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증권거래위원장 “기술적 위반은 사전 통보 후 조치”…공격적 집행 기조서 선회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기업의 경미한 규정 위반에 대해 즉각적인 제재 대신 사전 통보 절차를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이는 기존의 ‘선(先)집행·후(後)검토’ 방식에서 벗어나 기업의 예측 가능성과 절차적 정당성(due process)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2025년 9월 15일, 파이낸셜 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폴 앳킨스(Paul Atkins) SEC 위원장은 인터뷰에서 “기업을 문 두드리기도 전에 부수는(bashing down their door) 관행을 지양하겠다”고 밝혔다. 앳킨스 위원장은 “SEC에 대한 정당한 비판 가운데 상당수가 선제 공격 먼저, 질문은 나중이라는 인상에서 비롯됐다”고 말하며, 사전 고지 제도를 통해 시장 참여자의 신뢰 회복을 꾀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SEC의 새 집행 철학규제 예측 가능성, 전례 준수, 법치주의를 핵심 가치로 삼고 있다. 앳킨스 위원장은 “절차적 통보와 명확한 기준이 없다면 시장은 위축되고 혁신은 늦어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술적·절차적 위반 사항에 대해 기업이 자진 시정할 수 있는 기회를 준 뒤, 고의성·중대성이 확인될 경우에만 강력 제재에 나서는 투트랙 방침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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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안건(Agenda) 변화도 예고됐다. 이달 초 SEC가 공개한 향후 수개월간의 규칙 제·개정 계획에는 암호화폐 규제 전면 개편과 월가가 과도한 규제라고 비판해 온 일부 규정의 완화가 포함됐다. 특히 암호화폐 부분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운 ‘크립토 프레지던트(crypto president)’ 기조와 궤를 같이한다.

“대다수 토큰(token)은 증권이 아니다. 우리는 투자자가 24시간 365일 블록체인 환경에서 주식·채권을 토큰화된 형태(synthetic securities)로 거래할 수 있도록 규칙을 개발하고자 한다.” — 폴 앳킨스 SEC 위원장

이번 입장은 조 바이든 전 대통령 행정부사기와 자금세탁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암호화폐 산업을 강경 규제했던 기조와 정반대다. 바이든 정부는 대부분의 가상자산을 증권으로 간주해 발행·거래 단계에서 광범위한 규제를 적용했다. 반면 앳킨스는 토큰과 증권의 법적 구분을 전제로 ‘혁신 촉진형 규제’를 표방하고 있다.

토큰(token)은 블록체인 상에서 거래되는 디지털 자산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스테이블코인·대체불가토큰(NFT) 등 다양한 형태가 포함된다. 블록체인이란 데이터를 ‘블록’ 단위로 묶어 체인처럼 연결·분산 저장하는 기술로, 변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한편 듀 프로세스(due process)적법절차 원칙을 뜻하는 법률 용어로, 행정·사법 기관이 국민의 권리를 제한할 때 반드시 따라야 하는 절차적 요건을 의미한다.

전문가 시각에서 보면, SEC의 이번 선회는 금융 혁신과 규제 간 균형이라는 난제를 풀기 위한 ‘정책 실험’으로 평가된다. 사전 고지(Notice) 체계를 강화하면 기업의 법적 불확실성이 줄어드는 반면, 의도적·반복적 위반에 대한 억지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또한 토큰이 증권인지 여부를 둘러싼 하위 테스트(Howey Test) 적용 방식이 달라질 경우, 향후 소송에서 법원의 판례가 엇갈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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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는 24시간 거래되는 토큰화 주식·채권이 현실화될 경우, 글로벌 금융 인프라에 미칠 파급효과를 주목하고 있다. 기존 증권결제시스템보다 속도·비용 측면에서 효율성이 개선될 수 있다는 기대가 큰 반면, 시스템 장애나 사이버 리스크에 대한 규제 공백이 발생할 우려도 지적된다.

결국 SEC가 제안한 사전 통보·토큰 친화적 규제는 미국 자본시장 규제 패러다임의 중대한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시행 과정에서 이해관계자 간 치열한 논쟁이 예상되지만, 명확한 가이드라인시장 참여자와의 소통이 뒷받침된다면 ‘신뢰 기반의 규제’라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향후 SEC의 세부 규정 발표와 의회·업계의 반응이 미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금융 규제 방향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