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달러 환헤지 동향이 당초 시장의 예상과 달리 속도를 늦추고 있다. 4월 초 미국의 대규모 관세 발표 이후 급락했던 미국 달러에 대해 해외 투자자들이 미국 자산 보유분을 보호하려는 환헤지 수요가 한때 급증했으나, 최근 들어 흐름이 뚜렷이 둔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최근 몇 년 사이 최악의 하락장을 겪었던 달러가 다시 회복세를 보이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평가다.
2025년 11월 21일,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애널리스트들은 투자자의 환헤지 비중이 역사적 평균보다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고 진단하지만, 4월 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광범위한 무역 관세를 발표했던 이른바 ‘해방의 날(Liberation Day)’ 직후에 비하면 확연히 속도가 둔화했다고 분석한다. 관세 충격 직후에는 주식과 채권 가격이 급락하고 달러가 동반 하락하면서, 민첩한 투자자들이 달러 추가 약세에 대비해 신속히 환헤지를 늘렸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이 흐름이 눈덩이처럼 번지지는 않았고, 그 결과 미국 달러는 점차 안정을 되찾고 있다.
당시 해외 투자자들은 급락한 미국 주식·채권과 동반 약세를 보인 달러로 복합적인 타격을 받았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충격 이후 환헤지 확대 흐름이 더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으나, 실제로는 속도 조절이 이뤄졌다. 이로 인해 달러는 과매도 구간에서 이탈하며 안정을 모색하는 국면으로 전환했다.
노무라의 데이비드 리(글로벌 외환·신흥시장 책임자)는 “현재 고객들과의 대화를 종합하면, 5월에 예상했던 만큼의 (헤지) 흐름이 임박해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달러지수는 6월 말 대비 약 4% 반등했다. 6월 말 당시 달러는 1970년대 초 이후 최악의 반기 낙폭을 기록하며 상반기 누적 약 11% 하락을 만회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후 반등세가 이어지며 달러는 급락분의 일부를 회복했다.
환헤지 데이터의 제약도 변동성 해석을 어렵게 한다. 공개 통계가 제한적인 탓에 애널리스트들은 은행·수탁기관이 집계한 일부 수치와 단편적 공공자료를 바탕으로 흐름을 추정한다. 이는 헤지 동향 해석에 오차 범위를 동반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세계 최대 수탁기관 중 하나인 BNY의 고객 포지션 분석에 따르면, 2025년 초 고객들은 미국 자산에 대해 매우 ‘롱(장기·상방) 포지션’을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추가적인 달러 약세 가능성을 크지 않게 보았고, 공격적 환헤지 없이도 운용에 만족했음을 시사한다. 다만 4월 이후 흐름은 바뀌어 헤지 비중이 평균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상승했지만,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던 2023년 말보다는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BNY의 제프 유(수석 시장 전략가)는 “올해의 ‘달러 다변화’ 서사는 이야기되는 것만큼 행동으로 옮겨지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지역별 상이한 행태도 확인된다. 호주 내 연기금을 대상으로 한 11월 내셔널오스트레일리아은행(NAB) 설문에서는 미국 주식에 대한 환헤지 행태에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다고 보고됐다. 반면 덴마크 중앙은행 자료는 4월 이후 상승했던 덴마크 연기금의 환헤지 비중이 최근 안정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콜럼비아 쓰레드니들의 윌리엄 데이비스(CIO)는, 자사는 당초 달러 추가 약세에 대비해 미국 주식 보유분을 헤지했으나 이후 일부 헤지를 축소했다고 밝혔다. 이는 현 시점에서 달러의 추가 하락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판단을 반영한다.
눈덩이 효과는 없었다
환헤지는 그 자체로 환율에 영향을 준다. 기존 비헤지 포지션에 달러 하방 위험을 덧씌우면 달러 매도가 발생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달러 매수가 발생한다. 여기에 금리 변화가 겹치면 영향은 커질 수 있다. 가령 달러 급락은 추가 헤지를 자극해 추가 하락을 촉발하는 ‘눈덩이 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
HSBC의 폴 매켈(글로벌 FX 리서치 총괄)은 “올해 초만 해도 이 같은 눈덩이 효과가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결국 현실화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변수이긴 하나, 기준 시나리오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투자자 행동은 일부 변화 조짐을 보인다. 블랙록에 따르면 올해 유럽·중동·아프리카(EMEA) 상장 미국 주식 ETP로의 유입 가운데 38%가 환헤지형 상품으로 유입됐다. 2024년에는 98%가 비헤지 상품으로 유입됐던 것과 대비된다.
비용, 상관관계, 그리고 복잡성
환헤지 비용은 시장별로 다르고 금리차에 따라 달라진다. 이는 투자자들이 헤지를 주저하는 이유 중 하나다. 러셀인베스트먼트의 반 루(채권·FX 솔루션 전략 글로벌 총괄)는 일본 투자자가 달러 약세에 대비해 헤지할 경우 연 환산 약 3.7%의 비용을 부담한다고 추정했다. 달러/엔 환율이 1년간 보합이면, 헤지 투자자는 비헤지 동종 그룹 대비 3.7%의 성과 열위를 감수한다는 의미다. 유로 자금 투자자의 등가 비용은 약 2% 수준으로 제시됐다. 루는 “유로 투자자의 경험칙으로, 비용이 약 1%면 대수롭지 않지만 2%가 되면 의사결정에 큰 변수가 된다”고 말했다.
자산 간 상관관계도 주요 변수다. 통상 주식이 하락할 때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경향이 있어, 해외 투자자는 미국 자산에서 일종의 자연 헤지 효과를 얻는다. 그러나 4월에는 이러한 전통적 패턴이 작동하지 않아 헤지 수요 급증의 한 요인이 됐다. 반면 이번 달에는 주식이 다시 하락했지만 달러는 보합권을 유지했다.
더욱이 많은 기관투자자에게 변화를 실행하는 일은 복잡한 거버넌스와 벤치마크 이슈를 수반한다. 피델리티 인터내셔널은 유럽 거주 투자자에게 달러 익스포저의 50% 수준까지 점진적 헤지를 권고하지만, 살만 아메드(거시·전략적 자산배분 책임자)는 이를 “매우 복잡한 과정”이라고 지적했다. 경우에 따라 거버넌스 체계와 기준지수의 변경이 필요할 수 있다.
한편, 향후 금리 방향이 달러에 불리하게 전개돼 달러가 다시 약세로 전환하고, 동시에 헤지 비용이 낮아질 경우에는 변화 압력이 커질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현재의 헤지 둔화 흐름이 다시 반전될 여지도 생긴다.
노무라의 리는 “달러 자산에 대한 환헤지 여지는 아직도 충분하다. 그것이 실제로 나타날지, 또 얼마나 빠르게 진행될지는 열린 질문”이라며, “그 점을 이해하려는 것이 현재 FX 시장이 씨름하는 과제”라고 말했다.
용어 해설 및 투자 체크포인트
환헤지(FX 헤지)는 미래 환율 변동으로 인한 손실을 줄이기 위해 선물·스왑 등 파생상품을 활용해 환리스크를 상쇄하는 전략을 말한다. 달러지수는 달러를 주요 통화 바스켓과 비교한 지수로, 달러의 대외가치를 가늠하는 대표 지표다. ETP(상장지수상품)는 ETF·ETN 등을 포괄하는 상장형 패시브 상품군이며, 환헤지형 ETP는 통화 변동을 제거하도록 설계됐다. 롱 포지션은 자산 가격 상승에 베팅하는 보유 상태를 의미하고, 상관관계는 자산 간 움직임의 동조화 정도를 뜻한다. 벤치마크는 펀드 성과 비교의 기준지수로, 벤치마크가 비헤지라면 적극적 헤지는 초과수익 관리와 규정 측면에서 복잡성을 높인다.
전문적 시사점: 현재의 데이터와 발언들을 종합하면, ‘헤지의 구조적 확장’이 즉각적인 연쇄 반응으로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달러의 단기 안정은 헤지 둔화와 맞물려 있으며, 금리차 기반의 헤지 비용이 특히 유로·엔 자금에서 의사결정의 관건으로 작용한다. 또한 전통적 상관관계의 일시적 붕괴가 4월 헤지 수요를 촉발했음을 감안하면, 향후에도 상관관계의 일탈은 헤지 비중 조정의 직접적 촉매가 될 수 있다. 다만 거버넌스·벤치마크 제약은 변화의 속도를 늦추는 고질적 요인으로, 헤지 확대의 타이밍은 여전히 금리 방향성과 비용, 그리고 자산 간 상관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