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판사, 기슬레인 맥스웰 대배심 녹취록 공개 요청 기각

뉴욕 맨해튼 연방지방법원이 기밀 대배심 기록(grand jury transcripts)의 공개를 요구한 미 법무부(Department of Justice)의 요청을 공식적으로 기각했다. 이번 결정은 제프리 엡스타인(Jeffrey Epstein) 사건과 연루돼 유죄 판결을 받은 기슬레인 맥스웰(Ghislaine Maxwell)에 대한 추가적인 수사 자료를 둘러싼 논란 속에서 내려졌다.

2025년 8월 11일, CN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법무부는 맥스웰과 엡스타인 관련 형사 수사 과정에서 작성된 대배심 증언 녹취록을 공개해 달라고 지난달 법원에 요청했으나, 담당 판사는 “대배심 절차의 비밀성과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권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배심(grand jury)은 일반 재판 배심원단과 달리, 검찰이 제시한 증거를 바탕으로 정식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미국 형사사법제도의 예비 절차다. 이 단계에서 증인과 피의자는 선서 하에 비공개로 증언하며, 녹취록은 법률상 극도로 제한된 범위에서만 공개된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대배심 제도의 전통적 비밀 원칙을 재확인한 셈이다.

법무부는 “트럼프 행정부가 엡스타인 수사 기록을 대중에 충분히 공개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투명성 강화를 명분으로 기밀 해제를 추진해 왔다. 그러나 법원은 이번 사안을 사법 절차의 독립성증언자 보호가 우선되어야 할 문제로 판단했다.

Ghislaine Maxwell 사진

“대배심은 외부 압력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사실관계를 판단해야 한다. 공개 범위를 무리하게 확대할 경우, 향후 수사 협조를 꺼리는 분위기가 조성돼 형사 정의 실현에 장애가 될 수 있다”

고 판사는 판결문에서 강조했다.

이번 결정으로 엡스타인–맥스웰 사건과 관련된 추가 증언·증거의 구체적 내용은 당분간 베일에 싸이게 됐다. 특히 맥스웰이 미성년자 인신매매 및 성 착취 혐의로 이미 유죄 판결을 받은 상황에서, 향후 민사 소송이나 잠재적인 공범 기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법적·사회적 의미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1) 대배심 제도의 보안 장치 확립, 2) 정부 기관 간 권한 분쟁, 3) 성범죄 수사에서 피해자·증인의 2차 피해 최소화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선례가 될 것으로 본다.

한편, 증언 녹취록 공개를 추진해 온 시민단체들은 “공익적 가치를 무시한 결정”이라고 반발하며 항소 가능성을 시사했다. 반면 일부 법조계 인사는 “무분별한 공개는 피해자 신원 노출, 추가 가십화 등의 부작용만 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배심 녹취록’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인 형사 재판에서는 증거·증언이 공개되는 반면, 대배심 단계에서 수집된 자료는 ‘연방 형사소송규칙 6(e)’에 따라 원칙적으로 비공개다. 이는 잠재적 피의자의 명예·사생활 보호, 증인의 안전, 그리고 향후 수사에 대한 국가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예외적으로 언론의 ‘중대한 공익성’ 주장이 받아들여져 일부 공개된 사례가 있으나, 맥스웰 사건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Jeffrey Epstein 관련 이미지

향후 전망
이번 판결로 법무부가 선택할 수 있는 대응책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항소심(제2순회항소법원) 제기. 둘째, 대배심의 추가 승인을 받아 부분 공개를 재신청하는 방안이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항소심에서도 기밀성 보호 원칙이 우선될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전문가 분석
법조 윤리 연구소(Law Ethics Institute)의 A 교수는 “이번 결정은 대배심 기록의 ‘예외적 공개’ 기준을 다시 한 번 엄격히 설정한 것으로, 향후 정치적으로 민감한 수사에서 ‘투명성과 기밀성’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지 중요한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B 변호사는 “피해자 보호와 국민 알 권리의 충돌 구도를 해소하기 위해, 의회 차원의 법 개정 논의가 가속화될 수 있다”며 입법적 대응 필요성을 제기했다.


용어 풀이
1 대배심(grand jury): 미국 연방법 및 일부 주법에서 채택된 제도로, 16~23명의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다. 기소 여부 판단이 주 목적이며, 검찰 측만 출석해 증거를 제시하고 변호인 참여권은 제한적이다.
2 녹취록 공개 요청(unsealing): 법원이 봉인해 둔 서류를 공개하는 절차다. ‘seal’은 봉인을 뜻하며, ‘unseal’은 이를 해제한다는 의미다.


기슬레인 맥스웰 사건 일지 요약
• 2019년 8월: 제프리 엡스타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교정센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발표.
• 2020년 7월: 맥스웰, 미성년자 성매매·인신매매 공모 혐의로 체포.
• 2022년 6월: 뉴욕 남부연방법원, 맥스웰에게 징역 20년 선고.
• 2025년 8월 11일: 대배심 녹취록 공개 요청 기각.

이번 판결이 엡스타인 네트워크 전모 규명에 어느 정도 제동을 걸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법원이 대배심 제도의 근간을 재차 확인함으로써 미국 사법사에서 ‘공개 vs 비공개’를 둘러싼 논쟁이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