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4 연방순회항소법원이 메릴랜드주가 2021년 제정한 ‘디지털 광고세(Digital Advertising Gross Revenues Tax)’ 가운데, 기업이 세금 부담을 가격에 반영하면서 해당 사실을 청구서에 표기하지 못하도록 금지한 조항을 위헌으로 판결했다.
2025년 8월 15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3인 합의부로 구성된 제4 순회항소법원은 만장일치 의견을 통해 해당 조항이 미국 헌법 수정 제1조(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은 미국 상공회의소(Chamber of Commerce), NetChoice, Computer & Communications Industry Association(이하 CCIA) 등 세 개 무역 단체가 제기했으며, 피고는 메릴랜드주 브룩 리어먼(Comptroller Brooke Lierman) 주 감사원장이었다. 1심을 맡은 리디아 케이 그릭스비(Lydia Kay Griggsby) 메릴랜드 연방지방법원 판사는 원고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항소심은 이를 뒤집고 원고 승소로 결론지었다.
디지털 광고세와 ‘전가 금지’ 조항의 배경
메릴랜드주는 2021년 미국 최초로 디지털 광고 매출에 과세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아마존, 메타(페이스북), 알파벳(구글)처럼 전 세계 매출 규모가 큰 다국적 기업을 주요 과세 대상(과세 기준: 주 내 디지털 광고 매출 100만 달러 이상)으로 삼았으며, 글로벌 총매출액 규모에 따라 2.5%에서 10%까지 *차등 세율을 부과했다. 주 의회는 해당 세제가 연간 2억 5,000만 달러의 세수를 확보할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가 된 것은 세법 부칙에 포함된 ‘비용 전가 금지(pass-through prohibition)’ 조항이다. 해당 조항은 기업이 세금 부담을 고객에게 별도 수수료·할증료·라인 아이템(line-item) 형태로 청구하는 것을 금지했으며, 나아가 세금 인상분이 가격 변동의 원인이라는 설명 자체도 막았다. 소송을 제기한 단체들은 “정치적 책임을 피하려는 검열(censorship)”이라며 반발했다.
“소비자에게 세금 명세를 숨기는 것은 결국 입법부가 책임을 회피하려는 시도다.”
— 파울 태스케(Paul Taske) NetChoice 공동소장
항소심 판단: 표현의 자유 침해
판결문을 작성한 줄리어스 리처드슨(Julius Richardson) 순회판사는 “조항이 기업으로 하여금 ‘침묵의 의무’를 지도록 강제해, 비판적 언사를 차단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소비자가 반드시 확인하는 청구서(invoice)에서 세금 정보를 제거한다는 것은 기업의 표현을 봉쇄하는 것”이라며, “‘유권자와 마찰을 피하려는 목적’은 어떤 경우에도 연설 제한의 정당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명시했다.
리처드슨 판사는 또 “250년 전 독립혁명 당시에도, 세금을 둘러싼 정부 비판은 민주사회에서 핵심적 담론이었다”고 언급하며, 헌법 정신과 판례에 비춰 조항이 ‘명백히(facially) 위헌’이라고 규정했다.
향후 절차와 파급 효과
재판부는 사건을 다시 메릴랜드 지방법원으로 돌려보내, 부적합 조항 폐기 및 적절한 구제책(remedy)을 결정하도록 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이 다른 주(州)의 유사 입법에도 ‘표현의 자유’ 관점에서 제동을 걸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는다. 실제로 코네티컷·매사추세츠·워싱턴 D.C. 등도 디지털 광고세를 검토 혹은 추진 중이어서, 이번 판결이 선례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법률·조세 전문가 분석전문가 의견에 따르면, ‘전가 금지’ 조항은 세금 투명성(tax transparency) 원칙을 훼손하며, 궁극적으로 과세 대상 기업뿐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가격 결정 구조를 왜곡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따라서 본안 법리뿐 아니라 시장 효율성과 소비자 알권리 측면에서도 위헌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한편, 메릴랜드주를 대리하는 앤서니 브라운(Anthony Brown) 주 법무장관실과 브룩 리어먼 주 감사원장 측은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주 정부가 연방대법원 상고를 택할 경우, 최종 판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용어·배경 설명
디지털 광고세(Digital Advertising Tax)는 인터넷·모바일 등 온라인 플랫폼에서 발생한 광고 매출에 과세하는 제도다. 전통적 인쇄 광고세와 달리 데이터 기반 타깃 광고 수익을 과세 대상으로 삼아 ‘빅테크’ 기업의 조세 회피를 방지하려는 취지로 도입되었다.
표현의 자유(First Amendment)는 미국 헌법 수정 제1조로, 언론·출판·집회·청원의 자유를 보장한다. 미국 사법부는 정부 비판 권리를 헌법적 핵심 가치로 간주해 왔으며, 조세 정책 관련 홍보나 가격 고지 역시 상업적 표현(Commercial Speech)에 포함된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패스 스루 금지(pass-through prohibition)는 기업이 세금 또는 비용 상승분을 별도 항목으로 청구서에 표기하지 못하도록 막는 규제다. 이는 소비자 보호를 명목으로 도입되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비판을 차단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위험이 있다.
전문가 전망
시장조사기관 eMarketer는 2025년 미국 디지털 광고 시장 규모를 2,200억 달러로 추정한다. 이번 판결로 세부담 전가 방식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줄어들면, 메타·알파벳 등 빅테크 주가에 단기적 긍정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다만, 환경·보건·개인정보 보호 등 ‘규제 당위성’이 강한 분야에서는 향후 입법부가 세부적인 고지 의무·표시 규정을 새롭게 설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투명성과 규제 효과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정책 설계 능력이 입법 기관의 과제로 부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