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증권거래위원회, 리플 소송 종결…1억2,500만 달러 벌금은 유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리플랩스(Ripple Labs)와의 오랜 법정 싸움에 마침표를 찍었다. SEC는 2020년 12월부터 제기해 온 ‘미등록 증권 판매’ 소송을 공식 철회했으나, 1억2,500만 달러(약 1,652억 원)에 달하는 벌금기관투자자 대상 XRP 판매 금지 명령(금지명령·injunction)은 그대로 유지되면서, 가상자산 업계 최대 규모 소송 중 하나가 사실상 ‘리플 부분 패소’로 귀결됐다.

2025년 8월 8일, 로이터(Reuters) 통신 보도에 따르면, SEC와 리플은 같은 날 맨해튼 연방법원(남부지방법원) 재판부에 항소 취하서를 공동 제출하며 분쟁을 일괄 정리했다. 이로써 양측은 애널리사 토레스(Analisa Torres) 판사가 2024년 8월 확정한 벌금 1억2,500만 달러와 금지명령을 수용하기로 했고, 사건번호 ‘20-10832’로 기록된 3년 8개월여의 소송전은 막을 내렸다.

토레스 판사는 종전 판결문에서공익 차원에서 제재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SEC와 리플이 요청했던 벌금 감경(5,000만 달러로 축소)과 금지명령 해제 요청을 “예외적 사정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일축한 바 있다.


XRP, 시가총액 3위 가상자산으로서의 위상

가상자산 시황 서비스 코인마켓캡(CoinMarketCap)에 따르면, XRP는 비트코인·이더리움에 이어 시가총액 3위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2020년 12월 SEC가 “증권으로 분류되는 XRP를 등록 없이 판매했다”는 이유로 소송에 나서면서, XRP 가격과 업계 투자 심리는 장기간 불확실성에 시달려 왔다.

SEC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1기 말기에 고소장을 제출했고, 2023년 7월 토레스 판사는 혼합적 판결을 내렸다. 판결 요지는 “기관투자자 대상 판매는 증권법 적용, 일반 거래소 판매는 비증권”이라는 이원적 판단이었다. 이에 따라 2024년 8월 벌금이 확정됐고, 기관투자자 대상 신규 판매가 금지됐다.

이후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 2024년 말, SEC 내부 기류가 ‘가상자산 친화’로 급변하면서 SEC는 일련의 가상자산 집행 사건에서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리플뿐만 아니라 바이낸스·코인베이스·크라켄 등 주요 거래소 대상 민사소송도 철회됐다는 사실이 같은 맥락이다.


SEC·리플, 법적 공방의 쟁점 정리

SEC(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1934년 증권거래법에 근거한 독립 규제기관으로, 증권 등록·공시·시장감시 권한을 갖는다. 리플랩스는 2012년 설립된 블록체인 결제 스타트업으로, 자사 토큰인 XRP를 통해 국제 송금을 빠르고 저렴하게 처리하는 크로스보더 결제 솔루션을 제공한다. 문제의 핵심은 XRP가 증권인지, 상품(토큰)인지였다.

만약 XRP가 증권으로 분류되면, 등록 의무, 투자자 보호 규정, 발행·유통 제한이 적용돼 리플은 과거 매출 상당 부분을 반환하거나 추가 벌금을 부담해야 한다. 토레스 판사는 기관투자자 판매분만 증권으로 보고 공개시장(거래소) 분류는 상품으로 인정하며, 전례 없는 ‘절반의 증권’ 판결을 내렸다. 이는 다른 가상자산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선도 판례로 평가된다.


주요 인물 발언 및 향후 전망

리플 최고법률책임자(CLO) 스튜어트 알데로티(Stuart Alderoty)는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이번 항소 취하로 사건이 완전히 종결됐다”고 언급하며, “가상자산 산업이 명확한 규제 프레임워크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SEC는 보도자료에서 “금지명령과 벌금은 그대로 유효하다”고 재차 강조하며, 집행 일관성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SEC가 합의는 했지만 제재는 고수했다는 점에서, 향후 다른 프로젝트 역시 기관투자자 대상 토큰 판매 시 증권법 검토가 필수”라고 분석한다. 동시에 SEC가 잇따라 소송을 철회한 배경에는 규제 불확실성으로 인한 시장 위축, 국제 경쟁력 저하 우려가 자리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기자 해설: 남은 과제와 시장 파급 효과

이번 합의는 표면적으로는 ‘양측 종결’이지만, 리플에게는 1억 달러 이상 벌금이 확정됐다는 점에서 상당한 재무적 부담이다. 다만 공개시장 판매가 증권이 아니라는 법원 판단이 유효해진 만큼, XRP의 거래 유동성과 글로벌 사용처 확대에는 긍정적이다. SEC 입장에서도 법원의 “부분 패소” 리스크를 확대하지 않은 채, 핵심 제재를 지켜냈다는 점에서 절충안에 가까운 결론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가상자산 업계는 토큰 구조와 판매 방식 설계 시 ‘기관투자자-일반 투자자’ 이원적 분석이 불가피해졌다. 또한 의회에서 가상자산 종합 규제법이 입법 동력을 얻을지, 혹은 증권법 해석 변화로 대응할지 여부도 관전 포인트다. 리플 사례는 ‘규제·사법 리스크가 가격·사업 모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로 남게 됐다.

한편, 기관 투자자 전용 토큰 판매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고, 투자계약(Investment Contract) 성격을 띨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SEC가 향후에도 예의주시할 분야다. 불확실성이 일정 부분 해소됐다고는 하지만, 향후 집행 방향과 법원 판례가 완전히 일치할지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종합적으로, 이번 사건은 미국 내 가상자산 규제 환경이 여전히 ‘과도기’임을 시사한다. 투자자와 기업 모두 법적 리스크 관리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국제 거래소·프로젝트는 다중 관할 규제를 동시 충족할 전략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