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뉴욕발 —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미국 노동통계국(BLS) 국장 에리카 맥엔타퍼를 전격 해임하면서, 세계 최대 경제의 건강 상태를 가늠할 핵심 통계에 대한 신뢰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2025년 8월 5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발표된 부진한 고용지표와 대폭 하향 수정된 이전 수치를 이유로, “조작된 숫자”라는 근거 없는 주장을 펼치며 맥엔타퍼 국장을 경질했다. 시장·정책 결정권자·투자자들은 그가 제시할 후임 인선이 연방 통계 시스템의 독립성을 지킬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다른 국가 사례가 보여주듯 통계 신뢰는 잃기 쉽지만 회복은 어렵다. 전문가들은 이번 인사가 불러온 불확실성이 결국 금리·고용·물가 전망 자체를 흐릿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아메리칸 엔터프라이즈 연구소(AEI)의 마이클 스트레인 정책연구국장은 “기관 수장 자리에 아첨꾼이 앉아 있고 숫자가 가짜라는 우려가 현실이 되면, 이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1) 왜 지금 ‘데이터’가 중요한가
현재 중앙은행은 과거처럼 수개월 뒤 금리 궤적을 미리 제시하기보다 ‘데이터 의존적(data-dependent)’이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그러나 데이터 수집 자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재정 부담이 커진 정부들은 통계 부서 예산을 삭감했고, 주요 조사 방식이던 유선전화 설문은 휴대전화 보급 확산으로 표본 확보가 쉽지 않다.
여기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맥엔타퍼를 “바이든 정치적 임명자”라고 규정하며 정파적 편향 의혹까지 끌어들였다. 이는 민주주의 견제·균형에 의심이 제기되는 국가들에서 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2) 세계 각국 ‘통계 불신’의 교훈
“신뢰를 잃은 뒤 회복까지는 수년이 걸린다.” — 국제 통계학계 공통의 경고
• 아르헨티나: 2024년 한 자릿수 인플레이션을 발표했지만, 2000~2010년대 IMF로부터 제재를 받은 ‘물가 은폐’의 기억이 여전히 투자자 심리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 터키: 통계청(TUIK) 수장 교체가 2019년 이후 네 차례나 이어지면서 야권은 “정치적 해임”이라고 비판했고, 해외 채권투자자는 ‘숫자 불신’으로 등을 돌렸다.
• 그리스: 2000년대 국가채무 위기를 촉발한 허위 재정통계 이후, 2016년 통계청(ELSTAT)을 전면 개혁하고 국제 전문가 패널을 도입해 신뢰 회복에 사력을 다했다.
• 중국: 원총리 리커창조차 2007년 “GDP는 인위적(man-made)”이라고 말한 뒤, 2024년 학생을 제외한 새로운 청년실업률 지표를 도입했지만 해외 투자자는 여전히 의문을 제기한다.
이처럼 한 번 흔들린 신뢰는 국제통화기금(IMF)·국제통계기구 등 외부 제재와 시간이 결합해야 서서히 복원된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줄리언 에반스-프리차드는 “중국의 경우 ‘방법론 변화’라는 합리적 이유에도 과거 전례가 불신을 키웠다”고 분석했다.
3) ‘스포일스 시스템(spoils system)’은 무엇인가
‘스포일스 시스템’은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정부 보직을 지지자들에게 나눠주는 관행을 뜻한다. 사실상 정치 충성도가 인사 기준이 되는 셈이다. 엔리코 조반니니 전 OECD 통계국장은 “다른 선진국은 장기·고정 임기를 부여해 새 정부가 바로 교체하지 못한다”며, 미국은 이 관행이 비교적 활발하다고 지적했다.
국제통계학회(ISI)는 5일 늦은 밤 성명을 내고 “트럼프 전 대통령의 해임 조치는 유엔 통계 원칙을 위반한다”며, 미 행정부에 통계 독립성 복원을 촉구했다. 현재 윌리엄 위아트로스키 부국장이 BLS 직무대행을 맡고 있으며, 차기 국장이 임명될 때까지 조직을 이끈다.
4) ‘하드 데이터’ vs ‘소프트 데이터’
신뢰성 훼손이 장기화될 경우, 시장은 공식 통계 대신 대체 지표에 의존할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화물 운송·전력 소비 등 18개 민간 지표를 종합한 ‘중국 활동지수(China Activity Proxy)’를 발표한다.
소프트 데이터(soft data)는 기업·소비자를 대상으로 “경기가 어떻습니까?”와 같이 심리를 묻는 정성적 지표다. MFS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의 수석이코노미스트 에릭 와이즈먼은 “구체적 생산량·근로시간 같은 수치를 묻는 게 아니기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맥엔타퍼 해임으로 불확실성이 커진다면 애널리스트들이 비공식·민간 데이터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5)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
1) 후임 BLS 국장 인선 — 트럼프 전 대통령은 “수일 내 지명”을 예고했다.
2) 행정명령(Executive Order) 요구 —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연방 채용 시 ‘미국적 가치에 헌신’한 인재를 우대하겠다는 행정명령을 추진 중이다. 웨스트미시간 W.E. 업존 연구소의 애런 소저너 선임연구원은 “이 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경제통계 기관 직원 상당수가 정무직화되어 통계 중립성이 훼손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시험대에 오른 것은 단순히 한 명의 국장 자리가 아니라, 미국 연방 통계 시스템 전체의 독립성과 신뢰다. 과연 그 균열이 더 벌어질지, 아니면 조기에 봉합될지는 향후 몇 달 내 내려질 인사·입법 결정에 달려 있다.
용어 설명 코너
• BLS(미국 노동통계국): 미국 노동부 산하 기관으로, 월 고용보고서·소비자물가지수(CPI) 등 핵심 지표를 산출한다.
• 하드 데이터: 실제 생산·판매·고용 등 계량화 가능한 수치.
• 소프트 데이터: 경기 전망·심리처럼 주관적 설문 기반 지표.
• 스포일스 시스템: 정권교체 시 공직을 지지 세력에게 배분하는 정치 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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