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첫날 ‘급등 랠리’…월가의 지나치게 보수적인 IPO 공모가 책정 논란

뉴욕 월가(Wall Street)에서 최근 진행된 대형 기술기업 신규 상장(IPO) 종목들이 상장 첫날(First-day pop)에 기록적으로 급등하면서, 주관사들이 지나치게 낮은 공모가를 제시해 기업들이 실질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을 놓치고 있다는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2025년 8월 22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올해(2025년) 미국 증시 상위 20개 IPO의 첫 거래일 평균 상승률은 36%에 달했다. 이는 애널리스트들이 ‘투자자 보상과 적정 기업가치 사이의 균형점’으로 간주해 온 15%~20% 범위를 훌쩍 넘어서는 수치다.

연합 통신사 로이터(Reuters)가 LSEG 데이터베이스를 인용해 산출한 결과에 따르면, 해당 20개 기업에는 협업 소프트웨어 업체 피그마(Figma)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서클(Circle)이 포함돼 있다. 별도로 분석된 딜로직(Dealogic) 자료는 “만약 이들 공모주가 애널리스트가 제시한 15%~20% 상승 구간에 맞춰 가격이 책정됐다면, 기업들이 추가로 확보할 수 있었던 자금은 61억 달러”라고 지적했다.


▶ ‘IPO 팝(POP)’ 현상이란?

IPO 팝은 공모가 대비 상장 첫날 주가가 급등하는 현상을 뜻한다. 투자자 입장에선 단기간 고수익을 얻을 수 있지만, 기업과 기존 주주 입장에선 ‘저평가로 인한 기회비용 손실’을 의미한다. 월가에서는 통상 15% 내외의 상승률을 적정 수준으로 본다.


▶ 보수적 가격 책정 배경

분석가 4명, 벤처캐피털(VC) 임원 2명, 업계 전문가 2명은 로이터 인터뷰에서 “우려되는 요인은 금리 고점,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규모 관세 정책(글로벌 무역전쟁)에 따른 시장 변동성”이라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2022년 이후 상장 시기를 미뤄왔던 기업들이 올해 본격적으로 시장에 나오자, 주관사들이 ‘강한 데뷔’를 보장하기 위해 보수적으로 가격을 책정한다는 설명이다.

IPO 연구기관 IPOX의 연구원 루카스 뮐바우어(Lukas Muehlbauer)는 “보수적 책정은 장기적 브랜드 가치와 추후 자본 조달의 용이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피그마는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250% 급등했고, 서클은 168% 상승했다. 암호화폐 거래소 불리시(Bullish) 역시 84% 뛰어올랐다.


▶ ‘깨진(Broken)’ IPO 프로세스 지적

“IPO 팝이 발생할 때마다 전통적 프로세스가 여전히 깨져 있음을 보여준다.” — 필 해슬릿(Phil Haslett·EquityZen 공동창립자)

해슬릿은 “로드쇼(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는 막대한 개인투자자(리테일) 수요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개인투자자의 ‘데뷔 당일’ 매수 의향은 은행이 사전에 정확히 가늠하기 어렵다. 이에 일부 핀테크 브로커리지 로빈후드(Robinhood)·소파이 테크놀로지스(SoFi) 등이 개인고객에게 공모주 배정을 확대하고 있으나, 시장 전체를 커버하기엔 아직 한계가 있다.


▶ “공모가 보수적이면 기업이 손해”

벤처캐피털 씨어리 벤처스(Theory Ventures) 창립자 토마시 통구즈(Tomasz Tunguz)는 “IPO 시장이 3년간 사실상 얼어붙어 있었던 만큼 뱅커들도 실제 수요를 파악하기 어렵다”면서도, 신규 상장 건수가 늘어날수록 기업들이 주관사에 ‘공격적 가격’ 요구를 높일 것으로 내다봤다.

가을 시즌(9~11월)에는 핀테크 거물 클라나(Klarna), 암호화폐 거래소 제미니(Gemini), 의료기기업체 메드라인(Medline) 등이 대기 중이다. 전문가들은 “연말 전 수요가 몰리면 보수적 가격 정책이 다시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고 진단했다.


대안: 직접상장·SPAC

일각에서는 직접상장(Direct Listing)을 통한 ‘수요 왜곡 최소화’를 제안한다. 스포티파이(Spotify)와 코인베이스(Coinbase)가 대표 사례다. 다만, PwC 미주 IPO 서비스 총괄 마이크 벨린(Mike Bellin)은 “직접상장은 아직 검증된 트랙 레코드가 적어, 많은 기업들이 안정성을 이유로 전통적 IPO를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2020~2022년 출현한 SPAC(기업인수목적회사) 역시 규제 강화, 상장 후 변동성, 리뎀션(환매) 위험 탓에 본격 대안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최근 일부 고성장 테크·크립토 기업이 다시 SPAC 합병을 검토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틈새 전략’으로 평가된다.


▶ 시사점 및 전망

시장 전문가들은 “IPO 가격 전략은 기관투자자 보호발행사 자금 극대화 사이에서 여전히 줄타기”라고 요약한다. 전통적 로드쇼 방식이 리테일 수요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구조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르네상스 IPO 지수(Renaissance IPO Index)가 2025년에만 15% 상승해 S&P500을 앞지르고 있다는 사실은, 투자자들이 신생 성장주의 ‘위험-보상 비율’을 여전히 매력적으로 평가함을 방증한다. 다만 관세·금리·정책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한, 주관사들은 ‘상장 첫날 굴욕’을 피하기 위해 보수적 태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종합하면, IPO 시장이 본격 회복 국면에 진입하면서 공모가 적정성, 개인투자자 참여 확대, 대안 상장 방식 등에 대한 논의가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들은 “기업과 투자자 모두 살펴야 할 핵심 변수는 시장 유동성과 정책 방향”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