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오브아메리카·BNY멜론, 제프리 에프스타인 연루 소송 기각 요청

뉴욕 —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와 뉴욕멜런은행(Bank of New York Mellon, 이하 BNY 멜론)제프리 에프스타인(Jeffrey Epstein)의 성매매 인신매매 범죄를 알면서도 은행 서비스를 제공해 도왔다고 비난하는 소송을 기각해 달라고 연방법원에 요청했다. 두 은행을 상대로 제기된 이번 소송은, 에프스타인의 피해자로 알려진 플로리다 거주 여성 제인 도(Jane Doe)가 10월 15일 제기한 집단소송으로, 은행들이 범죄에 관한 방대한 신호를 무시했다는 주장을 골자로 한다.

2025년 11월 14일,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제인 도의 소장에서 원고 측은 은행들이 피해자 보호보다 이익을 우선시해 에프스타인 관련 경고 신호를 묵살했고, 그 결과 범죄 억제가 지연됐다고 적시했다. 소장에는 은행들이 “수많은(plethora) 정보”를 간과했다는 표현이 담겼으며, 피고 은행들이 미국 재무부에 의심스러운 활동 보고서(Suspicious Activity Report·SAR)를 제출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건의 소송은 공통적으로, 해당 보고서 제출이 이뤄졌다면 법집행당국이 더 빨리 개입해 에프스타인의 범죄 행위를 중단시킬 가능성이 높았다고 주장한다. 미국 재무부에 제출되는 SAR는 금융기관이 불법 자금 흐름 정황을 포착했을 때 제출하는 통지 문서로, 수사기관의 초기 탐지와 후속 조치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일반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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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오브아메리카맨해튼 연방지방법원에 제출한 서면에서, 제인 도가 주장한 사실관계는 “당시 에프스타인과 알려진 연계가 없던 이들에게 보편적·일상적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정도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더 깊은 개입이 있었다는 암시는

“피상적이고 근거 없는(threadbare and meritless)”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BNY 멜론 역시 별도 서면에서 제인 도의 주장을

“극도로 빈약한(razor-thin)”

것으로 규정하며, 에프스타인이 해당 은행의 고객이었다는 사실이나 특정 인물과 거래했다는 구체적 주장조차 포함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은행 측은 원고의 서술이 손해배상 책임의 최소 기준에도 미달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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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은행은 아울러 자신들의 통상적 은행 활동이 제인 도에게 손해를 야기하리라고 합리적으로 예견 가능했다고 볼 수 없다며, 이에 따라 과실(negligence) 청구는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불법행위 책임의 핵심 요건인 예견가능성인과관계에 대한 법리 공방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법률대리인·절차 현황

제인 도 측 대리인에는 데이비드 보이스(David Boies) 등이 포함돼 있으나, 정규 거래시간 종료 이후 로이터의 논평 요청에 즉각 응답하지 않았다. 원고 측 법률팀은 과거에도 에프스타인 범죄의 조력자로 지목된 기관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왔다.

특히 2023년, 원고 측은 JP모건체이스도이체방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각각 2억9천만 달러(US$290 million), 7천5백만 달러(US$75 million) 규모의 합의에 도달했다. 다만 양 은행 모두 위법행위를 인정하지는 않았다고 명시됐다.

이들 합의는 현재 뱅크오브아메리카·BNY 멜론 사건을 심리 중인 연방지방법원 재판장 제드 래코프(Jed Rakoff) 판사가 승인했다. 래코프 판사는 금융·증권 소송 분야에서 엄격한 심리로 알려져 있으며, 소송 기각 신청 단계에서 원고의 사실관계 서술이 법적 청구 요건을 충족하는지 여부를 중점적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일반적 법리 설명.


사건 배경과 공적 관심

에프스타인은 2019년 8월, 성매매 인신매매 혐의로 재판을 기다리던 중 맨해튼 구치소 수감시설에서 자살했다. 그의 사망 이후에도 사건은 지속적으로 국제적 관심을 받아 왔으며, 관련 기관·인물들에 대한 조사와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주에는 미 하원 민주당이 공개한 이메일이 새로운 파장을 일으켰다. 민주당 측은 해당 이메일이 조 바이든 행정부가 아닌 당시 공화당 소속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소녀 및 젊은 여성 대상 에프스타인의 성매매 인신매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지를 둘러싼 의문을 제기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전 대통령은 관련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입장을 강력하고 일관되게 부인해 왔다.


핵심 쟁점 정리와 해설

1) ‘의심스러운 활동 보고서(SAR)’ 제출 의무: 원고는 두 은행이 SAR를 제때 제출하지 않아 수사가 지연됐다고 본다. SAR는 미국 내 금융기관이 자금세탁·사기·인신매매 등 범죄 연계 징후를 포착할 때 미국 재무부에 제출하는 신고로, 법집행기관의 신속 대응을 유도하는 목적을 지닌다. 반면 피고 은행들은 스스로의 거래가 당시 기준에서 비정상적 위험 신호를 동반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SAR 미제출이 곧바로 법적 책임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맞서고 있다.

2) 과실 및 예견가능성: 원고는 은행들의 행위가 피해자에 대한 손해를 합리적으로 예견 가능했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본다. 이에 대해 은행들은 통상적 금융서비스 제공이 특정 피해자에게 직접적 손해를 유발할 것이라 예견하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는 불법행위 성립 요건 중 ‘주의의무 위반’과 ‘인과관계’를 가르는 핵심 쟁점이 된다.

3) 소장 기재의 충분성: 두 은행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은 제인 도의 소장이 구체적 사실 서술을 결여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BNY 멜론은 에프스타인이 자신들의 고객이었다는 주장 자체가 없다고 지적했으며,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더 깊은 관여를 시사하는 대목이 “피상적”에 그친다고 반박했다. 미국 민사소송에서 기각신청은 원고의 주장이 ‘법적으로 구제 가능한 권리’를 구성하는지, 그리고 사실관계가 충분히 특정돼 있는지를 따지는 첫 관문이다.

4) 과거 합의의 함의: 2023년 JP모건체이스(2억9천만 달러)도이체방크(7천5백만 달러) 합의는 원고 측이 제기하는 ‘금융기관 책임’의 범위를 공론화했다. 다만 두 은행 모두 위법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은, 법적 책임의 인정리스크 관리 차원의 합의가 별개의 문제임을 시사한다. 제드 래코프 판사의 감독 아래 이번 사건이 어떤 기준으로 걸러질지 주목된다.


전망

이번 사건의 단기 관전 포인트는 맨해튼 연방지방법원의 기각 여부 판단이다. 법원이 원고의 서술을 충분히 개연적이고 구체적이라고 보면 본안 심리에 진입할 수 있고, 반대로 구체성 결여가 지적되면 전부 또는 일부 청구가 기각될 수 있다. 또한 의심스러운 활동 보고 의무의 적용 범위와 금융기관의 주의의무 수준에 관한 판단은 향후 유사 사건의 중요한 기준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한편, 에프스타인 사건을 둘러싼 정치적 파장도 지속되고 있다. 하원 민주당이 공개한 이메일의 해석을 둘러싼 여야 공방은 사건의 사회적·정책적 관심을 유지시키는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만 현재 소송의 쟁점은 어디까지나 각 피고 은행의 행위가 민사상 책임 요건을 충족하는지 여부에 있으며, 이번 기각 신청 판단은 그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기사: 조너선 스템펠(Jonathan Stempel) | 출처: 로이터(Reuters) | 장소: 뉴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