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로픽(Anthropic)이 미 국방부의 블랙리스트 지정에 대해 제기한 소송은 군사 정보시스템을 외부 침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법률의 범위를 재시험하는 사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소송을 둘러싼 쟁점은 연방 정부의 국가안보 판단과 기업의 표현의 자유 및 절차적 권리 사이의 충돌이다.
2026년 3월 11일, 로이터의 보도에 따르면, 앤트로픽은 월요일 제출한 소장에서 미 국방부가 자사에 대해 공급망 위험(supply chain risk)으로 지정해 군사 계약에서 배제한 결정이 표현의 자유(First Amendment)와 적법절차권(Fifth Amendment)을 침해했으며, 이는 AI의 전장에서의 안전성에 관한 자사의 입장을 처벌하려는 의도였다고 주장했다.
소장에서 앤트로픽은 해당 지정으로 인해 2026년 매출이 수십억 달러 단위로 감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이로 인한 평판 손상도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미국에 법인과 본사를 두고 있으며, 트럼프 행정부가 행정명령에서 규정한 ‘적대국(adversary)’ 범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핵심 배경과 쟁점
국방부는 앤트로픽을 공급망 위험으로 지정하면서 섹션 3252(Section 3252)라는 거의 사용되지 않은 법조항을 인용했다. 이 규정은 군사 정보 시스템에 적대 세력이 침투하거나 파괴·교란의 위험이 있을 경우 특정 기업을 계약에서 배제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로이터의 법률 데이터베이스 검토에 따르면, 이 규정이 미 기업을 대상으로 법정에서 시험된 적은 없으며 공개적으로 적용된 사례도 확인되지 않는다.
“법안이 외국과의 연루가 없는 미국 기업에 적용될 수 있는지조차 명확하지 않다.” — 앨런 로젠슈타인(University of Minnesota Law School)
국방부는 소송에 대해 논평하지 않았다. 다만 소장에서 언급된 사실 관계에 따르면, 피터 헤그세스(Pete Hegseth) 국방장관은 3월 3일 앤트로픽을 국가 안보 관련 공급망 위험으로 지정했다. 이 지정은 회사가 자사의 AI 모델인 클로드(Claude)에 대해 자율무기나 국내 감시에 대한 사용을 금지하는 제한을 철회하라는 요구를 거부한 데 따른 조치로 설명됐다.
클로드(Claude)의 군사 사용과 모순되는 정부 입장
소송은 또한 헤그세스 장관이 2월 24일 앤트로픽과의 회의에서 클로드를 “exquisite” 기술이라고 칭찬하며 국방부가 함께 일하고 싶어한다고 언급했던 사실을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칠 뒤 같은 장관이 해당 기술을 위험하다고 규정해 회사에 제재를 가한 점은 모순으로 지목된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미군은 최근 이란에 대한 공습에서 클로드를 사용한 바 있다.
헤그세스는 2월 27일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서 앤트로픽을 “위선적인 효과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의 수사로 자신을 포장해 미군을 강요하려 하는” 집단이라고 비판했으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소셜 미디어에서 앤트로픽을 “RADICAL LEFT WOKE COMPANY”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공개적 발언들은 앤트로픽의 헌법상 표현의 자유 침해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법정에서 활용될 수 있다.
법률 전문가들의 평가
다섯 명의 국가안보 법률 전문가들은 로이터에 국방부의 조치가 과잉이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미네소타대 법대의 앨런 로젠슈타인은 “미국 기업과 외국 세력의 연루가 없는 상황에서 이 규정이 적용될 수 있는지 전혀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브레넌 센터의 아모스 토(Amos Toh)는 클로드의 사용 정책이 외국의 사보타주 또는 전복 위험을 직접적으로 초래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반면 정부는 전통적으로 국가안보 관련 사안에 대해 행정부의 판단에 상당한 재량을 인정받아 왔기 때문에, 법원은 이에 대해 소극적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크다. 법무부는 대통령과 그가 지휘하는 군대가 국가 방위를 위해 공급자를 선택할 권한이 넓다는 점을 근거로 방어할 수 있다. 또한 계약 결정이 정책적 또는 작전상의 정당한 이유로 뒷받침될 경우 이는 표현의 자유 침해로 보기 어렵다는 판례를 인용할 수 있다.
절차적 위반 및 행정법상 쟁점
앤트로픽은 헤그세스의 결정이 행정절차법(Administrative Procedure Act)을 위반했다고 주장한다. 소장에 따르면 국방부는 이 결정을 내리면서 충분한 사실 확인이나 의미 있는 절차적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고, 회사가 반박할 기회조차 없었다고 한다. 이는 “임의적·변덕적(arbitrary and capricious)” 행위로서 법원에서 뒤집힐 수 있는 소지라는 것이다.
“정부는 앤트로픽에게 ‘사형’을 선고하려고 한다. 대안이 없었고 다른 옵션을 신중히 검토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 에릭 크루시우스(Eric Crusius), 정부 계약 전문 변호사
전문가들은 또한 정부의 입장 내 상충되는 주장들이 판결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로젠슈타인은 정부가 동시에 국방생산법(Defense Production Act)을 통해 앤트로픽의 서비스를 강제로 매각하도록 압박할 수 있다고 위협하고, 실제 군사 작전에 해당 서비스를 사용하면서도 계약에서는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등 모순적 태도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사실일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민간 부문과 방위 산업에 미칠 파장
이번 분쟁은 단순히 한 회사와 정부의 법적 다툼을 넘어, AI 공급자에 대한 정부의 신뢰와 방위산업 계약구조에 관한 선례를 남길 가능성이 크다. 앤트로픽의 2026년 매출이 수십억 달러 단위로 감소할 수 있다는 회사 측의 주장처럼, 공급망 위험 지정은 해당 기업의 매출과 협력관계, 벤처투자·기업가치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투자자 관점에서는 기술업체가 군사 목적에 대한 자율적 사용 제한을 두는 정책을 채택할 경우, 정부 계약에서 배제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 여부가 재평가될 수 있다. 방위산업체와 국방부의 입장 변화는 민간 AI 기업의 사업전략, 윤리 정책, 파트너십 구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군수품 조달과 관련된 법적 불확실성이 지속될 경우 공급망 다변화와 계약 리스크 관리에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향후 전망
법적 쟁점은 크게 세 축으로 수렴된다. 첫째, 섹션 3252의 적용 범위와 그 법적 해석이다. 둘째, 표현의 자유와 적법절차권이 국가안보 판단과 충돌할 때 법원이 어느 정도까지 관여할 것인지이다. 셋째, 행정절차법상 정부 결정의 적법성이다. 전문가들은 법원이 국가안보 관련 행정부 결정을 신중히 다루는 경향이 있지만, 이번 사건에서 정부 측의 설명 부족과 공개된 정치적 발언들은 앤트로픽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여지가 있다고 평가한다.
결론적으로 이 사건은 단기간 내에 끝나기보다는 수년간 이어질 복잡한 법적·정책적 분쟁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판결은 향후 AI 기업과 정부 간 관계, 방위산업 조달 관행, 그리고 다국적 데이터·클라우드 공급망의 법적 기준 설정에 중요한 선례를 제공할 것이다. 법원이 어느 쪽으로 결론을 내리느냐에 따라 민간 AI 기업의 운영 자유와 정부의 조달 권한 사이의 균형이 재정립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