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에너지 엔지니어링 기업 사이펨(Saipem)이 터키 흑해 연안의 사카리야(Sakarya) 가스전 3단계(Phase 3) 개발 사업을 약 15억 달러 규모로 따냈다*. 이번 계약은 공학·조달·시공·설치(Engineering, Procurement, Construction and Installation, EPCI) 범위를 포괄하며, 사이펨이 최근 몇 년간 확대해 온 해저(서브시) 포트폴리오를 한층 강화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2025년 9월 10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계약에는 총 8개의 강관(리짓 플로우라인)과 길이 약 183킬로미터에 달하는 가스 수출 파이프라인 건설·설치가 포함된다. 해당 파이프라인은 해상 가스전을 터키 북부 해안과 연결해 생산 가스를 육상 처리시설로 송출하게 된다.
사이펨은 이미 사카리야 가스전의 초기 단계와 2단계 프로젝트에 참여한 바 있어, 이번 계약은 ‘연속 수주’ 성격을 띤다. 특히 2027년에 계획된 오프쇼어 캠페인에서 사이펨은 심해 파이프 설치선과 지지선을 투입해 대규모 시공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그동안 축적한 흑해 심해 시공 경험을 바탕으로 터키 에너지 안보 강화에 기여하겠다”
는 사이펨 프로젝트 총괄의 발언1이 전해졌다.
계약 범위 및 기술적 상세
· 8개의 리짓 플로우라인(rigid flowline) 시공
· 183km 길이의 가스 수출 파이프라인 설치
· 해저 매설·육상 창구(랜드폴)·해상 연결 작업(EPCI 전 과정) 수행
EPCI는 설계에서 조달, 시공, 설치까지 일괄 수행하는 방식으로, 원청사가 공사 전 과정을 책임지는 고난도 사업 모델이다. 완전 턴키 방식으로 진행되는 만큼 높은 공정 관리 능력과 심해 기술력이 필수다. 사이펨은 ‘크레인 선박 사피어나이저(Saipem 7000)’와 ‘캐스팅 배 마우즈호(Maud)’ 등 초대형 장비를 투입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사이펨의 수주 흐름과 의미
2023~2024년 사이펨은 글로벌 해상풍력·가스전 분야에서 역대급 수주를 기록했으나, 2025년 들어 신규 발주 속도가 둔화하며 시장 우려가 제기됐다. 이번 15억 달러 계약은 그런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3분기 핵심 물량’으로 평가된다. 금융 업계에서는 “회사가 연간 수주 목표치의 약 12%를 한 번에 채웠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동 프로젝트에는 노르웨이 해양서비스 기업 서브씨세븐(Subsea7)도 일부 패키지를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해 시공 ‘투톱’으로 꼽히는 양사가 동일 가스전의 다른 구간을 나눠 맡으면서, 경쟁·협력 구조가 형성될 전망이다.
터키 사카리야 가스전의 전략적 중요성
사카리야 가스전은 터키 국영 에너지 기업 TPAO가 2020년 흑해에서 발견한 최초의 대규모 천연가스 매장지다. 매장량은 약 540억㎥로 추정되며, 터키 정부는 2028년까지 단계별로 연간 150억㎥ 이상을 생산·수출해 에너지 순수입국 지위 탈피를 노리고 있다.
흑해 해역은 기후·해양 조건이 까다롭고, 수심이 2,000m에 달해 시공 난도가 높다. 이런 환경에서 성공적으로 1·2단계를 이끌어온 사이펨의 기술력은 이번 3단계 수주에 핵심 배경이 됐다.
전문가 해설: ‘리짓 플로우라인’과 ‘가스 수출 파이프라인’
리짓 플로우라인은 단단한 강철 파이프 형태로, 고온·고압의 가스를 안정적으로 이송하기 위해 사용된다. 반면 유연한 재질의 플렉시블 플로우라인보다 시공이 까다롭지만, 장기적 내구성에서 우수하다. 가스 수출 파이프라인은 해저 생산설비와 육상 가스 처리시설을 연결하는 메인 전송로로, 대륙붕을 따라 포설(敷設)되며 국가 간 에너지 네트워크 구축에 핵심이 된다.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 미칠 파장
국제 가스 시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공급망 변동성을 겪고 있다. 터키는 지리적 이점을 앞세워 ‘가스 허브’를 지향하며, 사카리야 가스전 개발에 국가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이펨의 참여로 프로젝트 일정이 한층 가속화되면, 유럽 남동부 가스시장 가격 안정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한편 사이펨은 해양 가스·석유뿐 아니라 CO2 저장설비, 그린 수소 프로젝트 등 에너지 전환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있다. 회사 측은 “사카리야 수주는 전통 자원 개발과 에너지 전환 전략을 병행한다는 우리의 장기 비전을 뒷받침한다”고 밝혔다.
용어 설명 및 참고
*1 달러=약 1,350원(2025년 9월 10일 환율 기준)
1사이펨 프로젝트 총괄 명단은 기사 공개 시점 기준 비공개.
‘오프쇼어 캠페인(Offshore campaign)’은 특정 해상 프로젝트의 시공·설치 기간을 통칭한다. 기상 조건이 양호한 계절에 집중 투입해 비용과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이 관례다.
전망 및 기자 코멘트
사이펨은 최근 자본 구조 개선을 위해 고부가 해저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으며, 이번 계약은 그러한 전략이 유효함을 방증한다. 다만 2027년 현장 시공까지 2년 이상의 준비기간이 남아 있기 때문에, 원자재 가격 변동‧지정학 리스크 관리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장기적으로는 터키의 가스 내수 공급 안정화와 유럽 시장 다변화에 이바지할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사이펨의 수주잔고가 확대된다는 사실 자체가 긍정적이지만, 발주 주기가 긴 EPCI 사업 특성상 현금흐름 인식 타이밍과 계약 이행 리스크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또한 동 사업이 본격 매출로 연결되는 2027~2028년 사이, 회사의 해상풍력·재생에너지 프로젝트 포트폴리오가 얼마나 성장하느냐가 주가 방향성을 결정할 주요 변수로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