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본지 특파원]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 15명이 웰스파고(Wells Fargo) 경영진에 노조 탄압 중단과 노사 관계 정상화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이들은 사측이 노조 조직화를 시도하는 직원들에게 보복 조치를 취해 왔다고 지적하며, 독성(毒性) 조직 문화를 개선하고 잇단 스캔들로 훼손된 평판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노사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2025년 9월 17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아리조나주 연방 하원의원 루벤 갈레고(Ruben Gallego)가 주도한 이번 서한에는 마크 켈리(애리조나), 알렉스 파딜라·아담 시프(캘리포니아), 리처드 블루멘솔·크리스 머피(코네티컷), 태미 덕워스·리처드 더빈(일리노이), 크리스 밴 홀런(메릴랜드), 엘리자베스 워런(매사추세츠), 티나 스미스(미네소타), 캐서린 코르테스 마스토(네바다), 코리 부커(뉴저지), 마틴 하인리히(뉴멕시코), 버니 샌더스(버몬트 무소속) 등 14명이 동참했다.
의원들은 찰리 샤프(Charlie Scharf) 최고경영자(CEO)에게 보낸 서한에서 “귀사의 공격적 판매 목표는 소비자 피해, 인력 부족, 낮은 임금을 초래해 직원들이 노조 결성을 시도할 유인을 키웠다”고 비판했다. 또 올해만 전미노동관계위원회(NLRB)에 6건의 불공정 노동행위가 제소됐으며, 그 대상 지역은 아리조나·플로리다·노스캐롤라이나·와이오밍 등이라고 명시했다.
“노조 파괴 행위 즉각 중단하라”
서한은
“귀사 직원은 공정한 임금과 안전한 근무 환경을 누릴 권리가 있으며, 문제적 정책을 내부 고발할 자유 또한 보장받아야 한다. 노조 파괴 캠페인을 즉각 중단하라”
고 촉구했다. 이는 2016년부터 시작된 무단 계좌 개설 스캔들로 신뢰도가 추락한 웰스파고가 사측 중심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에 대해 웰스파고 대변인은 “당사는 경쟁력 있는 급여와 복리후생, 경력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며 “직원들의 노조 가입 여부 선택권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조 결성을 지원하는 은행 노동·시민단체 연대체 ‘Committee for Better Bankers’ 측은 이번 요구에 대해 즉각적인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은행권 첫 ‘전국 규모 노조’ 가능성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웰스파고는 2023년 말 대형 은행 최초로 지점 단위 노조 설립을 허용해 미 금융권 전반에 적지 않은 파장을 낳았다. 현재 ‘행동 관리 인테이크 부서(Conduct Management Intake Department)’와 최소 27개 지점이 노조 설립에 찬성했으며, 웰스파고는 “11월까지 20개 이상 노조 지점과 단체교섭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웰스파고 직원 규모는 2023년 기준 21만 7,000명이며, 이 가운데 77%가 미국 내에서 근무한다. 업계 일각에서는 “웰스파고 노조가 본격화되면 다른 대형 은행으로도 조직화 움직임이 확산될 수 있다”며 주주 가치∙거버넌스 리스크 요인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자산 총액 규제 해제 이후 경영 안정화 과제
올해 6월 연방준비제도(Fed)는 웰스파고의 지배구조 및 리스크 관리 개선이 “실질적 진전”을 이뤘다며, 7년간 적용했던 총자산 1조 9,500억 달러 상한을 해제했다. 이에 기뻐한 샤프 CEO는 전 세계 정규직 직원 대다수에게 2,000달러 상당 제한주식을 지급하며 “직원들이 회사의 미래 성공을 공유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동계는 “노동 기본권 보장이야말로 신뢰 회복의 전제 조건”이라며 주식 보상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반박한다. 특히 스캔들로 촉발된 ‘독성 문화’가 잔존하는 한, 자산 규제 해제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란 시각도 적지 않다.
노사 갈등이 금융·정치권 이슈로 비화
미 상원 금융위원회 및 노동위원회 관계자들은 “웨 주주 행동주의 및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흐름과 맞물려, 대형 은행의 인권·노동 리스크가 전례 없이 부각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버니 샌더스 의원은 최근 SNS에서 “노동 존중 없는 은행은 소비자도 외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웰스파고가 △노조와의 단체교섭 일정 △급여 및 인력 충원 확대안 △스캔들 재발 방지 대책 등에 대해 구체적 실행 방안을 내놓아야 정치권 공세를 완화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연방정부 조달 사업 참여 시 노동 관련 컴플라이언스 요건이 점차 강화되고 있어, 노사 갈등 장기화는 수주 경쟁력에도 직격탄이 될 수 있다.
복잡 용어 설명
NLRB는 전미노동관계위원회(National Labor Relations Board)의 약자로, 미국 내 노동조합 활동과 부당노동행위 심판을 담당하는 독립 공공기관이다. 제한주식(Restricted Stock)은 일정 기간 또는 조건 충족 시점까지 매각이 제한되는 주식으로, 성과 유인을 위해 임직원에게 지급된다.
또한 “독성 조직 문화(toxic culture)”는 직원 간 신뢰, 윤리 경영, 심리적 안정성이 심각히 훼손된 환경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형 은행의 비윤리적 영업 관행을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된다.
전망 및 기자 의견
필자는 이번 사태가 단순한 노사 분쟁을 넘어 미국 금융산업의 거버넌스 패러다임 전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IT·물류·미디어 업계에 이어 은행권에서까지 조직화 바람이 확산될 경우, AI·핀테크 도입 속도와 맞물려 인력 구조 조정 이슈가 더욱 복잡해질 공산이 크다.
특히 웰스파고는 과거 스캔들로 고객 신뢰가 이미 흔들린 상태다. 노조 요구를 무시하거나 보복할 경우, 2026년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인 미국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의 ‘반복적 위반자 제재 가중안’에 직면해 추가 과징금을 물 수 있다. 반대로 노사 협력을 강화한다면, ESG 점수를 개선해 장기 자본 조달 비용을 낮추고 시장 점유율을 방어할 수 있다.
결국 샤프 CEO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명확하다. 노사 대화 창구를 제도화하고, 성과 압박 일변도 경영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당뿐 아니라 공화당에서도 확산 중인 ‘평균 근로자 임금 대비 경영진 보상 격차 축소’ 요구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