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 제2 연방순회항소법원이 3대0 전원일치 의견으로 HSBC 전 임원 마크 존슨의 2017년 사기 혐의 유죄 판결을 전면 취소했다.
2025년 7월 17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판결은 금융권을 뒤흔든 ‘통화 시장 조작’ 사건의 방향을 바꿀 만한 중대한 법적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존슨은 2011년 영국 석유·가스 탐사 기업 케언 에너지(현 캐프리콘 에너지)가 35억 달러 상당의 달러화를 영국 파운드화로 환전하는 과정에서 일명 ‘프런트러닝(front-running)’을 통해 약 700만 달러의 차익을 거둔 혐의로 기소됐다.
‘프런트러닝’이란 무엇인가?
프런트러닝은 브로커나 트레이더가 고객의 대규모 주문 정보를 미리 알고 자기 계정으로 선행 거래를 체결해 가격 변동 이익을 챙기는 행위를 말한다. 우리말로는 ‘선취매’ 혹은 ‘사전 매매’로 번역되며, 금융시장 신뢰를 훼손하는 위법·부정행위로 간주된다.
존슨은 4주간의 배심원 재판 끝에 2017년 전신사기(전자통신사기) 및 음모(conspiracy) 혐의로 유죄가 확정돼 2년간 복역했다. 그러나 2023년 미 연방대법원이 Ciminelli v. United States 사건에서 ‘자산 통제권(right-to-control)’ 사기 이론을 부정하면서, 동일 이론에 근거한 존슨의 유죄 논리가 치명적 타격을 받게 됐다.
항소심을 담당한 귀도 칼라브레시 순회판사는 “대법원 판례 변화로 인해 존슨이 고객의 ‘자산 통제권’을 박탈했다는 기소 논리가 설득력을 상실했다”며 “
‘대안적 이론’인 기밀정보 남용만으로 배심원이 유죄 평결을 내렸을 가능성은 극히 미약하다*
”고 설명했다.
* 칼라브레시 판사는 판결문에서 ‘가상의 균형(virtual equipoise)’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합리적 배심원이 무죄·유죄 사이에서 동등하게 갈릴 경우 피고인에게 유리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적시했다.
이에 따라 존슨 사건은 1심을 담당했던 니컬러스 가라우피스 뉴욕 동부지방법원 판사에게 환송됐으며, 검찰이 재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브루클린 연방검찰 대변인은 “판단을 유보한다”며 즉답을 피했다.
사건 핵심 일지
2011년 – 케언 에너지는 인도 자회사 매각 자금을 파운드화로 전환하기 위해 HSBC를 선정.
2017년 10월 – 존슨, 미 최초 ‘통화시장 담합’ 배심원 재판에서 유죄.
2019년 – 제2 순회항소법원, 1심 유죄 유지.
2023년 5월 – 미 연방대법원, Ciminelli 판결로 자산 통제권 사기 이론 폐기.
2025년 7월 17일 – 항소법원, 존슨 유죄 판결 무효화.
전문가 시각
시장 구조 변화 – 다수 변호사들은 “대법원·항소법원 잇단 판례로 투자은행·브로커의 정보 활용 범위를 둘러싼 규제 공백이 커질 수 있다”고 진단한다. 자산 통제권 이론이 사실상 폐기되면서, 향후 검찰은 기밀 정보 남용(misappropriation)이나 허위 진술(false statement) 등 좁은 법리로만 기소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영업 관행에 미칠 파장 – 시중 은행 외환 데스크는 대형 고객 주문을 ‘완전장부(agency)’ 방식과 ‘원앵크(principal)’ 방식으로 나눠 처리한다. 존슨 사례는 프런트러닝과 정상적인 헤지(hedging) 행위를 구분하는 기준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향후 전망 – 복역까지 마친 피고인이 ‘무죄 추정’ 상태로 되돌아간 드문 선례인 만큼, 법무부·연방검찰의 대형 금융 범죄 전략이 전면 재검토될 수 있다. 또한 유사 사건으로 처벌받은 해외 트레이더들이 재심 청구에 나설 여지도 제기된다.
존슨을 대리한 변호사 알렉산드라 샤피로는 “존슨은 업계 관행에 따라 거래했으며 어떤 법도 위반하지 않았다”며 “마침내 정의가 실현됐다”고 강조했다.
반면 케언 에너지 측 공식 입장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회계·법무 전문가들은 “민사 손해배상 소송 가능성도 상존한다”며 후속 전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