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항소법원, 트럼프 대통령의 연준 이사 리사 쿡 해임 시도 일단 제동

미국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의 독립성을 둘러싼 역사적 법정공방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 이사 리사 쿡(Lisa Cook)을 해임하려는 첫 시도는 항소심 단계에서 제동이 걸렸다.

2025년 9월 16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 워싱턴 D.C. 연방순회항소법원은 미국 법무부(Justice Department)가 제기한 집행정지 요청을 기각함으로써 1심 결정(해임 일시 금지)을 그대로 유지했다. 이에 따라 쿡 이사는 17~18일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 정상적으로 참석해 금리 결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 연준 이사를 해임할 광범위한 재량이 있다”는 논리를 펴 왔다. 반면 쿡 측은 “연준 설립법(Federal Reserve Act)은 ‘사유가 있을 때(for cause)’만 해임을 허용하며, 이번 의혹은 취임 이전 사안이므로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사유 해임’(for cause) 조항과 112년 만의 첫 시험대

연준은 1913년 설립 당시부터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받도록 설계됐다. 법률은 대통령에게 ‘for cause’—즉 직무상 중대한 비행이나 무능 등이 인정될 때에 한해—만 이사를 해임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다만 법 조문은 구체적 절차나 ‘사유’의 정의를 명확히 하지 않았다. 연준 이사 해임이 실제로 추진된 것은 이번이 역사상 처음이어서, 사법부 판단은 향후 중앙은행 독립성에 중요한 선례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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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을 맡은 지아 콥(Jia Cobb) 연방지법 판사는 9월 9일 “쿡 이사에 대한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사기 의혹은 취임 이전 행위에 관한 것이므로 해임 사유가 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Childs·Garcia·Katsas 세 판사)는 이날 구체적 의견서를 내지 않은 채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함으로써 1심 결정을 유지했다.


모기지 사기 의혹 쟁점

트럼프 행정부와 윌리엄 퓰트(William Pulte) 연방주택금융청(FHFA) 국장은 쿡 이사가 세 건의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면서 거주 목적을 허위 기재해 이자율 인하·세제 혜택을 부당하게 누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로이터가 확인한 애틀랜타 주택 대출 견적서에는 해당 부동산이 ‘별장(vacation home)’으로 표시돼 있어, 의혹을 뒷받침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또한 미시간 주 앤아버(Ann Arbor) 세무 당국은 로이터 질의에 “쿡 이사가 1차 거주지로 신고한 주택에 대해 세금 규정을 위반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이런 정황은 쿡 이사의 방어 논리를 강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연준 독립성과 시장 파장

이번 소송은 통화정책에 대한 정치 개입 논란을 재점화했다. 전문가들은 “중앙은행이 독립적으로 금리를 조정하지 못하면 인플레이션 억제 기능이 약화되고, 시장은 정책 일관성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여러 차례 급진적 금리 인하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며 제롬 파월(Jerome Powell) 의장을 비판해 왔다.

주목

금융시장은 이번 결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만약 대통령이 해임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전례가 확립될 경우, 향후 연준 위원들의 정책 판단이 정치적 압력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17~18일 FOMC에서 예상되는 기준금리 인하는 최근 노동시장 냉각을 고려한 결정으로 평가되지만, 정치적 압박 요인까지 겹치면 연준의 통화정책 시그널이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대법원으로 향하는 공

법무부는 이번 항소심 결정에 불복해 미 연방대법원(Supreme Court)에 즉시 상고할 방침이다. 대법원은 2025년 5월, 트럼프 대통령이 독립기관 위원들을 해임한 사례 관련 명령에서 “연준은 고유의 역사·구조를 가진 준(準)민간 기관”이라며 다른 행정부 산하 기구와 차별화된 언급을 한 바 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대법원이 ‘연준 이사에 대한 해임 요건은 재직 중 중대한 비위를 전제로 한다’는 하급심 판단을 존중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는 “연준 이사 임명·해임은 본질적으로 행정권(executive power)에 속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결론은 빠르면 올해 안에 나올 전망이며, 이에 따라 미국 중앙은행 제도의 헌법적 위상 자체가 재정립될 수도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용어·제도 해설*

*for cause: 미국 행정법에서 임명직 공무원을 해임하기 위한 ‘정당한 사유’를 의미한다. 대체로 직무상 비위, 중대한 무능, 법 위반 등이 포함되며, 단순한 정책적 불일치나 인사권자의 기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미국의 기준금리와 유동성 공급 조치를 결정하는 최고 통화정책 기구로, 1년에 8차례 정기회의를 개최한다.

준(準)민간 기관: 연준은 정부기관이지만, 지역 연방은행 지분이 민간 시중은행에 배분돼 있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행정부로부터 일정 부분 독립되어 있다는 점에서 ‘quasi-private’ 조직으로 분류된다.


전문가 시각과 전망

월가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쿡 이사의 거취보다 더 큰 문제는 정치권이 중앙은행을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유혹”이라며, 이번 사건이 연준뿐 아니라 세계 각국 중앙은행에도 상징적 선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유럽중앙은행(ECB)·일본은행(BOJ) 등도 독립성을 법률로 보장받지만, 선출 권력의 단기 정치 목표와 충돌할 때마다 유사한 압력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향후 시나리오는 두 갈래다. 대법원이 1·2심 판단을 확정하면 대통령의 연준 이사 해임 권한은 ‘재직 중 중대 비위’로 한정된다. 반대로 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손을 들어줄 경우, 연준 인사권은 사실상 정치적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 이런 불확실성은 달러·채권·주식 등 글로벌 자산 가격에 구조적 변동성을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 판결은 단순한 인사 분쟁을 넘어 ‘통화정책의 민주적 정당성 vs. 정치적 독립성’이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112년간 유지돼 온 연준의 구조가 어떠한 방향으로든 조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시장과 학계가 보내는 관심은 사상 유례없이 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