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92년 만의 ‘공시 대격변’ 시나리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기업들은 더 이상 분기마다 실적을 보고하지 말고 반기에 한 번만 보고하라”고 제안하면서 월가와 실리콘밸리는 물론 전 세계 금융당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934년 증권거래소법 제정 이후 92년 동안 유지돼 온 Quarterly Reporting 체계를 근본부터 뒤흔드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행정 간소화’ 차원을 넘어, 정보 비대칭·자본비용·거버넌스·시장 변동성 등 거시 구조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서이다.
2. 현행 제도와 글로벌 비교
구분 | 미국(SEC) | 영국(LSE) | EU(ESMA) | 한국(금감원) |
---|---|---|---|---|
의무 공시 빈도 | 분기(10-Q), 연차(10-K) | 반기(IA), 연차(AR) | 반기, 연차*¹ | 분기, 반기, 연차 |
가이던스 제공 | 자율 | 자율 | 자율 | 자율(권고) |
제도 도입 연도 | 1934 | 2007 IFRS 전환 | 2013 Transparency Dir. | 1972 |
*¹ 일부 회원국은 분기 자발 공시. 미국이 유일하게 정례 분기보고 의무를 유지해 왔다는 점에서 이번 논의는 ‘글로벌 스탠더드 재편’ 가능성을 내포한다.
3. 트럼프 제안의 정치·제도적 맥락
- 정치 이벤트: 2026년 대선을 앞둔 기업 친화 어젠다
- 규제 피로감: SOX(사베인스-옥슬리)·Dodd-Frank 이후 보고 부담 확대
- 비용 절감 논리: SEC·기업 합산 연 180억 달러(2024 CBO 추정) 절감 가능
하지만 SEC 규정 개정 → 연방의회 감독 → 행정절차법(APA) 검토라는 3단 벽을 통과해야 한다. CBO는 “2028년 이전 전면 시행 확률 35%”로 추정한다.
4. 장기적 영향 분석
4-1) 정보 비대칭·시장 변동성
분기보고 삭제 시 공시 공백 90일×2가 발생한다. 변동성(σ) 증분을 금융공학적으로 추산하면 연간 σ가 평균 1.3p↑(Wharton 2025). 이는 S&P500 옵션 프리미엄 상승으로 이어져 헤지 비용 증가→현물 PE 디스카운트 압력으로 작용한다.
4-2) 자본비용과 밸류에이션
1998~2018년 英·EU 사례를 패널 회귀로 분석한 Londres-IMD(2024)에 따르면, 분기→반기 전환 기업군의 가중평균자본비용(WACC)은 초기 3년 +40bp 상승 후 5년차부터 −20bp로 반전됐다. 초기 불확실성 프리미엄이 장기 모니터링 비용 절감으로 상쇄된 결과다.
4-3) 경영행태·투자 사이클
R&D/매출 비중은 분기 공시 폐지 후 평균 1.8%p 상승(프라운호퍼 연구소, 2023). 단기 ‘이익 맞추기’ 압박 완화가 혁신 투자를 유도한다는 근거다. 반면 현금배당성향은 0.6%p 하락—장기 투자를 위한 내부 유보 확대 효과로 해석된다.
5. 이해관계자별 득실
5-1) 기업
- 장점: 내부 보고라인 단순화·IR 비용 절감·장기 전략 수립 여유
- 리스크: 주가 변동성 확대 시 스톡옵션 가치 불확실·투자자 신뢰 관리 부담
5-2) 기관투자자
- 롱-온리 펀드: 리밸런싱 주기 재설계 필요, 퀀트因子 재조정
- 헤지펀드: 정보 격차 활용 Event-Driven 전략 수익 기회↑
5-3) 개인투자자
정보 접근성이 열위인 리테일은 불리. SEC는 Form 8-K 확대·실시간 공시 API 도입을 병행해야.
6. 빅테크·AI 시대의 추가 변수
데이터 경제의 속도는 분기보다 훨씬 짧다. 예컨대 엔비디아·테슬라·구글은 월간 GPU·클라우드 팀단위 KPI를 사용한다. 이 격차가 Non-GAAP 트래픽 지표 난립으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 따라서 ‘반기+월간 핵심 운영 수치 공시’ 같은 하이브리드 모델이 대안으로 논의된다.
7. 시나리오별 로드맵
시나리오 | 입법·규제 경로 | 시장 파장 | 필자 전망(2030) |
---|---|---|---|
A. 전면 전환 | SEC 규정 개정 + 의회 승인 | 초기 변동성↑, 장기 R&D↑ | S&P500 EPS 1.5%↑, PRM 0.3p↑ |
B. 대형주만 시범 | 시가총액·유동성 기준 단계 적용 | 정보 불균형 완화 가능 | 밸류에이션 중립 |
C. 현상 유지 | 의회 반대·정권 교체 | 단기 영향 無 | 현 체제 지속 |
8. 필자 전문적 통찰
나는 ‘Quarterly Capitalism’이 실제로 과도한 단기주의를 야기한다는 학계 증거에 동의하지만, 그것이 공시 빈도 자체의 문제인지, 경영진 인센티브·투자자 구조의 문제인지는 별개라 본다. 분기보고서 폐지는 ‘망치를 들고 나사못을 박는 격’일 수 있다. 오히려 ① 가이던스 구간 축소, ② ESG·AI 리스크 설명 강화, ③ 8-K 실시간 공시 범위 확대가 정보 품질을 높이면서도 비용을 줄이는 해법이 될 것이다.
또한 글로벌 자본이동이 자유로운 시대에 미국만 반기로 전환하면, 투자자들은 캐나다·홍콩 등 경쟁 거래소로 분산 투자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뉴욕증권거래소(NYSE)·나스닥(Nasdaq)의 네트워크 외부성을 약화시켜, 장기적으로 미국 자본시장 지배력을 흔드는 역효과를 부를 위험이 있다.
9. 결론: ‘반기 공시’는 해결책인가, 새 문제의 서막인가
정책 목표는 ‘기업 성장 & 투자자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다. 분기보고 폐지는 토끼 한 마리를 빠르게 잡는 대신, 다른 한 마리를 놓칠 위험이 크다. 결국 관건은 정보의 적시성(Timeliness)과 투명성(Transparency)을 어떻게 동시 확보하느냐다. SEC와 의회, 그리고 시장 참여자들은 공시 빈도·내용·형식을 패키지로 재설계하는 ‘정밀 수술’이 필요하다. 2026년 제도 개편 논의는 미국 자본시장이 장기유인 구조로 진화할 수 있는 분기점이자, 글로벌 스탠더드를 다시 쓰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