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의 올림픽 단독결제권이 드러낸 유럽의 결제 난제

미국 카드사 비자(Visa)의 올림픽 단독 결제권은 유럽의 결제 생태계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를 여실히 드러냈다. 밀라노-코르티나 2026 동계올림픽 공식 상품점에서는 ‘카드 결제? 비자만 받는다’는 안내문이 곳곳에 붙어 있었고, 현장에서는 즉석에서 선불카드를 발급해 주는 서비스까지 제공됐다. 이는 현금 사용 감소와 함께 외국 결제사업자에 대한 의존이 심화하고 있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026년 2월 16일, 로이터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올림픽 공식 매장에서는 현금 사용이 가능하도록 ATM(현금자동입출금기)이 설치되었고 주최 측 대변인은 현장에서 현금을 받는다고 확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찰되는 결제 방식은 카드 중심이었다. 한 매장 직원은 방문객 가운데 약 6분의 1가량만 현금을 사용한다고 추정했고, 대기열에 서 있던 이탈리아의 젊은 잡지 기고자 마르타 물레는 “아버지가 현금을 찾으러 갔다. 표지판을 보고 비자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문제의 핵심은 유럽 내 카드결제의 높은 점유율과 외국계 브랜드 의존이다.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이사 피에로 치폴로네(Piero Cipollone)는 연설문에서 국제카드사인 비자와 마스터카드가 유로존 카드거래의 약 3분의 2(≈66%)를 차지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매 결제에서의 현재 의존성을 해결하고 흐름을 되돌려야 한다”고 밝혔다.


디지털 유로 프로젝트와 입법 상황

유럽연합(EU) 지도부는 디지털 유로(digital euro)를 유럽의 경제안보 핵심 사업으로 선언했다. 2025~2026년 사이에 제기된 논의 끝에 EU 이사회(Council)는 12월에 디지털 유로 프로젝트를 지지하며, 해당 화폐가 “유로 지역의 일반대중과 기업이 언제 어디서나 결제하는 데 사용 가능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문구는 중앙은행 발행 통화의 역할을 방어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낸다.

ECB는 디지털 유로를 실제 발행하기 위해서는 EU 차원의 법률이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그 입법안은 중앙은행 기반의 전자지갑(central‑bank‑backed wallet)이 상업은행 예금을 잠식하거나 민간결제시스템을 대체할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유럽의회에서 2년 넘게 정체되었다. 그럼에도 2025년 12월 이후로는 먼저 EU 이사회가, 그 다음 유럽의회가 ECB의 입장을 전면 지지하면서 입법 환경이 급변했다.

ECB의 기술적·기능적 요구

ECB는 디지털 유로가 오프라인 환경에서도 현금과 유사하게 작동하고 온라인 결제도 지원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또한 도매(wholesale) 및 소매(retail) 결제 모두에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ECB는 2029년을 발행 목표 시점으로 설정해 왔고, 만약 이 일정이 지켜진다면 2030년 프랑스 동계올림픽 당시에는 디지털 유로를 결제 수단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고 보도는 전했다.


전문용어 설명

본 기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디지털 유로(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전자화폐를 뜻한다. 기존의 전자지불수단은 상업은행이나 민간결제사업자가 발행·운영하는 반면, CBDC는 중앙은행이 직접 공급하는 법정통화의 디지털 형태이다. 또 한편으로 국제카드사(카드 네트워크)는 비자·마스터카드처럼 결제 인프라와 승인·정산체계를 제공해 카드결제를 가능케 하는 중개자다.

올림픽 사례가 시사하는 정책적 함의

이번 올림픽의 단독결제권 사례는 몇 가지 정책적·경제적 함의를 제기한다. 첫째, 결제 인프라의 외국 의존성은 유럽의 결제주권(payment sovereignty)에 대한 논쟁을 촉발한다. 카드결제의 상당 부분을 비자·마스터카드가 차지하는 구조는 결제수수료, 데이터 주권, 위기 시 결제회복탄력성(resilience) 측면에서 취약점을 만들 수 있다. 둘째, 현금 사용 축소는 접근성(accessibility) 문제를 낳는다. 고령층이나 비은행계좌 보유자 등은 카드·디지털 결제만으로는 불편을 겪을 수 있다.

셋째, 디지털 유로의 도입은 단기적으로는 상업은행의 예금·유동성 구조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유럽의회에서 제기되었던 우려처럼, 중앙은행이 제공하는 안전자산(central bank money)이 민간 은행 예금의 일부를 흡수하면 은행의 대출 공급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네번째로, 민간 결제사업자와의 경쟁구도가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 디지털 유로가 광범위하게 보급되면 민간 결제망의 거래량이 감소하고, 이에 따라 민간사업자의 수익모델(예: 교환·환전 수수료 등)에 구조적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


경제·시장 영향 전망

정책 및 시장 영향의 방향성은 비교적 명확하다. 유럽 내에서 디지털 유로가 보편화되면 결제비용의 하향 압력이 발생하고, 국경간 결제 효율성 개선과 함께 일부 거래비용이 줄어들 수 있다. 반면 비자·마스터카드 등 기존 카드사업자의 거래량과 수수료 기반이 축소될 가능성이 커지므로 이들 기업의 유럽 시장 전략과 수익성에 조정이 불가피하다. 또한 은행권의 자금조달 비용과 신용공급 측면에서 정책적 보강책(예: 규제 완화나 유동성 지원 장치)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

실무적·정책적 권고

정책입안자와 업계는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디지털 유로 도입시 현금 수용성 보장 규정과 소상공인·취약계층을 위한 전환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민간 결제사업자와의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 기준을 분명히 해 결제 생태계의 경쟁과 혁신을 촉진해야 한다. 셋째, 은행시스템으로의 예금 이탈 가능성에 대비한 유동성 백업과 규제 설계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기술적 보안과 개인정보 보호 규정을 강화해 디지털 통화의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


“소매 결제에서의 현재 의존성을 해결하고 흐름을 되돌려야 한다”

이번 밀라노-코르티나 올림픽 현장에서 관찰된 결제 행태는 단지 스포츠 이벤트의 상업적 편의성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유럽의 결제주권, 통화정책의 전달매개체, 그리고 디지털 금융 인프라의 설계 방향에 대한 근본적 논의를 재촉하는 사례다. 향후 수년간 디지털 유로의 입법·기술·운영적 결정은 유럽 결제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