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AI(OpenAI)의 최신 대형언어모델(LLM) GPT-5가 소비자 시장에서 초기 기대만큼의 열기를 얻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엔터프라이즈) 부문에서는 빠르게 영향력을 넓히며 경쟁 지형을 재편하고 있다.
2025년 8월 14일, CNBC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사티야 나델라의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지원 아래 급성장한 오픈AI는 기업 고객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이는 챗GPT 열풍으로 형성된 대중적 인지도를 넘어, 실질적인 매출과 장기적인 수익성을 담보할 수 있는 B2B 시장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지난주 출시된 GPT-5는 첫날부터 소비자용 챗봇 사용자들로부터 “직관성이 떨어진다”는 혹평을 받았고, 결국 오픈AI는 유료 구독자에게 GPT-4 복귀 옵션을 다시 제공하는 해프닝을 겪었다. 그러나 이 신형 모델의 진정한 목표는 일반 소비자가 아닌 기업 고객이라는 점이 이번 보도를 통해 분명해졌다.
엔터프라이즈 시장 공략: 가격·성능·속도 3박자
경쟁사인 앤스로픽(Anthropic)이 일찌감치 기업용 AI 영역을 선점하며 ‘Claude’ 시리즈로 확보한 입지를 지키려 애쓰는 가운데, GPT-5는 최고 등급 모델 대비 최대 7.5배 낮은 가격을 제시하며 판을 흔들고 있다. 특히 Cursor·Vercel·Factory·JetBrains·Box 등 개발자 중심 스타트업 및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GPT-5를 기본 모델로 채택했다고 공개했다.
Box의 최고경영자(CEO) 애런 레비(Aaron Levie)는 “GPT-5는 장문의 복잡한 계약서나 제품 로드맵처럼 논리적 추론이 필수적인 문서를 다룰 때 기존 모델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을 보여준다”며 “실질적 업무 자동화를 가능케 하는 핵심 전환점”이라고 평가했다.
500명 규모 전담 영업팀,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이중 트랙’
오픈AI는 최고운영책임자(COO) 브래드 라이트캡(Brad Lightcap) 산하에 500명 이상으로 구성된 자체 엔터프라이즈 영업 조직을 구축했다. 이는 클라우드 파트너이자 최대 투자자인 마이크로소프트를 통해서만 고객을 유치하던 과거 전략에서 벗어나, API와 제품 경험을 직접 통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다만 운영비용 압박은 심각하다. 초대규모 모델을 학습·추론하기 위한 그래픽처리장치(GPU) 인프라 비용이 급증하면서 오픈AI는 올해 약 80억 달러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CNBC는 업계 관계자를 인용해 “오픈AI와 앤스로픽 모두 고객 락인(lock-in)을 위해 막대한 선투자를 지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본 시장의 평가: 5,000억 달러 vs 1,700억 달러
오픈AI는 5,000억 달러 기업가치를 목표로 구주(舊株) 매각을 추진 중이며, 챗GPT 주간 이용자가 7억 명에 육박한다고 밝혔다. 반면 앤스로픽은 1,700억 달러 밸류에이션으로 신규 자금을 유치하고 있다. AI 열풍 속에서 양사 모두 천문학적 평가를 받지만, 최종 승자는 엔터프라이즈 매출을 얼마나 빠르게 ‘현금 흐름’으로 전환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코딩·설계 능력 평가: GPT-5 ‘동급 최강’ 주장
AI 코딩 플랫폼 Qodo는 실제 코드 리뷰 벤치마크를 통해 GPT-5가 보안 취약점·결함 코드 탐지에서 경쟁 모델을 압도했다고 밝혔다. 특히 Gemini 2.5, Claude Sonnet 4, Grok 4를 포함한 동급 모델 중 유일하게 ‘치명적 버그’를 정확히 짚어냈다.
웹 애플리케이션 클라우드 플랫폼 Vercel의 최고기술책임자(CTO) 말테 윱(Malte Ubl)은 “그동안 AI 코딩 모델은 Claude가 독주했으나, GPT-5 출시로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다”고 언급했다. 그는 “프로토타이핑과 제품 디자인 초기 단계에서 GPT-5의 창의성이 돋보인다”고 덧붙였다.
기업 고객 통계: 앤스로픽의 ‘규모’ vs 오픈AI의 ‘속도’
앤스로픽 내부 자료에 따르면 기업 부문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하며, 2024년 대비 연환산(ARR) 매출이 17배 성장했다. 올 들어 8·9자리(억 달러 이상) 계약 건수가 지난해 전체보다 3배 늘었다는 설명이다. 특히 AWS·구글 클라우드·스노우플레이크·팔란티어 등 다양한 생태계에 Claude 모델이 깊숙이 통합돼 있어 ‘확장성’이 강점으로 꼽힌다.
반면 오픈AI는 GPT-5 API 호출량이 일주일 만에 ‘추론·에이전트 구축’ 부문에서 2배, 계획·다중 단계 추론(planning & multi-step reasoning) 부문에서 8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속도전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모양새다.
전문 용어 설명1)
· 멀티스텝 추론: AI가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단계를 계획·실행·검증하며 사고하는 능력. 단순 Q&A를 넘어 복합적 비즈니스 로직을 자동화하는 데 필수 기능이다.
· 락인(Lock-in): 특정 벤더의 제품·서비스에 종속돼 변경 비용이 크게 증가하는 현상.
· Inference(추론): 학습된 모델이 실제 데이터를 입력받아 결과를 생성하는 과정. 클라우드 GPU 사용량과 직결돼 비용을 좌우한다.
가격 전략이 관건
노코드 플랫폼 Factory의 CEO 마탄 그린버그(Matan Grinberg)는 “우리 고객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요인은 모델 호출 가격”이라며 “GPT-5의 저렴한 추론 비용이 사용자 실험 빈도를 크게 늘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복잡한 솔루션 구현 계획을 짜는 데 GPT-5의 일관성과 장기 기억력이 두드러진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스타트업 Lovable의 공동창업자 안톤 오시카(Anton Osika)는 “정식 출시 전 베타 테스트 단계에서 복합 과제 수행 능력과 행동 기반 반성(reflection) 능력이 대폭 향상됐다”고 밝히며 “정확도와 신뢰성이 동시 개선됐다”고 전했다.
기자 분석: ‘지속 가능한 우위’는 데이터·생태계로 귀결
가격 인하 경쟁은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지만, 장기적으로는 데이터·도메인 특화·생태계 파트너십이 지배력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오픈AI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애저(Azure)와 ‘선택형 이중 트랙’을 유지하는 동안, 앤스로픽은 아마존·구글·스노우플레이크 등 복수의 클라우드 파트너를 끌어안으며 ‘멀티 클라우드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결국 향후 2~3년 내 핵심 관전 포인트는 ① AI 추론 비용의 구조적 하락 속도, ② 산업별 맞춤형 모델 성능, ③ 정부·규제 환경으로 압축된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도입을 완료한 후 ‘갈아타기’는 매우 어렵다”며, 지금 벌어지는 가격·성능 공세가 10년 이상 지속될 고객 관계를 결정짓는 ‘선발주자 효과(first-mover advantage)’를 낳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1) 용어 설명은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보충 자료이며, 원문 내용과 수치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