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과 신흥국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글로벌 자금 흐름을 좌우해 온 ‘선진국 대(對) 신흥국’ 구분이 빠르게 희미해지고 있다. 각국의 산업·물가·정책 환경이 과거와 달라지면서 투자자들은 수십 년간 굳어져 온 이분법적 자산 배분 관행을 재고하고 있다.

2025년 8월 9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지수 사업을 운영해 온 MSCI와 JP모건 같은 기관은 국가를 ‘선진국’이나 ‘신흥국’으로 구분해 트릴리언(1조)의 달러 규모 자금을 움직여 왔다. 그러나 최근 다수의 신흥국이 안정적 물가, 첨단 산업 역량, 신뢰할 만한 거시 정책을 동시에 확보하면서 해당 분류 체계가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콜럼비아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UBS 전략가는 “신흥국과 선진국을 나누는 기준이 무엇인지 묻는다”면서 “GDP(국내총생산) 1인당이나 빈곤율을 언급하곤 하지만, 아랍에미리트(UAE), 한국, 체코, 칠레처럼 소득 수준이 높아도 여전히 ‘신흥’으로 분류된 국가가 많다는 사실을 곧 깨닫는다”고 설명했다.

‘신흥국=취약한 제도·높은 변동성’이라는 오래된 공식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브라질은 항공기를 만들고, 대만은 세계 반도체 공급망을 주도하며, 폴란드는 유럽 고부가가치 제조 생태계에 깊숙이 편입돼 있다.

산업 고도화뿐 아니라 재정·통화 정책에서도 ‘선진형’ 경영이 확연해지고 있다.

지난해 MSCI 신흥국 지수에 포함된 국가들의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대 초반으로, 같은 기간 선진국 평균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물가 안정이라는 핵심 거시지표에서 이미 격차가 좁혀졌다는 의미다.

정치적 리스크 또한 ‘국지적’이 아니라 ‘글로벌’ 이슈가 됐다.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가 선거 불확실성과 대중 영합주의(포퓰리즘)로 몸살을 앓으면서 ‘정치는 신흥국이 더 위험하다’는 통념이 힘을 잃고 있다.

물론 아직 시장 깊이(depth)와 유동성에서는 차이가 존재한다. 신흥국 주식의 글로벌 시가총액 비중은 1위 중국이 3.1%에 불과하며, 가격 변동성도 여전히 높다. 이에 따라 위험 조정 수익률 관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UBS의 전략 변곡점1

UBS는 국가를 이분법이 아닌 ‘위험·수익률 연속선’상에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AI 수요가 견인하는 중국 기술주, 구조적 성장세를 이어 가는 인도·브라질 주식, 그리고 달러 표시 신흥국 채권을 유망 자산으로 꼽았다. 스프레드(가산금리)가 좁혀졌음에도 절대 수익률이 매력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용어 해설투자자 참고

MSCI 지수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이 발표하는 대표적인 주가지수로, ‘패시브펀드’를 포함해 전 세계 자금 유입·유출을 결정짓는 벤치마크로 사용된다. JP모건 신흥국 채권지수 역시 글로벌 채권 투자 흐름의 지표다. ‘이머징 마켓(EM)’이라는 용어는 1980년대 투자은행 살러먼 브라더스가 처음 사용했으며, 성장 잠재력은 크지만 재정·제도 기반이 상대적으로 약한 국가를 이르는 말이었다.

전문가 시각

국가 분류 체계가 현실성을 잃으면 지수 편입 자체가 투자 위험 요인으로 전락할 수 있다. 액티브 운용사는 개별 국가·산업·기업 분석을 통해 지수를 넘어서는 수익을 추구해야 하며, 리스크 프리미엄(위험 보상금리)을 재규정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한국처럼 거시 지표가 안정된 ‘신흥국’은 향후 선진국 승격 여부가 시장 심리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시장은 ‘선진국·신흥국’ 레이블보다 정책 일관성, 산업 경쟁력, 거버넌스 질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투자자는 국적이 아니라 ‘위험 대비 수익 구조’를 먼저 살펴야 한다는 점이 이번 논의의 핵심이다.


미래 전망

향후 10년간 친환경 전환, AI·반도체 공급망, 지정학적 재편 등이 글로벌 자본 배분의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기존 ‘EM·DM’ 구분은 더욱 무의미해질 가능성이 크다. UBS뿐 아니라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속속 유사한 견해를 내놓고 있는 만큼, 투자 전략 수립 시 국가 라벨을 맹신하는 관행은 빠르게 줄어들 전망이다.

자본시장이 성숙할수록 데이터 기반, 팩트 기반의 국가·산업 분석 필요성이 커진다. 신흥국 증시 변동성은 여전히 높지만, 변동성이 반드시 위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변동성 속 기회’를 포착하려면 정교화된 리스크 관리다각화 전략이 핵심이다.

결론적으로, 전통적 분류 체계는 투자자들에게 여전히 참고 지표로 쓰이겠지만, 실질적 투자 의사 결정에서는 ‘국가별 맥락’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포트폴리오 설계를 앞둔 투자자라면 물가 안정, 재정건전성, 산업 고도화, 정책 신뢰도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위험 대비 기대수익을 최대화하는 전략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