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스 글로벌 설계자 리처드 베이커, 엇갈린 유산 남기고 사임하다

리처드 베이커가 파산한 럭셔리 유통 제국 삭스 글로벌(Saks Global)의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소매업과 부동산 투자 영역을 오가며 오랜 기간 활동한 인물로, 초기에는 대형 성공을 거뒀지만 최근에는 치명적인 실패도 경험했다.

2026년 1월 14일,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베이커는 화요일 사임했으며 그의 뒤를 이어 전 니만 마커스(Neiman Marcus) 최고경영자 제프리 반 레몬독(Geoffrey van Raemdonck)이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이 같은 임원 교체는 그가 주도해 만든 고급 유통사 Saks Global가 미국 파산법 제11장(Chapter 11) 보호 신청을 하며 진행된 것이다.

베이커는 2024년, 캐나다에 본사를 둔 대기업 허드슨스 베이 컴퍼니(Hudson’s Bay Co)$2.7 billion에 니만 마커스를 인수하도록 주도했다. 허드슨스 베이는 2013년부터 삭스(Saks)를 소유해 왔으며 이후 미(美) 럭셔리 자산들을 분사해 Saks Global을 출범시키고 명품 백화점 Saks Fifth Avenue, Neiman Marcus, Bergdorf Goodman을 한데 모았다. 베이커는 삭스 글로벌의 집행의장을 맡았고, 이달 초 베테랑 임원 마크 메트릭(Marc Metrick)이 돌연 사임하자 잠시 CEO 직책도 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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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DNA

베이커(60세)는 코넬 대학교(Cornell University) 출신으로 모교의 자문위원회에도 여전히 참여하고 있다. 그의 가계는 부동산과 깊은 관련이 있다. 아버지 로버트 C. 베이커(Robert C. Baker)는 상업용 부동산 중심의 National Realty & Development Corp (NRDC)를 설립했고, 모계 쪽 조부는 쇼핑센터 형태인 스트립몰(strip mall)을 대중화한 Loomis Grossman였다.

2005년 베이커는 소매업자들을 겨냥한 사모펀드인 NRDC Equity Partners를 설립하는데 참여했다. 이 펀드의 포트폴리오에는 독일 최대 백화점 체인인 Galeria Karstadt Kaufhof도 포함돼 있다.

그의 경력 초반에는 ‘마법 같은 성과’가 있었다. 2006년 Lord & Taylor를 인수한 뒤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매출을 크게 끌어올렸고, 2008년에는 북미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 중 하나인 Hudson’s Bay를 인수해 오랜 기간 마이너스였던 동일 점포 매출(same-store sales)을 회복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후 베이커는 Lord & Taylor를 허드슨스 베이에 편입시켰고 2013년에는 Saks Fifth Avenue를 인수해 럭셔리 분야에서 주요한 진출 기반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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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베이커의 성공이 영원하지는 않았다. 2017년 허드슨스 베이의 네덜란드 진출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2019년 온라인 소매의 부상으로 오프라인 쇼핑이 압박을 받을 때 베이커는 Lord & Taylor를 $100 million에 매각했다. 해당 체인은 곧 폐업했다. 또한 허드슨스 베이의 캐나다 사업부는 지난해(2025년) 모든 매장을 닫았으며, 이는 355년의 역사를 마감하는 사건이었다.

삭스의 고전(苦戰)

당시 허드슨스 베이 CEO였던 헬레나 폴크스(Helena Foulkes)는 Lord & Taylor 매각 당시 “삭스와 그 상승 잠재력에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삭스는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2024년 세 체인을 합쳐 Saks Global을 출범시키는 합병으로 이어졌다. 합병은 새로운 회사에 $2 billion이 넘는 부채를 떠안겼고, 이는 글로벌 럭셔리 매출이 둔화되는 시점과 맞물렸다.

공급업체들은 삭스가 제때 대금을 전액 지급하지 못하자 상품 공급을 중단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매장에는 제품 재고가 부족해졌다. Circana의 수석 소매 자문관 마샬 코헨(Marshal Cohen)은 “제품이 선반에 없는 소매점을 한 번 돌아보면 소비자는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삭스의 막대한 매장 면적과 베이커의 순수 럭셔리에 대한 집중은 충돌을 일으켰다. SageBerry Consulting의 사장 스티븐 데니스(Steven Dennis)는 경쟁사 블루밍데일스(Bloomingdale’s)나 노드스트롬(Nordstrom)과 달리 삭스는 다소 낮은 등급의 보다 접근성 높은 럭셔리 시장을 노리는 데 관심이 없었다고 지적하며, “상위 1%만을 목표로 하면 숫자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삭스의 부동산 자산 자체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삭스 패밀리의 매장들은 앵커(Anchor) 상권에 약 13 million square feet(약 1.2 million square meters)의 매장 공간을 보유하고 있다. 해당 매장들은 시장 대비 낮은 임금을 유지하게 하는 레거시 임대차(legacy leases)에 묶여 있고, 상점들 간의 상호 easement(출입·통로·재개발 관련 권한) 합의가 있어 쇼핑몰 재개발 시 입점자가 발언권을 갖는 구조다.

이러한 임대차와 권리(embedded control)는 파산 상황에서 채권자들에게 실질적 가치를 제공할 수 있으며, 채권자들이 회사를 인수해 통제권을 확보할 가능성을 높인다. 조사·연구업체 GlobalData의 매니징 디렉터 닐 손더스(Neil Saunders)는 “솔직히 리처드 베이커에게도 이들 사업에는 그다지 많은 미래가 없다”며 “그래서 가능한 한 자산을 현금화하고 최대한 짜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전문 용어 설명

Chapter 11(미국 파산법 제11장): 기업이 영업을 계속하면서 채무 재조정과 구조조정을 통해 회생을 모색할 수 있도록 하는 미국의 파산제도 조항이다. 이 제도를 통해 채무자는 채권자와 협상을 진행하며 사업을 유지할 수 있다.

동일 점포 매출(same-store sales): 비교 대상 기간 동안 같은 점포에서 발생한 매출의 증감률로, 점포 확장·폐점 영향을 배제해 기존 점포의 실적 변동을 보여주는 지표다.

상호 easement(Reciprocal easement agreements): 쇼핑센터 등 복합 상업공간에서 점포 간 통로·주차·출입구·재개발 권한을 서로 규정한 계약으로, 특정 임대차권자가 몰 전체의 재개발 방향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만든다. 이런 권리는 파산시 자산의 실질적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영향 분석 및 전망

이번 사임과 삭스 글로벌의 챕터 11 신청은 럭셔리 소매 업계와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복합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첫째, 단기적으로는 공급업체들의 미지급·재고 보류 문제로 삭스 계열사의 매장 운영에 추가적인 차질이 예상된다. 이는 소비자 신뢰를 저하시키고 해당 브랜드의 계절별 매출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둘째, 파산 절차는 채권자들이 부동산 자산을 통해 채권 회수를 시도하는 구조를 촉진한다. 삭스가 보유한 약 13 million sq ft의 핵심 상권 매장과 낮은 임대료의 레거시 계약, 상호 easement 권리는 채권자들이 회생 계획을 통해 자산을 재구성하거나 운영권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해당 상권의 소유 구조 변화가 발생하면 지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임대료·가치 형성에 파급효과가 생길 수 있다.

셋째, 중장기적으로는 럭셔리 소매업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에 대한 재검토가 불가피하다. 업계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상위 소비계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전략은 성장 한계가 있고, 옴니채널(온라인+오프라인) 전략과 가격·경험의 다양화가 필수적이라고 평가한다. 경쟁사들이 보다 접근성 높은 럭셔리 및 디지털 전환에 힘을 싣는 가운데, 삭스의 고급 전담 전략은 향후 시장 점유율 확보에 불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금융시장 관점에서 보면, 이번 사안은 소매·부동산 연계 자산을 보유한 기업들의 신용리스크 재평가를 촉발할 수 있다. 채권 투자자와 대출기관은 레버리지(부채비율)와 임대차 계약의 구조적 리스크를 재검토할 가능성이 크며, 이는 유사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기업들의 자금 조달 비용 상승으로 연결될 수 있다. 다만, 핵심 상권의 실제 물리적 자산 가치는 여전히 존재하므로 채권자들이 구조조정을 통해 가치를 회수할 가능성 또한 열려 있다.


종합

리처드 베이커의 퇴진은 한편으로는 그가 구축한 부동산·유통 포트폴리오의 한계와 실패를 드러내는 사건이다. 초기의 성공과 함께 쌓인 자산은 여전히 상당한 가치를 지니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 패턴과 온라인 경쟁, 거대한 부채 부담은 결국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크게 훼손했다. 파산 절차와 향후 채권자들의 대응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삭스 브랜드와 연계된 부동산 자산의 향방 및 럭셔리 리테일 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본격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