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사회주의 정당, 한때 기반이던 아이마라 지지층 이탈

[라파스] 볼리비아 정치 지형에서 지난 수십 년간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아이마라(Aymara) 원주민의 권력 및 사회적 영향력 확대였다. 그 중심에는 전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Evo Morales)가 창립한 좌파 정당 사회주의를 향한 운동(MAS)이 있었다.

2025년 8월 7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볼리비아가 8월 17일 예정된 총선을 앞두고 전통적 원주민 지지층의 이탈이라는 정치적 지각변동을 겪고 있다.

라파스와 엘알토의 아이마라·케추아(Quechua) 공동체 출신 유권자들은 최근 수십 년 내 최악으로 평가받는 경제 위기 속에서 MAS에 대한 충성심이 급격히 약화됐다고 호소한다. 특히 35세 이하 젊은 세대는 정체성보다 경제 안정·교육·의료와 같은 생활 밀착형 의제를 우선시하고 있다.


‘지갑 투표’(Wallet Vote)의 부상

볼리비아는 라틴아메리카에서 UN ECLAC 기준 원주민 비중 62%로 비율이 가장 높다. 이 중 아이마라케추아가 다수를 차지하며, 지난 20년간 MAS의 확고한 정치 기반을 형성해 왔다. 그러나 현재 다수 여론조사에서 우파 야권 후보들이 좌파 진영을 크게 앞서는 양상이 확인된다.

시장조사기관 CIESMORI–입소스가 7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대표적 좌파 후보 안드로니코 로드리게스(Andronico Rodriguez)의 지지율은 올해 초 19%에서 6%로 폭락했다. 공식 MAS 후보의 지지율은 2% 안팎에 그쳤고, 로드리게스 본인도 당과 거리를 두고 있다. 현직 루이스 아르세(Luis Arce) 대통령은 재선에 도전하지 않는다.

“대다수 원주민은 이제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 것인가’라는 현실적 문제와 씨름한다.” — 사유리 로사(Sayuri Loza), 아이마라 SNS 인플루언서

42세의 로사는 “경제 안정·교육·보건 어느 하나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며 이번 선거에서 MAS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배경: 아이마라·케추아는 누구인가?

아이마라와 케추아는 잉카 이전부터 안데스 고원에 거주한 고유 민족으로, 자체 언어·의상·의례를 보존해 왔다. 20세기 중반까지도 이들은 라파스 대통령궁 앞 광장 출입이 금지되는 등 차별을 겪었으며, 소작농 신분(준농노제)은 1945년에야 폐지됐다.

2006년 모랄레스가 볼리비아 최초의 원주민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원주민 권리 회복’이 국가 의제로 부상했다. 그는 취임 전 티와나쿠(Tiwanaku) 유적지에서 추장(칸토니)의 지팡이를 받으며 “세계 원주민에게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선언했다.


균열과 실망

하지만 2011년, 모랄레스 정부가 아마존 원주민 보호구역을 관통하는 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하면서 양측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후 헌법 개정 실패로 4선 출마가 무산됐고, 모랄레스는 2019년 3선 임기를 마친 뒤 법원으로부터 미성년자 성추문·테러 혐의로 체포 영장이 발부돼 코카 재배지 차파레(Chapare)에서 사실상 은신 중이다.

TikTok에서 케추아어를 가르치며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는 29세 릴리오 푸에르테스(Lirio Fuertes)는 “정체성은 연설·국기·축제에만 등장했을 뿐, 교육·보건·사법 분야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경제 위기의 직격탄

이번 선거는 볼리비아가 1980년대 중반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는 가운데 치러진다. 천연가스 수출 급감, 40년 만의 최고 인플레이션, 달러화 부족, 암시장 환율 폭등(볼리비아노 가치 50% 하락)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다.

‘지갑 투표’(경제 이슈)가 ‘정체성 투표’를 앞서기 시작했다.” — 안드레스 고메스(Andres Gomez), 케추아 출신 정치 분석가

고메스는 MAS의 ‘지출 기반 성장 모델’이 경제 악화를 초래했다는 여론이 도시·사업가층 원주민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선거 판세와 전망

보수 성향 사무엘 도리아 메디나(Samuel Doria Medina) 및 호르헤 ‘투토’ 키로가(Jorge “Tuto” Quiroga)가 선두를 달리지만, 두 사람 모두 30% 미만의 지지율에 머무른다. 미정층은 약 3분의 1이다. 8월 17일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 후보가 없을 경우, 결선은 10월 19일로 예정돼 있다.

아이마라 SNS 인플루언서 로사는 “우파 역시 원주민 볼리비아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냉소했다. 이는 MAS 이탈이 곧바로 우파 지지 확대로 연결되지 않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전문가 시각

볼리비아 사회학자 렌초 아브루세세(Renzo Abruzzese)는 “원주민 중산층의 확대가 아이덴티티 정치의 한계를 드러냈다”고 진단했다. 그는 젊은 세대가 진출한 다양한 전문직—IT, 크리에이터, 헬스케어—이 새로운 계층 이동 사다리로 기능하며, 정치적 요구 역시 ‘자기표현’보다 ‘제도적 효율’로 이동했다고 분석했다.

기자는 볼리비아 정치가 ‘포퓰리즘·정체성’에서 ‘제도·성과’ 중심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한다. 경제 회복 없이 어떤 이념도 설득력을 얻기 어려운 만큼, 차기 정부의 거시경제·복지 정책이 원주민 표심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부상할 전망이다.


용어 설명

아이마라(Aymara): 안데스 고원(볼리비아·페루·칠레 북부)에 거주하는 고유 민족. 자체 언어(아이마라어) 사용. 전통 의상 ‘폴레라’와 추운 고산기후에 적응한 생활양식으로 유명하다.

케추아(Quechua): 잉카 제국 공용어였던 케추아어를 사용하며, 페루·볼리비아·에콰도르에 광범위하게 분포해 있다. 잉카 유산을 계승한 문화·공예로 관광 수요가 높다.

지갑 투표(Wallet Vote): 후보·정당의 이념이나 정체성보다 개인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표를 행사하는 현상. 경기 침체기마다 세계 여러 국가에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