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9개 주요 제약사가 연방 정부의 저소득층 대상 의료보조프로그램인 메디케이드(Medicaid)와 현금구매자(cash-pay)에 대한 일부 의약품 가격을 대폭 인하하기로 합의했다고 백악관이 2025년 12월 19일 발표했다. 이번 합의는 미국의 의약품 가격을 다른 선진국 수준으로 맞추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의지를 반영한 조치다.
2025년 12월 19일,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합의에 참여한 제약사는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ristol Myers Squibb), 길리어드 사이언스(Gilead Sciences), 머크(Merck), 로슈의 미국 법인인 제넨테크(Genentech), 노바티스(Novartis), 암젠(Amgen), 베링거인겔하임(Boehringer Ingelheim), 사노피(Sanofi),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등 9개사라고 전했다. 이들 기업은 최근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특정 의약품의 목록가(list price)를 최대 70% 인하하거나 메디케이드에 대한 추가 할인 등을 약속했다.
“우리는 전 세계를 보조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하며 이번 합의를 강조했다. 대통령과 함께 자리한 9개 제약사 임원들은 이번 발표로 향후 3년간 관세 위협이 사라졌다고 평가받았다.
합의의 주요 내용
행정부 관계자들은 각 제약사가 메디케이드에 판매되는 대부분의 의약품 가격을 인하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일부 약품에 대해 현금구매자 대상 직접 판매 가격(cash-pay, direct-to-consumer)을 낮추고, 미국 내 출시 가격을 다른 부유국 수준으로 맞추며, 제조 역량을 확대하겠다는 약속도 포함됐다. 이와 같은 조건을 이행하면 기업들은 향후 3년간 관세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다만 관계자들과 분석가들은 메디케이드가 미국 전체 의약품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10%에 불과하며, 이미 상당한 가격할인(일부 품목은 80% 이상)을 받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따라서 이번 합의가 전체 시장에 미치는 직접적 재정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구체적 기업별 약속과 품목
머크는 당뇨병 치료제인 자누비아(Januvia), 자누메트(Janumet), 자누메트 XR를 미국 소비자에게 목록가 대비 약 70% 할인된 가격으로 직접 판매하겠다고 밝혔으며, 승인이 나면 실험적 콜레스테롤 약물인 에닐리타이드(enlicitide)도 직접 판매 채널(TrumpRx 포함)로 제공할 계획이다. 로이터는 에닐리타이드가 FDA의 신속심사 경로를 통해 빠른 검토 대상 중 하나라고 보도한 바 있다.
브리스톨마이어스의 한 임원은 기자회견에서 자사의 블록버스터 혈액응고 억제제 엘리퀴스(Eliquis)를 메디케이드에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브리스톨은 또한 엘리퀴스 원료를 미국 전략비축고에 기증하는 등 기부 계획을 발표했으며, 회사는 엘리퀴스 원료 6톤 이상을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암젠은 편두통 치료제 Aimovig와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제 Amjevita를 월 $299에 직접 환자에게 제공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이는 목록가 대비 60~80% 할인 수준이다. 사노피는 감염, 심혈관질환, 당뇨 등 치료제에서 평균 약 70% 절감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추가 합의 내용과 재정적 약속
관계자들은 기업들이 신약 미국 출시 시 상업·정부·현금구매 시장 전반에 대해 ‘최혜국대우(most-favored-nation)’ 가격을 적용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또한 각사 외국 매출의 일부를 미국에 송금해 비용을 상쇄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백악관은 제약사들이 미국 내 R&D와 제조에 총 1,500억 달러(> $150 billion)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으며, 머크는 이 약속 중 $700억 달러를 기여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 수치에 과거 약속이 포함돼 있는지 여부는 명확하지 않다고 관계자들은 덧붙였다.
시장 반응과 분석가 평가
거래소에서는 대다수 제약사 주가가 약 1%~3% 상승했다. 이는 이번 합의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위협이 제거되자 투자자들이 당장의 수익성 악화를 과소평가한 결과로 해석된다. 시장 분석가들은 기업들이 이번 합의를 통해 언론의 주목을 받고 기업 실적에 큰 변화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정했다고 평가했다. 버스탄자이너리(Bernstein)의 애널리스트 Courtney Breen은 이번 합의가 기업의 경제성에 대한 급격한 변화는 최소화할 것이라고 진단했으며, 메디케이드 노출이 큰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더 큰 수혜를 볼 것으로 전망했다.
아직 협상 중인 기업과 과거 합의 현황
메흐메트 오즈(Mehmet Oz) 미 메디케어·메디케이드 서비스 센터 국장은 레제네론(Regeneron), 존슨앤드존슨(Johnson & Johnson), 애브비(AbbVie) 등 3개사가 연휴 이후 백악관을 방문할 예정이며 정부의 TrumpRx 웹사이트 출범 행사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이들 3개사는 현재 행정부와 대화를 진행 중이라고 확인했다.
앞서 5개 기업(화이자, 일라이릴리, 아스트라제네카, 노보노디스크, EMD세로나)은 이미 가격 억제 관련 합의를 체결한 바 있으며, 이번 발표로 총 참여 기업 수는 더욱 늘어났다. 그러나 레제네론·J&J·애브비 등 일부 대형 제약사는 여전히 논의 중이다.
용어 설명 — 메디케이드·TrumpRx·최혜국대우 등
메디케이드(Medicaid)는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미국의 저소득층 지원 의료보험 프로그램이다. 미국 의료시장에서는 메디케이드가 차지하는 지출 비중은 전체 의약품 지출의 약 10% 수준으로 평가된다. TrumpRx는 이번 합의에 따라 정부가 가격 정보를 안내하거나 제약사들의 직접 판매 채널로 소비자를 유도하는 웹사이트 명칭으로 사용됐다. 다만 보험 적용을 받는 다수의 미국 시민은 처방전 기반의 공동부담금(co-pay)이나 공동보험(co-insurance)을 목록가(list price)를 기준으로 산정하기 때문에, TrumpRx를 통한 현금구매 할인 혜택을 직접적으로 받기 어려울 수 있다. 최혜국대우(most-favored-nation)는 신약 출시 시 타부유국에서 적용되는 가격과 동일하거나 그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가격을 설정하겠다는 의미다.
경제적·정책적 시사점 및 전망
이번 합의는 단기적으로는 특정 약품의 현금 구매자와 메디케이드 수급자를 대상으로 한 가격 인하를 가져온다. 그러나 전체 의약품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가능성이 있다. 그 이유는 메디케이드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고, 기존에도 제조사들이 목록가 대비 대규모 할인(일부 품목 80% 이상)을 제공해왔기 때문이다. 반면 중장기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영향이 예상된다.
첫째, 기업들이 신약의 미국 출시 가격을 다른 선진국 수준으로 맞추면 전반적인 목록가 상향 압력은 완화될 수 있다. 둘째, 제조업 투자 확대와 원재료 기부, 전략비축 공급 확대는 공급망 안정성 강화에 기여할 수 있다. 셋째, 제약사들이 외국 매출의 일부를 미국으로 송금해 비용을 상쇄키로 한 조치는 국가 재정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기업의 국제 수익 분배 구조를 변화시켜 다국적 세무·회계 전략에 영향을 미칠 소지가 있다.
그러나 중요한 변수는 보험 적용을 받는 대다수 환자들의 실제 부담(공동부담금 및 보험자의 보상 구조)이다. 많은 미국 환자는 처방전 약품 비용에서 직접적인 혜택을 보기 어렵고, 목록가가 보험료와 코페이 산정의 기준으로 남아 있는 한 소비자 체감은 제한될 수 있다. 투자자 관점에서는 단기 주가 변동보다 장기 수익성·R&D 투자와의 균형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결론 및 향후 관전 포인트
이번 합의는 미국 내 의약품 가격 문제를 해결하려는 행정부와 제약업계 간의 협력 사례로 기록된다. 주요 관전 포인트는 향후 3년간의 관세 면제 이행 여부, 약속된 1,500억 달러 이상의 투자 집행 실적, 신규 출시 약품의 가격 책정 실무, 그리고 레제네론·존슨앤드존슨·애브비 등 남은 대형 제약사들의 합류 여부다. 정부와 제약사 간 합의가 실제 환자 부담 완화와 시장 구조 변화로 이어질지 여부는 향후 구체적 집행과 계약 조건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