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이 사상 최장 기간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공화당 내 재정 매파(fiscal hawks)가 해법으로 전년도 수준의 지출을 가능한 한 오래 유지하는 방안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 접근법은 즉각적인 재량지출 감축은 아니나, 의원들이 공방을 벌이고 있는 연방 예산 7조 달러의 약 4분의 1 규모 항목에 추가 지출을 얹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출 동결에 가깝다.
2025년 11월 8일, 로이터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이 방안은 의회가 조속히 합의에 이를 가능성이 낮다는 현실 인식이 반영됐다는 관측도 낳고 있다. 분열이 심화된 현 의회 지형에서 ‘현상 유지’가 사실상의 최선이라는 소극적 타협이라는 평가다.
다만 이 구상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 하에서 상원과 하원 모두 다수당을 점한 공화당 내에서도 폭넓은 지지를 얻지는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는 민주당 소속 전임 대통령 조 바이든 아래에서 합의됐던 수준의 예산 규모를 사실상 유지하는 결과를 뜻하며, 국가부채 38조 달러에 매년 약 1조8천억 달러를 추가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한다.
공화당 하원 다수(219 대 213)의 핵심 강경파인 하원 프리덤 코커스는 정책 성명에서, 지속 결의안(Continuing Resolution, CR)으로 정부를 재개하되 ‘이상적’ 종료 시점을 2026년 11월 중간선거 이후로 제시했다. 이는 현 회계연도가 2026년 9월 30일 종료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보다 훨씬 나중까지 이어지는 장기 CR을 의미한다.
프리덤 코커스는 이 제안이
“2023년부터의 연방 재량지출 수준을 사실상 동결하고, 민주당과 ‘스와프’(워싱턴 기득권)가 예산을 잠식하는 포크 배럴과 로비스트 보상을 밀어붙이는 추가 시도를 차단할 것”
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그간 지출을 줄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CR에 반대해 온 이들의 기조 변화로도 읽힌다.
전략 변화의 배경과 보수진영의 계산
매튜 디커슨 경제정책혁신센터 예산국장은 “
과거 많은 보수파가 CR 지지에 주저해 왔다
”면서도, 2025년 3월 의회가 민주당의 표 지원을 받아 1년치 임시지출법안을 통과시킨 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감세·지출 법안을 공화당 단독 표결로 처리한 전례를 언급했다. 그는 이어 “
현재도 유사한 역학과 난제가 지속되고 있어, 장기 CR이 가장 책임 있는 타협
”이라고 덧붙였다.
론 존슨 상원의원(위스콘신)도 인터뷰에서 장기 CR이 “
유감스럽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
”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이러한 또 다른 1년치 CR 추진은 상원 다수당 대표 존 튠이 강조해온 정규 세출 절차(12개 세출법안의 개별 처리) 복원 약속과 상충한다. 이 정규 절차는 거의 30년 가까이 제때 완료된 적이 없다.
수전 콜린스 상원 세출위원장(메인)은 정부 재개를 위해 12월까지 효력이 지속되는 단기 임시지출법안을 우선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이는 광범위한 예산 합의를 위한 시간 벌기를 목적에 둔 접근이다. 다른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협상 시간을 더 확보하기 위해 내년 1월 중순을 시한으로 하는 시나리오를 선호하고 있다.
한편, 상원 세출위 민주당 간사인 패티 머레이 의원은 연례 CR을 “
권한 탈취
”라고 일축했다. 의회의 지출 통제권이 행정부로 넘어간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당은 9월 공화당 주도로 하원을 통과한, 11월 21일까지의 임시지출법안에 대해 상원에서 14차례 반대표를 던졌다. 이 법안은 9월 30일 회계연도 종료 이후에도 세출 절차를 이어가기 위한 단기 봉합책이었다.
민주당은 정부 재개 표결을 유보하며, 건강보험 보조금 관련 제도 보완과 함께 트럼프 행정부의 연방 공무원 해임 문제에 대해 상원이 어떻게 대응할지 등 쟁점 사안의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공화당 세출위원인 존 호번(노스다코타)은 “
우리가 세출(appropriating)을 통해 하는 일은 트럼프 대통령의 예산 구상과 그가 예산안에 담은 사안을 따르는 것
”이라며 장기 CR 비판론을 반박했다.
또 다른 쟁점도 있다. 임시지출법안의 연장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원조 삭감 ‘회수(rescission)’나, 정부 효율성 부처 구상에 따른 연방 공공 인력 구조 조정이 포함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여야가 각자 선호하는 항목을 겨냥한 추가 ‘회수’ 논쟁이 불붙을 소지가 커진다.
해석과 함의: ‘지출 동결’이 의미하는 것
지출 동결 중심의 장기 CR은 즉각적인 긴축을 피하면서도, 연방정부의 일상적 운영 지속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비용을 낮추는 선택지다. 그러나 이는 정책 우선순위의 재조정(신규 프로그램 확대, 목표 지출의 재배분 등)을 사실상 가로막고, 위원회 심사-수정-표결을 거치는 정규 예산 질서의 복원을 또다시 미루게 된다. 결과적으로, 의회의 예산 권한 약화와 행정부 재량 확대라는 부작용 논쟁이 커질 수밖에 없다.
또한, 기사에 제시된 대로 총부채 38조 달러 규모의 누증 경로 위에서 연 1조8천억 달러의 추가가 관성적으로 이어질 경우, 재정 지속가능성과 시장 신뢰 논쟁은 더 첨예해질 가능성이 크다. 중장기적으로는 이자 부담 확대, 정책 여력 축소와 같은 구조적 제약이 누적돼, 차기 경기 변동 국면에서의 정책 대응성을 제약할 수 있다. 그럼에도 셧다운 장기화로 인한 경제·행정 혼란을 차단한다는 실익을 중시하는 행정부·의회 보수파의 계산법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정치 일정 또한 변수다. 2026년 중간선거 이후까지 유효한 CR은 선거 리스크를 회피하고 불확실성을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동시에 선거를 경계로 한 정책 빈칸을 확대할 수 있다. 이는 세출위원회의 조정·감시 기능을 약화시키고, 우선순위 없는 지출의 관성을 키울 개연성이 있다.
용어 해설: 알면 보이는 예산·절차
지속 결의안(Continuing Resolution, CR)용어: 기존 회계연도 수준의 지출을 한시적으로 연장해 정부 셧다운을 방지하는 임시 법안이다. 새 세출법안이 완결되기 전까지 정부 운영의 연속성을 보장한다. 단, 신규 프로그램이나 우선순위 변경 반영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정규 세출(Appropriations) 절차제도: 12개 분야별 세출법안을 위원회 심사-전체 표결로 처리하는 통상 절차다. 제때 처리되면 정책 정합성과 책임성이 높아지지만, 정치적 교착 시 지연과 교섭 비용이 급증한다.
임시지출법안(Stopgap funding)관행: CR과 유사하게 단기 자금을 투입해 정부 기능을 유지한다. 보통 특정 날짜(예: 11월 21일)까지 효력이 있으며, 이후 추가 협상이 필요하다.
회수(Rescission) 감액예산: 이미 배정된 예산의 일부를 취소해 지출을 삭감하는 조치다. 대외원조 등 특정 항목을 겨냥해 추진될 경우 정치적 공방이 커지기 쉽다.
전망
현 시점에서 공화당 내 장기 CR 선호와 정규 세출 복원 약속 간의 괴리는 여전히 크다. 콜린스·존슨 등 공화당 중진의 현실론과 머레이 등 민주당 지도부의 권한 약화 우려가 팽팽히 맞선다. 단기적으로는 12월 혹은 내년 1월 중순까지의 한시 봉합이 유력하지만, 2026년 이후까지 이어지는 동결이라는 해법이 최종 선택될지는 향후 세출·조세 패키지 협상의 진전에 달렸다.
결국, 이번 셧다운 공방의 핵심은 정책 선택이 아니라 절차와 권한의 문제로 수렴하고 있다. 누구의 손에 지출의 레버를 쥐어줄 것인가, 그리고 어떤 시간표로 이를 행사할 것인가. 시장과 유권자는 그 답을 기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