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하 연준·Fed) 신규 이사를 지명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제롬 파월 의장을 포함해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세 명의 현직 이사들이 새 정책 방향에 얼마나 강력한 ‘저항선’이 될 수 있을지에 금융시장과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25년 8월 6일,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갑작스럽게 사퇴한 아드리아나 쿠글러 이사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조만간 새 인사를 내정할 계획이다. 이 인물은 제롬 파월 의장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 5월까지 ‘후보생(chair-in-waiting)’ 신분으로 머물 수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를 의장으로 승격시키는 시나리오까지 포함하면 연준 내부의 친(親)트럼프 목소리가 한층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연준의 설계는 ‘속도 조절 장치’다. 정책위원 구성원이 느린 속도로 교체되도록 설계돼 있어, 선출직 공직자(대통령 포함)가 통화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 전 연준 부의장 도널드 콘(Brookings Institution 선임연구원)은 “누가 의장이 되든 다른 정책 결정자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의장은 강력하지만, 최종 결정은 이사회(Board)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함께 내린다”면서 “누구도 당장 판을 뒤집을 수 없다. 설득을 통해 다수를 확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연준 금리 결정 구조1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를 위해 부연하면, FOMC는 7명의 이사와 12개 지역 연은 총재 가운데 5명이 매년 교대로 투표권을 행사하는 형식으로 총 12표를 갖는다. 즉, 의장이라도 단 한 표밖에 갖지 못한다. 이러한 분산 구조가 연준 독립성을 지키는 핵심 장치다.
“어떤 인물이 와도 ‘결단 만능주의’로 체제를 바꿀 수는 없다. 설득과 논거가 중요하다.” — 도널드 콘 전 부의장
금리·통화정책을 둘러싼 현황도 녹록지 않다. 연준은 2024년 마지막 넉 달 동안 세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했고, 그중 두 차례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확정된 뒤 이뤄졌다. 이후 연준은 4.25~4.50% 범위를 유지하며 관망 중이다. 이는 수입 관세 인상, 이민 단속 강화, 감세가 인플레이션과 고용에 미칠 복합적 효과를 지켜보기 위한 결정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두고 “연준이 정치적 의도로 나를 방해한다”고 역공을 펴며 기준금리를 1%까지 대폭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의장 한 명’만으로는 구조적·조직적 변화를 이끌 힘이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이사회 내 인사·예산·조직 구조 같은 내부 의제는 7명 전원이 표결한다. FOMC에서도 의장은 12표 중 1표만 가진다. 여기에다 글로벌 채권시장은 연준 수장의 발언 한마디에 미 국채 수익률을 요동치게 할 정도로 강력한 ‘외부 투표권’을 가진다.
트럼프 대통령이 검토 중인 후보군에는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도 포함된다. 그는 과거 연설에서 “체제 변경(regime change)과 ‘머리를 깨부수는’ 강력한 조치”를 언급해 시장을 긴장시킨 바 있다. 그러나 워시가 의장이 되더라도 바이든 행정부 때 임명된 필립 제퍼슨 부의장, 리사 쿡 이사, 마이클 바 이사의 만기 임기는 각각 2036년·2038년·2032년으로 길다. 그들이 자리 지키는 한, 급격한 정책 전환이 현실화될지는 미지수다.
바이든 지명 이사 3인의 ‘캐스팅보트’
연준 규정상 파월 의장은 내년 5월 의장 임기 종료 후에도 2028년 1월까지 평이사로 남을 수 있다. 파월까지 잔류하면 바이든 3인방 + 파월로 이사회 과반이 형성된다. 이는 인사, 예산, 규제 등 내부 사안에서 막강한 견제력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트럼프가 임명했던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와 미셸 보먼 금융감독 부의장조차 ‘급진적 구조조정’에는 회의적이다. 특히 월러는 워시 등이 주장한 ‘연준 대차대조표의 급격한 축소’ 아이디어를 공개적으로 거부했다.
예일대 경영대학원의 빌 잉글리시 교수(전 연준 통화정책국장)는 “새 의장이 오더라도 원하는 바를 모두 관철하기는 쉽지 않다”며 “유능한 직원과 정교한 경제 모델을 무시한 채 ‘맨손’으로 의사결정에 나서는 건 결코 성공적이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독립성’과 글로벌 채권시장의 감시
연준 수장은 다른 독립규제기관장들과 달리 거대한 글로벌 자금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청문회’를 통과해야 한다. 무리한 정책 실험은 미 국채 금리를 급등시켜 정부, 기업, 소비자의 차입 비용을 끌어올리고, 곧바로 백악관의 경제 아젠다를 위협한다.
제퍼슨·쿡·바 3인은 거취를 공식화하지 않았다. 다만 로이터는 제퍼슨이 노스캐롤라이나 데이비드슨 칼리지 교수직에서 발탁됐고, 부의장 임기는 2027년 9월에 끝나지만 이사 임기는 2036년까지라고 전했다. 쿡 이사는 미시간주립대 교수 출신으로 오바마 행정부 경제자문위원회(CEA)에서 일했으며, 2038년까지 임기를 보장받았다. 바 이사는 2025년 1월 ‘감독 부의장’ 직함을 내려놓았으나 평이사로 남아 2032년까지 연임할 수 있다.
“의장 교체는 전통적으로 비정치적이고 우호적이었다. 그런데 트럼프-파월 갈등은 그 관행을 깨뜨렸다.” — 1930년대 연준 개혁사 연구 논문2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면, 미 의회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연준 구조를 재설계하면서 ‘대통령의 손이 통화정책 레버와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명시했다Gary Richardson·David Wilcox 연구(2024). 이번 사태는 그때 세운 원칙이 21세기에 어떻게 시험대에 오르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주석
1) Board of Governors 7인 + 지역연은 총재 5인이 매년 순환 투표. 뉴욕연은 총재는 상시 투표권.
2) UC 어바인 Gary Richardson 교수·前 연준 연구국장 David Wilcox의 공동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