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말 — ‘대규모 퇴사’에서 ‘빅 스테이’로, 분위기가 바뀌다
2021~2022년 미국 경제를 뜨겁게 달궜던 ‘대규모 퇴사(Great Resignation)’ 열풍이 빠르게 식고 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9월 8일 공개한 소비자기대 설문조사(SCE)에 따르면, 현 직장을 잃더라도 3개월 이내 새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확률은 평균 44.9%로 집계돼 2013년 통계 작성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동시에 “내년에는 실업률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응답은 39.1%로 상승했다. 시장에서는 이 현상을 ‘빅 스테이(Big-Stay)’라 부르며,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회사를 떠나지 못하고 자리를 지키는 구도가 고착되는 방향으로 해석한다.
1. 현황 진단 — 데이터로 읽는 노동시장 냉각
지표 | 최근 발표치 | 전월 | 팬데믹 이후 최고치 | 추세 |
---|---|---|---|---|
NY Fed ‘새 직장 찾기 확률’ | 44.9% | 50.7% | 63.5%(2022.04) | ↓ |
JOLTS 구인/구직자 비율 | 1.34 | 1.56 | 2.00(2022.03) | ↓ |
비농업 신규고용(8월) | +22k | +157k* | +714k(2021.07) | ↓ |
실업률(U-3) | 4.3% | 4.1% | 14.7%(2020.04) | ↑ |
광의실업률(U-6) | 8.1% | 7.7% | 22.9%(2020.04) | ↑ |
*6월 수치는 –13k로 하향 수정
위 표가 보여주듯 모든 핵심 고용지표가 동시다발적 둔화를 시사한다. 특히 JOLTS 통계상 구인/구직자 비율은 2022년 봄 2.0에서 1.34까지 급락했다. 여전히 팬데믹 이전 평균(1.2)보다는 높지만, 노동자 ‘절대 우위’ 구도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 구조적 냉각의 원인 — 5대 동인
2-1) 통화긴축 및 실질금리 급등
연방준비제도(Fed)는 2022년 3월 이후 500bp를 초과하는 초고속 긴축을 단행했다. 실질금리(10년 TIPS)는 2021년 –1.1%에서 2025년 3분기 +1.9%까지 상승, 기업의 자본조달 비용을 20년 만의 고점으로 끌어올렸다. 금리발(發) 수요 위축은 ‘채용 중단·감원 유예’라는 보수적 결정으로 이어진다.
2-2) 재정·보조금 효과의 소멸
팬데믹 구호금·확대 실업급여·학자금 대출 상환 유예 등 피스컬 쿠션이 2023년 말 전후로 일제히 종료되면서, 물가 조정 후 가처분소득이 마이너스 영역에 근접했다. 이는 근로자의 협상력을 떨어뜨리고 ‘현 직장 유지’ 유인이 강화되는 배경이 됐다.
2-3) AI·자동화 투자 가속
챗GPT 공개(2022.11) 이후 기업들은 비용절감·효율화를 위해 AI 도입을 서둘렀다.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알파벳 등 빅테크가 2024~2025년 동안 합산 1,800억 달러 이상을 AI 인프라에 투입했다. 그 결과 고용창출 elasticity가 역사적으로 0.33→0.18 수준으로 낮아졌다는 분석(웨드부시증권).
2-4) 인구·이민 변화
베이비붐 세대(1946-64년생)가 본격 은퇴 구간에 진입하면서 노동참가율은 계속 하락세지만, 팬데믹 기간 억눌렸던 이민이 2023년 이후 재개돼 중·저숙련 신규 공급이 늘어났다. 이는 임금상승률을 눌러 실질초과임금(real wage premium)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2-5) 기업 재고순환·순이익률 피크-아웃
S&P500 순이익률(Net Margin)은 2022년 3분기 12.5%를 정점으로 2025년 2분기 10.8%까지 하락했다. 높은 재고·금리 부담 속에서 비용통제가 1순위 전략이 되자 ‘채용보단 자동화, 확장보단 효율’ 기조가 자리잡았다.
3. 인플레이션·임금·소비에 미칠 중장기 충격
3-1) 임금상승률 둔화와 서비스물가
애틀랜타 연은 임금트래커에 따르면 전체 임금상승률은 2022년 +6.4% YoY → 2025년 +4.2%로 둔화됐고, ‘이직자(pivot job switchers)’ 프리미엄은 3.3%p→1.1%p로 축소됐다. 서비스 CPI 중 주거비(OER) 제외 Core Services의 전년동월비는 같은 기간 6.3%→4.1%로 내려왔다. 이는 연준이 목표로 삼는 슈퍼코어 CPI를 끌어내리는 가장 중요한 기여 요인이 될 전망이다.
3-2) 소비 양극화·중저가 수요 재편
임금 디스인플레가 가시화되면 저소득 4분위 가처분소득이 타격받고, 고정지출 비중이 큰 품목(주거·식료품·에너지) 외에는 지출 여력이 줄어든다. 월마트·코스트코·패스트패션처럼 가격 경쟁력이 우위인 유통·생활필수 소비재 섹터는 상대적 수혜, 반대로 프리미엄 브랜드·경기민감 레저 소비는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4. 연준 통화정책 로드맵 — ‘첫 인하’ 이후를 읽다
노동시장 냉각과 서비스물가 둔화는 연준이 10월 또는 12월 FOMC에서 연 0.25%p 첫 인하를 단행할 수 있는 실질적 명분을 제공한다. 그러나 명목임금 > 생산성 + 목표 인플레이션(2%)이라는 고질적 간극이 완전히 해소되려면 2026년까지 최소 3단계(연 75bp) 이상의 완화가 필요하다는 시나리오가 월가 컨센서스다.
r* (장기실질중립금리) ≈ 0.6%
g (잠재성장률) ≈ 1.8%
π* (목표 CPI) = 2%
→ 명목 중립금리 ≈ 4.4%
2025년 FFR 상단 = 4.75% → ‘정책제한 정도’ 0.35%p
따라서 2025~2026년 두 번의 25bp 인하 후에도 ‘실질 중립’ 상단을 약간 넘는 긴축적 환경이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달러지수(DXY)를 100선 부근에서 지지시키고, 미국 10년물 국채수익률을 3.75~4.10% 레인지에 묶을 공산이 높다.
5. 주식·채권·크레딧 시장에 미칠 장기 파급
5-1) 이익 마진 vs 멀티플 싸움
• S&P500 EPS Growth Scenario (베이스)
2025 +5.5% → 2026 +7.3% → 2027 +6.8%
• PER 밴드: 실질금리·유동성 압박으로 18.5배 ± 1.5배 구간이 중장기 균형점으로 예상
• 총 수익률(TR): 배당 1.6%p + 주가상승 5~6%p = 연 6.5~7.5% 정도
5-2) 섹터 셀렉션
- 수혜: 생활필수품, 오프프라이스 리테일, 헬스케어 서비스, 배당귀족 유틸리티, 대형 AI 플랫폼
- 중립: 반도체(수요 사이클과 AI CapEx 지속 여부에 민감), 은행(순이자마진 안정 vs 연체율)
- 역풍: 소형 가전·고급 레저, 중소형은행 소비자 대출, 임금 의존도가 높은 레스토랑 체인
5-3) 크레딧·HY 스프레드
하이일드 스프레드는 2025년 2분기 390bp → 3분기 440bp로 벌어졌다. ‘빅 스테이’가 장기화될수록 디폴트율이 2026년 2.8% → 4.1%로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는 무디스 전망을 감안할 때, BB 등급 크레딧 바이어스 및 싱글B 이하 익스포저 축소가 합리적이다.
6. 산업별 미시적 영향 — 사례 분석
6-1) 리테일 — 월마트 vs 나이키
탄력적 수요와 사상 최대 사설 브랜드 매출비중(28%)을 보유한 월마트는 비용절감형 소비 증가의 직접 수혜다. 반면, 고가 스포츠웨어 나이키는 2024~2025년 재고조정이 마무리됐지만 북미 ASP 재인상을 단행하기 어려워 마진 회복에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6-2) 클라우드 — ‘AI 옵틱스’와 인력 구조조정
마이크로소프트·구글·AWS는 2023~24년 진행한 구조조정으로 직원당 매출 Productivity를 평균 18% 끌어올렸다. ‘빅 스테이’로 고용시장 풀(pool)이 확대되면, 고임금 개발자 인력풀을 점진적 재배치하면서도 절대인원 확대는 억제할 것으로 보인다.
6-3) 부동산 REIT 전망
오피스 부문의 구조적 공실률(19%→21%)은 악화되지만, 데이터센터·물류 REIT 등 ‘뉴인프라’ 자산군은 AI 연산 수요와 전자상거래 성장세 덕에 Cap Rate Risk를 일정 부분 상쇄할 전망이다.
7. ‘빅 스테이’ 시대 투자전략 — 포트폴리오 제언
- 액티브 듀레이션: 10년물 4.25% 이상에서는 체계적 듀레이션 익스텐션, 3.60% 이하에선 차익실현
- 팩터 Tilt: 퀄리티·롱 듀레이션 Growth 50%, 배당 Value 30%, 저변동 20%
- 기술적 헷지: VIX < 14 구간에서 6개월물 15% Out-of-the-Money 풋스프레드 구축
- 대안투자: 프라임 멀티패밀리 임대, 미 AAA 지방채 ETF, 그리고 데이터센터 특화 REIT (듀레이션 5년 이내)
8. 리스크 요인·감시 리스트
- AI 도입 속도 vs 규제: AI 안전성 규제안이 의회 통과시 2026년 이후 일자리 대체 속도가 늦춰질 가능성
- 이민 정책 방향: 2026년 선거 결과에 따라 H-1B 쿼터 증감 → 임금·노동공급 변수
- 인플레 재점화: 원유 110달러 이상·주거비 재가속 시 연준 완화 속도 지연
- 연방 부채한도·재정 셧다운: 재정지출 교착 시 정부 부문 고용까지 위축 가능
9. 결론 — ‘빅 스테이’는 1년짜리 해프닝이 아니다
노동시장의 구조적 냉각 전환은 임금·물가·정책금리 간 새로운 균형점을 재정의하는 장기 싸이클로 진입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과열됐던 고용시장은 2026년까지 ‘느리지만 확실한 재균형’ 과정을 거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1) 인플레이션 완화 → 정책금리 하향 → 멀티플 안정이라는 거시적 우호 환경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2) 수요 피로·소비 양극화 → 기업실적 불확실성을 상존시킨다.
따라서 투자자는 ‘시장 전체 베타’보다 섹터·팩터 셀렉션을 통한 알파 창출이 필수적이며, 자산배분 레벨에서 인컴·퀄리티·AI 플랫폼·친환경 인프라를 축으로 한 바벨 전략이 유효하다고 판단된다. 빅 스테이 시대를 읽는 핵심은 단순히 고용 숫자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노동→임금→소비→정책으로 이어지는 경제 전이경로를 입체적으로 추적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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