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텍사스 북부 연방법원의 리드 오코너(Reed O’Connor) 판사가 트럼프 행정부 시기의 미 법무부가 낸 보잉(Boeing) 형사사건 기소 취하 요청을 승인했다. 이로써 보잉은 2018~2019년 737 MAX 여객기 참사와 관련된 형사 사기 공모 혐의 기소를 피하게 됐다. 다만 오코너 판사는 정부의 판단이 공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강한 유감을 표했다. 두 차례 사고로 346명이 사망했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의 파장은 크다.
2025년 11월 7일,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오코너 판사는 바이든 행정부가 주도해왔고 초기에는 보잉의 유죄 인정에 이르렀던 사건을 취하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한다는 법무부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판사는 정부가 보잉과 합의를 체결하기로 한 검찰 재량을 법원이 거부할 권한이 없다고 밝히며, 결과적으로 기소 취하를 승인했다.
오코너 판사는 2023년에 이미 “보잉의 범죄는 미국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기업 범죄로 적절히 평가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이번에도 정부 합의가 “항공 대중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필요한 책임성 확보에 실패한다”고 꾸짖었지만, “법원이 그 합의를 거부할 권한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보잉은 성명을 통해 미 법무부와의 합의에 따른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회사는 “우리는 안전, 품질, 규정준수(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을 강화하기 위해 회사 차원에서 기울여온 중대한 노력을 앞으로도 지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 법무부는 판사의 비판을 일축했다. 대변인은 “장기 소송으로 끌고 가기보다 이번 합의는 피해자들에게 최종성을 제공하고, 보잉이 지금 당장 행동하도록 만든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해결이 가장 정의로운 결과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보잉, 유죄 인정 합의에서 후퇴한 배경
보잉은 지난해 인도네시아와 에티오피아에서 각각 2018년과 2019년에 발생한 737 MAX 치명적 추락 사고 이후, 형사 사기 공모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기로 합의했었다. 그러나 합의 최종화는 지연됐다. 보수 성향 사안에서 유리한 판결 전력이 있는 오코너 판사가 바이든 행정부가 제시한 조건 중 하나에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해당 조건은 보잉을 감사할 독립 모니터(independent monitor)를 선정할 때 법무부가 자신의 “다양성과 포용(Commitment to Diversity and Inclusion)” 원칙을 준수한다는 조항이었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뒤, 법무부는 5월에 입장을 선회해 보잉의 유죄 인정 요구를 철회했다. 형사 유죄 인정은 미 국방부(DoD)와 미 항공우주국(NASA) 등과의 고수익 정부 계약 자격에 잠재적 제약을 초래할 수 있었지만, 정부 기관이 이를 면제할 가능성은 열려 있었다.
9월, 오코너 판사는 합의에 대한 이의 제기를 검토하기 위해 3시간에 걸친 심리를 열었다. 그는 3년간 독립 모니터 감독을 요구하던 기존 조건이 삭제되고, 그 대신 보잉이 선정하는 규정준수(컴플라이언스) 컨설턴트를 고용하도록 한 변경에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그는 2018년과 2019년 사고로 희생된 일부 유가족들의 격한 반대를 직접 청취했다. 유가족 측 변호인은 이번 결정에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오코너 판사는 “보잉은 기소를 정당화할 만큼의 범죄를 저질렀고, 연기된 기소 합의(DPA) 기간 동안 스스로 사기적 행태를 시정하는 데 실패했다. 이는 유죄 인정과 독립 모니터 부과를 정당화한다. 그런데 이제 보잉은 자신들이 직접 선정한 컨설턴트를 통해 그 위험한 조직 문화를 고치겠다고 한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이번 합의는 항공 대중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필요한 책임성 확보에 실패한다”는 유가족들의 주장이 옳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반대로 보잉이 개선을 이뤄왔고 연방항공청(FAA)이 강화된 감독을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잉과 정부는 비기소 합의(non-prosecution agreement)에 비춰 법원이 사건을 기각할 수밖에 없었다고도 강조했다.
합의 주요 조건과 추가 제재
합의에 따라 보잉은 추락 피해자 기금에 4억4,450만 달러를 추가로 납부하기로 했다. 이 금액은 두 차례 737 MAX 참사의 각 피해자에게 균등 배분된다. 또한 보잉은 2억4,360만 달러의 새로운 벌금을 부담하고, 규정준수·안전·품질 프로그램 강화를 위해 4억5,500만 달러 이상을 투입하기로 합의했다.
9월, FAA는 일련의 안전 규정 위반에 대해 보잉에 31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할 것을 제안했다. 여기에는 2024년 1월 알래스카항공 737 MAX 9 기종의 공중 비상사태와 연관된 조치, 그리고 안전 담당자들의 독립성을 침해한 행위가 포함됐다.
용어 설명: 쟁점 이해를 위한 핵심 개념
비기소 합의(Non-Prosecution Agreement): 검찰이 특정 조건 이행을 전제로 기소를 유예하거나 하지 않기로 약속하는 합의 형태다. 조건 충족 시 피의자는 형사 재판을 피할 수 있다.
연기된 기소 합의(Deferred Prosecution Agreement, DPA): 일정 기간 동안 기업이 개선 조치를 이행하는 조건으로 기소를 유예하고, 조건 불이행 시 기소가 재개될 수 있는 합의다.
독립 모니터(Independent Monitor): 법원·검찰 합의에 따라 외부의 독립 전문가가 기업의 시정 조치 이행과 내부통제를 감시·감사하는 제도다. 이번 사건에서 논란의 핵심이었다.
규정준수 컨설턴트(Compliance Consultant): 기업이 자체적으로 선정·고용하는 외부 자문가로, 컴플라이언스 체계 개선을 지원한다. 감시 권한과 독립성 측면에서 독립 모니터보다 약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다양성과 포용(Commitment to Diversity and Inclusion): 인사·선발 과정에서 다양한 배경과 포용 원칙을 반영하려는 정책적 약속을 뜻한다. 이번 사건에서는 독립 모니터 선정 시 이를 준수하겠다는 법무부 조항이 법원 문제 제기의 단초가 됐다.
의미와 파장: 검찰 재량, 책임성, 그리고 안전
이번 결정의 핵심은 검찰 재량과 법원의 심사 한계다. 오코너 판사는 정부 합의를 공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면서도, 법원이 이를 거부할 권한이 제한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는 기업 형사사건에서의 책임성 확보와 검찰 재량 존중 사이의 구조적 긴장을 드러낸다.
또한 독립 모니터 대신 규정준수 컨설턴트로 대체한 점은 감독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쟁을 키웠다. 유가족들은 책임성의 충분성에 의문을 제기했고, 정부는 FAA의 강화된 감독과 보잉의 개선을 근거로 합의의 정당성을 방어했다. 합의가 규정한 피해자 기금의 균등 배분, 추가 벌금, 대규모 내부개선 투자는 재정적 책임과 제도적 보완을 병행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특히 보잉의 형사 유죄 인정 철회는 정부 조달 자격과 직결될 수 있는 규정 리스크를 감안한 결과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다만 기사에 따르면 정부 기관의 면제 권한이 언급되는 등, 제약은 정책 판단에 따라 달라질 여지가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FAA의 별도 제재 제안(310만 달러)과 알래스카항공 737 MAX 9 공중 비상사태 관련 사안은 안전 문화와 품질 관리가 여전히 시장과 규제 당국의 최우선 관찰 대상임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법원은 보잉 형사사건 기소 취하를 승인하여 형사 재판은 종결 국면에 들어간다. 그러나 유가족의 항소 예고, FAA의 감독과 제재, 그리고 합의 이행의 실효성은 향후에도 안전성과 책임성을 둘러싼 논의를 지속시킬 전망이다. 정부는 이번 합의가 피해자 보호와 즉각적 개선을 위한 가장 정의로운 해결이라고 주장하고, 보잉은 안전·품질·컴플라이언스 강화를 공언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