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잉(Boeing Co.)이 미 해군 T-45 훈련기 유지·보수 프로그램에서 약 9,180만 달러 규모의 신규 계약을 따냈다.
2025년 7월 21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계약은 ‘비용가산·고정수수료(Cost-Plus-Fixed-Fee)’ 방식의 무기한·무수량(Indefinite-Delivery/Indefinite-Quantity·ID/IQ) 형태로 체결됐다. 이에 따라 보잉은 2030년 7월까지 T-45 플랫폼과 관련 시스템의 후속 생산 단계 엔지니어링·물류·기술 지원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게 된다.
계약 금액은 총 9,180만 달러(한화 약 1,260억 원*1)다. 이번 사업의 95%는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위치한 보잉 공장에서, 나머지 5%는 영국 잉글랜드 랭커셔주 볼더스톤(Balderstone)에서 수행된다. 계약 발주 기관은 메릴랜드주 팍서천트리버(Patuxent River)의 해군 항공전투체계 사령부(Naval Air Warfare Center Aircraft Division·NAWCAD)로, 해당 기관은 미 해군 항공 자산의 연구·개발·시험·평가(RDT&E)를 총괄하는 핵심 조직이다.
이번 계약은 경쟁 입찰이 아닌 수의계약(Sole-Source)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연방조달규정(FAR) 6.302-1(a)(2)(iii)(B) 조항에 따라 “단일 공급자만이 합리적으로 요구되는 성능·일정을 충족할 수 있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계약 체결 즉시 자금이 투입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작업 지시(Task Order)가 발행될 때마다 단계별로 예산이 할당되는 구조다.
‘T-45 고스호크(Goshawk)’는 보잉과 BAE시스템스가 공동 개발한 해군용 고등 제트훈련기로, 항공모함 함상 운용 능력을 갖춘 점이 특징이다. 현재 미 해군과 해병대 조종사 후보생들은 항공모함 탑재 함재기(F/A-18, F-35C 등)로 전환하기 전 반드시 T-45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따라서 플랫폼의 안정적인 수명주기(Life-Cycle) 관리는 해군 조종사 양성과 직결되는 핵심 과제다.
“T-45 함상 훈련기는 단순한 훈련기를 넘어 미 해군 항공력의 ‘관문(Gateway)’ 역할을 한다”
는 게 국방 분석가들의 중론이다. 이번 계약이 ‘후속 생산(Post-Production)’ 단계 지원임에도 불구하고 큰 의미를 지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용가산·고정수수료’ 계약은 업체가 실질적으로 발생하는 비용을 정부가 보전하되, 일정 수준의 이윤(고정수수료)을 따로 보장해 주는 방식이다. 방산 분야에서 흔히 채택되며, 정부는 비용 구조를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고, 업체 입장에서는 위험 부담을 일부 상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무기한·무수량 계약은 계약 기간과 상한 금액만 정해 두고, 실제 발주는 필요 시점에 맞춰 반복적으로 이뤄진다. 즉, 해군은 2030년까지 요구되는 정비·개량·부품조달 물량을 유연하게 조달할 수 있고, 보잉은 장기적으로 인력·시설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세인트루이스 공장은 보잉 방산 부문의 핵심 생산·개발 거점으로, F-15EX, F/A-18E/F, MQ-25 스팅레이(무인급유기)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다. 이번 T-45 수주로 해당 공장의 고용 안정 및 지역경제 파급 효과 역시 기대된다. 반면, 영국 랭커셔 볼더스톤 시설은 주로 시뮬레이션·항공전자(Avionics) 개량 작업을 담당할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방산 생태계 입장에서도 미 해군 프로그램의 글로벌 공급망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재정 측면에서 보면, 9,180만 달러는 보잉 연간 방산 매출(2024 회계연도 기준 약 247억 달러)*2 대비로는 크지 않지만, 성숙 단계 기존 플랫폼에서 안정적으로 현금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긴장 고조로 글로벌 방산 주가가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장기 지원·유지 사업은 경기 사이클에 덜 민감해 ‘캐시카우’로 평가된다.
또한 미국 국방부 예산 편성 관행상, 지속적 유지·보수(Sustainment) 예산 비중은 신규 전력(Modernization) 획득보다 높게 책정되는 경향이 있다. 2025 회계연도 미 국방예산(안)에서도 유지·보수 항목이 1,800억 달러 이상으로, 전체의 약 30%를 차지했다. 이번 계약 역시 이러한 구조적 추세를 반영하는 사례다.
업계 전문가들은 Boeing Defense, Space & Security 사업부가 최근 KC-46 공중급유기 잦은 결함, MQ-25 개발 지연 등으로 비판을 받아 왔지만, 기존 훈련기·헬기·회전익 플랫폼에서의 유지·보수 포트폴리오가 실적 방어에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T-45 프로그램의 높은 가동률(Availability Rate)은 해군 항공모함 전력의 ‘출격 대비 태세(Readiness)’를 좌우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과거 보잉의 T-45 사업은 엔진 흡입구 산소 결핍 문제 등으로 일시적 비행 중단(2017년) 사태를 겪었다. 당시 미 해군은 훈련 공백을 메우기 위해 민간 제트 임대까지 검토할 만큼 제도적 압박을 받았다. 이번 계약은 유사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선제적 조치로도 해석된다.
FAR 6.302-1 조항은 “대체 공급원이 존재하더라도 일정·품질·비용 측면에서 기존 공급자를 능가하기 어려운 경우” 예외적으로 경쟁을 배제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따라서 방산 시장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이번 수의계약 결정은 ‘경쟁 제한’이라기보다는 ‘안전성·연속성 우선’이라는 정부 조달 철학을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전망 측면에서, 미 해군은 차세대 훈련기(예: 마이크로소프트+사브 협력 T-7A 레드호크)의 단계적 도입을 추진 중이지만, 완전 전환까지는 최소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 사이 T-45는 정비·구조 강화(SLEP) 프로그램을 통해 함상 운용 수명을 연장할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계약이 ‘지원 시작점’일 뿐, 추후 항전장비(Block Upgrade)·센서 통합·전자전(EW) 모듈 개량 등 추가 옵션(Option Year)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본다.
한편 보잉 주가(NYSE: BA)는 올 들어 20% 이상 상승하며 방산 섹터 랠리에 편승했다. 다만, 민항기 부문의 B737 MAX 품질 논란으로 변동성(Volatility)이 확대된 상태다. 안정적 방산 수주는 투자자 심리를 일부 완충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번 9,180만 달러 규모 계약은 수치상으로는 대형 프로젝트에 미치지 못하지만, ‘전력 공백 방지’, ‘장기 유지·보수 수익 확보’, ‘글로벌 공급망 강화’라는 세 가지 축에서 보잉과 미 해군 모두에게 전략적 가치를 제공한다는 평가다.
*1 환율 1달러=1,370원 가정
*2 보잉 2024년 연차보고서(10-K)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