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비아대학교가 미 연방 정부 조사를 종결하기 위해 2억2,100만 달러(약 3,000억 원) 이상을 지불하기로 한 결정은 ‘굴복’이 아니라 필수적인 공적 자금 회복을 위한 조치였다고 클레어 시프먼 총장 대행이 강조했다.
2025년 7월 24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시프먼 총장 대행은 CNN 인터뷰에서 "이번 합의는 대학의 학문적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향후 수십 년간 이어질 연방 자금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이 합의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행정부가 명문 사립대에 대한 통제권을 확대하려는 계획의 위험한 전례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미 대학가를 뒤흔든 친(親)팔레스타인 시위 이후 컬럼비아대를 포함한 여러 대학을 공개적으로 압박해 왔다.
하버드대학교는 현재 행정부를 상대로 소송전을 벌이고 있으며, 일부 학계 인사들은 이번 컬럼비아대 합의를 “노골적 갈취(extortion)”에 비유했다.
시프먼 총장 대행은 대학이 합의를 거부할 경우 향후 수십 년간 수십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연방 연구비와 보조금을 잃고, 1만 명 이상에 달하는 유학생 비자 지위까지 박탈당할 위험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CNN에서 "이번 합의는 절대적인 굴복이 아니며, 오히려 대학의 학문적 무결성을 지키는 방패"라고 강조했다.
합의에 따라 컬럼비아대는 미 재무부에 2억 달러, 유대계 직원의 민권 침해 관련 분쟁 해결을 위해 2,100만 달러를 별도 기금에 납부한다. 이에 대해 시프먼 총장 대행은 대학이 다시 17억 달러 규모의 연방 보조금과 연구비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앞서 행정부는 2024년 3월, 컬럼비아대가 캠퍼스 내 반유대주의·반이스라엘 행위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했다며 4억 달러의 연방 지원을 즉각 중단한 바 있다. 당시 대학은 중동 관련 학과에 대한 심층 감사 등 일련의 요구 사항을 수용했고, 이는 미국 학계에서 "정치적 개입"이라며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합의문은 이러한 행정명령 수준의 요구 사항 상당 부분을 공식화했다. 린다 맥마흔 교육부 장관은 케이블 채널 NewsNation과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거둔 놀라운 승리(incredible win)"라며 "다른 대학들도 이미 자체적으로 유사 조치를 도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맥마흔 장관 "이번 모델이 전국 대학의 표준(template)이 되길 희망한다. 아직 조사 단계에 있는 학교들조차 선제적으로 비슷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합의문에 따르면 컬럼비아대는 ▲캠퍼스 운영을 심각하게 방해한 학생 징계 ▲중동학 프로그램에 관점 다양성(viewpoint diversity) 도입 ▲채용·입학 과정에서 인종 선호 철폐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프로그램 폐지 등을 약속했다.
데이비드 포즌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는 블로그 글에서 "이번 합의는 돈을 대가로 한 통제(pay-to-play)의 전례를 만들었다"며 "정부가 사립대 구조조정을 강제한 사례 중 반유대주의와 DEI를 동시에 근거로 내세운 첫 사례"라고 비판했다.
포즌 교수 "합의문은 법적 형식을 갖춘 갈취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시프먼 총장 대행은 "이번 합의는 "교원·직원·학생 선발, 그리고 학문적 발언의 내용"에 대해 미국 정부가 지시권을 갖지 않는다는 조항을 명시했다"고 강조했다.
용어 해설
DEI는 Diversity(다양성)·Equity(형평성)·Inclusion(포용성)의 약자로, 대학과 기업이 소수자 보호와 기회 균등을 위해 운영해 온 프로그램을 가리킨다. Viewpoint Diversity는 특정 지역·이념·문화적 시각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관점을 강의와 연구에 반영하자는 교육 정책을 의미한다.
기자 해설 및 시사점
이번 합의는 연방 기금이라는 실질적 지렛대를 통해 대학 운영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사립·공립 기관 모두에게 적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올 전망이다. 특히 중동 지역 연구와 다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해 온 대학들은 행정부가 요구하는 관점 다양성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교육과정 개편에 나설 수밖에 없다. 동시에 DEI 폐지와 인종선호 철폐가 채용·입학 분야에서 새로운 법적 분쟁을 촉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학문의 자유와 차별 금지"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는 현 시점에서, 이번 사례가 대학의 자치권(scope of autonomy)과 연방 정부의 감독권(regulatory power) 사이 균형점을 시험하는 ‘선도 판례’가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향후 합의를 둘러싼 후속 소송 여부와 다른 대학의 대응 양상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