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상속세 정책이 다시 논쟁의 중심에 섰다. 현금 대상을 내건 장수 퀴즈 프로그램의 제목이기도 한 “더 인헤리턴스(The Inheritance)”는 많은 이탈리아인이 유산 상속을 부의 이상적 경로로 인식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상징한다. 분석가들은 이러한 인식이 상속에 대한 낮은 과세로 이어졌다고 본다.
2025년 11월 18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탈리아가 상속세 부담을 유럽 주요국 수준으로 점진적으로 끌어올릴 경우, 유럽연합(EU) 3위 경제권이지만 만성적 저성장에 시달려온 이탈리아의 경제·사회 문제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진단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현행 체계가 부의 대물림을 용이하게 하며, 사회 이동성을 제약하고, 재정 측면에서도 잠재적 세수를 놓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학자 살바토레 모렐리와 데메트리오 구차르디는 뉴욕 소재 스톤 센터(Stone Center on Socio-Economic Inequality)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 연구에서, 2024년 이탈리아에서 상속된 부의 규모가 약 2,430억 유로(미화 2,820억 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14%에 해당한다고 추정했다. 피사의 산탄나 대학교 경제사학자 지아코모 가뿌티는 이 비율이 지난 30년간 두 배로 상승했으며, 19세기 말 이후 최고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낮은 상속세와 사회 이동성 제약
이탈리아의 상속세는 평균 실효세율이 0.5% 미만으로, 세계 평균의 약 3분의 1 수준에 머문다. 특히 대규모 자산을 상속받는 상속인에게 과세가 유독 가볍게 적용되는 구조다.
“이탈리아의 낮은 상속세는 사회 이동성을 위축시키고 특권을 세대 간에 보존한다.” — 살바토레 모렐리(로마 트레 대학교 경제학 교수, CUNY 대학원센터 Wealth Project 책임자)
스위스 금융그룹 UBS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탈리아 억만장자 62명 중 자수성가형은 42%에 불과해 유럽 최저 수준에 속했다. 또한 이탈리아 최고 부호인 조반니 페레로는 2015년 부친 미켈레 페레로에게서 누텔라 제조사 페레로의 지분을 상속받으며 현재 포브스 기준 약 410억 달러의 순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 현상의 뿌리는 깊다. 이탈리아은행 연구는 르네상스 시대인 1427년 피렌체 상위 3분위 부를 소유한 가문이 전쟁·전염병·혁명·자본주의의 부침에도 불구하고 2011년에도 상위 3분위에 남아 있을 확률이 50% 더 높았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2016년 발표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으나, 상속세 정책 변화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세수 현황과 국제 비교
이탈리아의 상속세수는 연간 약 10억 유로에 불과하다. 반면 독일과 영국은 각각 약 90억 유로, 프랑스는 210억 유로에 달한다. 이들 국가의 평균 상속세율은 독일 2%, 영국 2.9%, 프랑스 7.5%이며, 미국은 1.3%로 집계된다.
100만 유로 초과 자산에서 나오는 상속세수는 이탈리아 전체 상속세의 30%에 그친다. 모렐리는 EU 평균 수준으로 제도를 정렬할 경우, 이탈리아가 연간 거의 60억 유로의 추가 세수를 거둘 수 있다고 추정한다.
멜로니 정부의 반대와 정책적 쟁점
티토 보에리 보코니 대학교 경제학 교수는 상속세로 확보 가능한 추가 재원을 국가 교육과 보육 서비스 강화에 투입하면 성장잠재력을 높이고 불평등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다른 경제학자들은 저소득층의 노동세를 낮춰 가처분소득과 내수를 확대하는 방안에도 무게를 둔다.
그러나 이 사안은 정치적으로 고도의 민감성을 지닌다.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우파 정부는 부유층에 대한 과세 강화를 촉구하는 야당과 노동계의 요구를 거듭 일축해 왔다. 실제로 멜로니는 이달 X(구 트위터)에 다음과 같이 게시했다.
“좌파는 계속 부유세를 제안한다. 우파가 집권하는 한 그런 세금은 결코 시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안심해도 된다.” —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이탈리아에서는 EU 평균에 비해 공공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는 인식과 국가에 대한 낮은 신뢰가 설문조사에서 자주 확인되어, 세금 인상에 대한 반감이 특히 강하다. 고(故)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2001년 집권 당시 상속세를 전면 폐지했으나, 5년 뒤 후임 정부가 낮은 세율로 재도입했다.
2022년 취임한 멜로니 정부는 생전 현금·자산 증여를 통해 상속세 회피가 보다 쉬워지도록 관련 규정을 변경했다. 이는 상속세 부담 자체를 낮출 뿐 아니라, 과세 시점을 사전 증여로 앞당겨 과세 표준을 분산시키는 효과도 낳는다.
현행 과세 구조: 누구에게 유리한가
이탈리아는 배우자와 자녀에게 최대 100만 유로까지 상속세 공제를 인정하고, 그 초과분에 대해서는 4%를 과세한다. 기타 수혜자에게는 최대 8% 세율이 적용되며, 공제 한도는 더 낮거나 아예 없다. 반면 프랑스·독일은 공제 요건이 상대적으로 덜 관대하고, 세율 구간이 5%~60%로 폭넓다.
상속·부유세에 반대하는 이탈리아 내 시각은 “이미 상대적으로 높은 조세국가인데 추가 인상은 성장에 악영향을 미치고 고자산가의 역외 이전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를 앞세운다. 그러나 가뿌티는 프랑스와 독일 사례가 상속세 강화의 경제적 위험이 제한적임을 시사한다고 본다.
“유로존 상위 2개 경제(프랑스·독일)는 상속에 훨씬 높은 세율을 적용하지만, 부자들이 대거 국외로 떠나거나 성장이 유의미하게 타격받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 지아코모 가뿌티(산탄나 대학교)
고소득층이 머무는 유인과 조세 형평성
부유층의 역외 이전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에는 고자산가가 머무를 유인이 적지 않다. 최근 연구는 상위 7% 부유층이 저·중소득층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조세부담률을 지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일부 부동산·금융자산에 대한 낮은 과세, 자영업자 대상 플랫(단일)세율 우대, 그리고 중위 소득층 임금 근로자에 대한 더 높은 부담 등 구조적 요인에서 비롯된다.
용어 해설: 쟁점 이해를 위한 핵심 개념
상속세: 사망한 사람이 남긴 재산을 법정상속인이나 지정 수혜자가 승계할 때 부과되는 세금이다. 과세표준과 공제, 세율구간 설계에 따라 재분배 효과와 경제행태(소비·저축·투자)가 달라질 수 있다.
사전 증여(생전 증여): 상속 개시 전, 재산을 미리 무상이전함으로써 상속세를 회피·경감하려는 전략이다. 제도 설계에 따라 증여세·상속세 간 조정 규칙이 상이하며, 과세 형평성 논쟁의 핵심에 놓인다.
사회 이동성: 개인·가구가 경제적 계층을 상향 또는 하향으로 이동할 수 있는 정도를 뜻한다. 상속과 자산 축적의 집중이 심화될수록 이동성이 제약될 가능성이 크다.
플랫(단일)세율: 소득·규모와 무관하게 같은 세율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단순성과 예측가능성 장점이 있으나, 누진과세 대비 분배상 형평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정책적 함의: 재정 여력, 형평성, 성장 사이의 균형
분석적으로, 기사에 제시된 수치들은 이탈리아가 국제 비교상 매우 낮은 상속 과세로 인해 상당한 잠재 세수를 포기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동시에 부의 대물림이 강화되며 사회 이동성이 저해된다는 점은 교육·보육 등 생산적 공공투자와 저소득층 노동세 완화를 통해 성장과 형평을 함께 추구할 정책 여지가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정치적 수용성과 행정적 집행능력이 성패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탈리아의 선택지는 상속세의 공제·세율·과세대상 범위를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프랑스·독일 사례는 고액 상속에 대한 누진적 접근이 대규모 자본 유출 없이도 가능하다는 경험적 근거를 제공한다. 반대로, 낮은 공공 신뢰와 서비스 품질 문제가 지속된다면, 조세저항은 상속세 개편의 가장 큰 구조적 제약으로 남을 것이다.
기자: 주세페 폰테, 개빈 존스 | 지역: 로마(ROME), 매체: 로이터(Reuters)
환율 참고: 1달러 = 0.8619유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