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교역이 다시 한 번 ‘속도 저하 구간’에 진입했다. 팬데믹 이후 이어져 온 반등 랠리가 사실상 마무리 국면에 들어선 가운데, 교역량은 최근 몇 달 동안 정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25년 8월 10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글로벌 상품 교역량은 ▲소비 둔화 ▲고금리 기조 ▲재정 긴축 등 복합 요인에 눌려 횡보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선진국과 신흥국을 가리지 않고 전반적인 모멘텀 약화가 관측된다는 점이 시장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주요 통계 지표가 가리키는 ‘플랫라인’
네덜란드 경제정책분석국(CPB Netherlands Bureau for Economic Policy Analysis)이 집계·발표하는 세계 교역지수는 2025년 연초 이후 사실상 가로누운 추세선을 그리고 있다. CPB 지수는 글로벌 교역 흐름을 월 단위로 추적·비교하는 대표적 선행 지표로, 무역·물류 업계는 물론 각국 중앙은행과 국제기구도 정책 결정 시 참고하는 바로미터다.
CPB 지수에 따르면 올해 들어 상품 교역량이 전년 대비 뚜렷하게 증가한 시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 일본, 일부 아시아 지역에서 일시적 ‘재고 축적’ 효과로 운송량이 반등한 구간이 있었으나, 2분기 중에는 다시 둔화세로 돌아섰다. 이는
“수요 부족이 장기화할 가능성”
을 시사한다고 시장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소비·통화·재정, 삼중(三重) 압력
글로벌 컨설팅 기관 캐피털 이코노믹스(Capital Economics)는 “팬데믹 이후 이어진 교역 회복 국면이 이미 소진됐다”고 진단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선진국 소비자들은 고금리·고물가 환경 속에서 수입 제품 구매를 줄이고 있으며, 서방 정부의 긴축적 재정 운영이 국내 총수요를 동시에 끌어내리고 있다.
아시아 시장 역시 무풍지대가 아니다. 2025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전자·부품 수출이 선전하며 ‘버팀목’ 역할을 해 왔으나, 하반기 들어 주문 감소(Thin Order Book)와 운송 지연이 서서히 번지고 있다. 1
‘수출 엔진’ 중국마저 힘 빠져
한때 세계 교역 확대의 외연을 책임졌던 중국도 최근엔 성장 기여도가 크게 낮아졌다. 미·중 갈등 심화와 공급망 다변화 움직임 속에서, 중국산 제품에 대한 선진국 의존도가 완만하게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중국 내수 경기가 기대만큼 회복되지 못하면서 대외 출하량 자체가 줄어드는 이중 부담이 현실화됐다.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보고서에서 “2026년까지 장기적인 부진 국면(prolonged soft patch)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특히 “교역 증가율이 글로벌 GDP 성장률을 하회하는 역전(逆轉)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 수십 년간 ‘세계 GDP보다 무역이 더 빨리 성장한다’는 경험칙이 뒤집히는 셈이다.
보호무역 공포는 완화됐지만…“시장 심리 여전히 불안”
교역 환경을 어둡게 하는 요인으로 ‘전면적 보호무역’ 우려가 자주 거론돼 왔다. 다행히 미국·EU·중국 등 주요 경제권이 관세 전면전으로 치닫는 시나리오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선 수출기업들은 수요 불확실성·물류 병목·정책 변수라는 3중 난관을 피하기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물류비는 팬데믹 당시 급등 수준에서 어느 정도 진정됐지만, 선박 회전율과 항만 혼잡 지수가 정상 궤도로 복귀했다고 보기엔 이르다”고 전했다. 실제로 동아시아~북미 구간 항로에서는 선복(船腹) 부족·컨테이너 재배치 문제로 평균 운송일이 10~15% 길어졌다는 통계도 있다.
전문가 시각: “동적 균형 회복까지 2~3년”
국제교역학회 관계자는 “각국이 산업정책과 에너지 안보 정책을 본격화하면서, 중장기적으로는 무역 패턴 자체가 지역화·블록화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창출되는 추가 가치는 이전과 달리 지역 내 공급망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다만 글로벌 가치사슬(GVC)의 ‘위험 분산’ 노력이 일정 수준 완료되면, 2027년 이후엔 다시 완만한 회복 국면이 도래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그 과정에서 디지털 무역·친환경 인프라 투자가 교역회복의 촉매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용어 돋보기
CPB 네덜란드 경제정책분석국은 네덜란드 정부에 경제 전망·정책 제언을 제공하는 독립 기관이다. 매월 발간하는 ‘세계 교역 모니터(World Trade Monitor)’는 수출입 물동량과 가격을 종합해 글로벌 교역 흐름을 정량화한 데이터베이스로, 국제금융기구·중앙은행·투자은행이 주요 참고 지표로 활용한다.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런던에 본사를 둔 거시경제 리서치 회사다. 글로벌 매크로·금융시장·원자재 등 다양한 분야 보고서를 발간하며, 주요 고객으로 다국적 기업·기관투자가·공공기관이 포함돼 있다.
전망과 결론
결국 ‘골든 에이지’로 불렸던 고속 성장기의 교역 환경은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모습이다. 거시경제·정책·지정학 리스크가 복합적으로 얽힌 가운데, 교역 지표는 당분간 제한적 변동성 속 횡보할 가능성이 높다.
향후 투자·정책 의사결정자는 ▲금리 동향 ▲소비 회복 시점 ▲공급망 재편 속도 등 핵심 변수에 촉각을 곤두세울 필요가 있다. 특히 ‘선제적 위험 관리’와 ‘시장 세분화 전략’이 기업 생존전략의 핵심 키워드로 부상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