질 가능성.
종합하면, 손정의 회장은 “AI 시대의 데이비드 로크펠러”가 되고자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칩에서 클라우드, 소프트웨어까지 ‘돈이 몰리는 모든 지점’에 동시다발적 투자를 감행함으로써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의 주도권을 노리는 것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각 프로젝트의 구체적 수익률 구조와 실현 시점이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다만, 소프트뱅크가 산업 패러다임 전환의 첨병 역할을 자임하며 ‘빅베팅 전략’을 유지하는 한, AI·반도체 자산에 대한 시장의 관심도 당분간 식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