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법원, 트럼프 행정부의 STEM 다양성 연구비 삭감 중단 요구 기각

워싱턴 D.C. = 로이터 — 미 연방법원이 민주당 주(州)들이 제기한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 다양성 연구비’ 복원 청구를 기각했다.

2025년 8월 1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존 크로넌 뉴욕 남부 연방지방법원 판사는 16개 민주당 주 법무장관이 제기한 소송을 기각하고, 트럼프 행정부와 미국과학재단(NSF)의 손을 들어줬다.

해당 주들은 NSF가 여성·소수인종 등 ‘소외 집단’ 참여 확대를 목표로 대학에 지급해 오던 연구 보조금 수억 달러를 2025년 4월부터 갑작스럽게 취소하자 이를 중단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었다. 주(州) 측은 “NSF가 의회가 부여한 권한을 넘어 연구비를 일방적으로 삭감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미 종료된 보조금 계약은 미 연방청구법원(Court of Federal Claims)에서만 다룰 수 있다”는 행정부 논리를 받아들였다.


주요 쟁점: ‘모두를 위한 기회’ vs. ‘소수집단 우선’

논란의 핵심은 NSF가 4월 발표한 ‘우선순위 지침(Priority Directive)’이다. 해당 지침은 “모든 미국인을 위한 기회를 창출해야 한다”면서 특정 소수집단을 우대하는 연구 과제를 기관의 우선순위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같은 날 NSF는 다양성·형평성·포용(DEI) 프로그램을 포함한 수십 개 보조금을 취소했다.

“해당 지침이 STEM 저대표집단 참여 확대를 의무화한 국가과학재단법과 충돌한다” — 뉴욕주 등 16개 민주당 주 법무장관

그러나 크로넌 판사는 “NSF가 다양성 연구를 완전히 중단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일부 프로젝트는 계속 지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州)들이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해당 지침이 관련 법률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법적 절차상의 벽

연방청구법원기존 계약 관련 금전적 손해배상만을 전담하는 ‘전문 법원’이다. 크로넌 판사는 “이미 종료된 보조금 계약은 행정법원이 아닌 청구법원 관할”이라고 못 박았다. 이에 따라 주(州)들은 사건을 이관하거나, 별도 절차를 밟아야 한다.

NSF 측은 공식 논평을 거부했다. 반면 뉴욕주 법무장관 리티샤 제임스 대변인은 “판결문을 검토 중”이라며 항소 가능성을 시사했다.


배경: 트럼프 행정부의 ‘反-DEI’ 기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4년 대선 이후 “정부·사회 전반에서 DEI 프로그램을 폐지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이번 보조금 삭감은 그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DEI(다양성·형평성·포용)는 인종·성별·장애 등으로 차별받아 온 계층이 공정한 기회를 갖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자는 움직임이다. 미국 과학계에서는 여성·흑인·히스패닉계 연구자의 비중이 여전히 낮아, NSF를 비롯한 연방 연구기관들이 수십 년간 DEI 예산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DEI 프로그램이 “특정 집단을 우대해 역차별을 초래한다”는 보수 진영의 반발도 거세다. 실제로 최근 연방대법원은 대학 입학에서 ‘소수인종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을 위헌으로 판결해 파장을 일으켰다.


전문가 해석 및 전망

법조계는 이번 판결을 ‘절차적 기각’으로 분류한다. 판사가 정책의 정당성 자체를 인정한 것은 아니라, 소송 제기 장소(포럼)가 잘못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주(州)들이 연방청구법원으로 무대를 옮길 경우, 계약법·행정법적 쟁점이 다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스탠퍼드대 마크 프레스콧 교수는 “사안의 본질은 연방정부가 ‘사회적 가치’를 자의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지에 있다”며 “과학계의 연구 환경은 정치 지형에 따라 요동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연구비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대학·연구소의 장기 프로젝트가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2024년 기준 NSF 전체 예산은 약 110억 달러로, 이 중 10% 이상이 다양성 확대 프로그램에 배정돼 있었다.


용어 풀이

NSF(National Science Foundation): 미국 연방정부 산하 기초과학 연구지원 기관으로, 대학·연구소에 보조금을 지급한다.
미 연방청구법원(Court of Federal Claims): 연방정부를 상대로 한 금전적 청구·계약 분쟁을 전담한다.
STEM: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의 약자. 첨단·기초과학 분야를 통칭한다.


기자의 시각

이번 판결은 ‘DEI 논쟁’이 행정 영역을 넘어 사법부까지 확장됐음을 보여준다. 특히 연구비 정책은 과학 생태계 전반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므로, 최종 판결 결과에 따라 차세대 과학 인력 양성에도 중대한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정책 불확실성이 장기화할 경우, 미국 연구기관의 글로벌 경쟁력 약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