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발 — 미국 하원이 9,000억 달러(약 1,230조 원)에 달하는 국방예산을 승인하며 또다시 ‘문화 전쟁’ 이슈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
2025년 9월 11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 하원은 이날(현지시간) 회기에서 2025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NDAA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을 찬성 231표, 반대 196표로 가결했다. 이는 전년과 비슷한 규모의 예산 편성임에도 불구하고 공화·민주 양당 간 뚜렷한 의견 대립을 재확인한 표결이었다.
NDAA는 미 국방부의 예산·정책·조달 구조를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연례 국방 청사진’으로, 법안이 통과돼야 예산이 실제 집행된다. 특히 미 의회는 군 인력 급여·무기체계 현대화·동맹국 지원 등 광범위한 항목을 이 법을 통해 조정할 수 있다.
표결 결과와 주요 쟁점
표결에서 모든 공화당 의원 중 단 4명을 제외한 대다수가 법안에 찬성했으며, 민주당 의원은 17명만 찬성하고 나머지는 반대했다.
워싱턴주 출신 민주당 중진 애덤 스미스(Adam Smith) 하원 군사위원회 민주당 간사는 “
공화당이 안보보다 정치적 이득에 집중했다”며 반대표를 던졌다.
그가 문제 삼은 부분은 ‘문화 전쟁’으로 불리는 사회적 이슈다. 가장 논란이 된 수정안은 국방부 건강보험(트라이케어)이 성전환 관련 의료 행위를 지원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반면 마이크 로저스(Mike Rogers) 군사위원회 공화당 위원장은 “이번 법안은 군 현대화·장병 지원·억지력 회복을 위한 결정적 한 걸음”이라며 통과를 환영했다.
세부 예산·정책 내용
이번 법안은 장병 보수 3.8% 인상, 무기 획득 절차 단축, 인공지능(AI) 연구 확대 등을 담았다. 특히 조달 시스템 개편으로 행정 승인 기간을 크게 줄여 신기술 배치를 가속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또한, 회의에서는 우크라이나·대만 지원 예산을 차단하려는 수정안이 제출됐으나 결국 부결됐다. 미국의 전략적 우방 지원 정책은 유지되는 셈이다.
상원과의 조정 전망
현재 상원은 하원안보다 320억 달러 많은 약 9,320억 달러 규모의 별도 안을 심의 중이다. 절차상 두 법안은 하원·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조정된 뒤 양원 본회의 의결을 거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에게 송부된다. 대통령이 서명하면 법률이 되지만, 거부권 행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에피스틴 서류 공개 시도 무산
같은 날 상원에서는 민주당 척 슈머(Chuck Schumer) 원내대표가 제프리 에피스틴(Jeffrey Epstein) 사건 관련 기밀 문서 공개를 강제하는 수정안을 NDAA에 포함시키려 했으나, 공화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2019년 수감 중 자살한 에피스틴은 트럼프 대통령과 과거 친분이 있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파장이 있었다.
알아두면 좋은 용어 해설
NDAA : 미 의회가 매년 통과시키는 국방예산 일괄법으로, 군사 전략·인력·조달·외교정책까지 규정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다.
트라이케어(TRICARE) : 현역·예비역·퇴역 미군 및 가족에게 제공되는 국방부 건강보험 체계다. 성전환 의료 지원은 미국 내에서도 첨예한 사회·정치적 논쟁 거리다.
조달 시스템 개편 : 군이 새로운 무기·기술을 도입할 때 필요한 행정절차를 줄여 기동성·효율성을 높인다는 취지다.
전망 및 분석
전문가들은 “상원 안이 하원보다 규모가 크지만, 공화당 주도의 하원이 ‘사회적 보수 노선’을 강경히 고수하면 최종 협상에서 문화 전쟁 조항이 핵심 변수로 부각될 것”이라고 관측한다. 만약 상원이 해당 조항들을 삭제하고 타협안을 내놓을 경우, 하원 강경파가 이를 수용할지 불투명하다.
또한 2025년 대선을 앞둔 미국 정치권은 우크라이나·대만 원조, 국방비 증액, LGBTQ+ 권리 같은 이슈로 표심 결집을 노리고 있다. 이는 군사·외교 정책을 넘어 글로벌 금융시장에도 ‘지정학적 프리미엄’을 형성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번 하원 통과는 단순 예산 승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미국 국내 정치가 안보 정책에 직결되고, 동맹과 경쟁국이 이를 주시한다는 점에서 국제사회 전반에 파급효과가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