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석 칼럼니스트 · 데이터 분석가
1. 서론: 한 줄짜리 뉴스가 던진 거대한 파장
2025년 9월 3일,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TSMC·SK하이닉스·삼성전자 등 외국계 기업이 중국에 보유한 반도체 공장에 적용하던 Validated End User(이하 VEU) 특혜를 2026년 1월 1일부로 전면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겉으로는 ‘특례 단축’이라는 문구에 불과했지만, 이는 1990년대 이후 다층적으로 얽혀 온 글로벌 팹(fab) 생태계를 근본부터 재편할 디커플링(de-coupling)의 방아쇠로 평가된다.
본 칼럼은 향후 최소 10년을 바라보며 ①규제의 법적·기술적 함의 ②반도체 밸류체인·지역 경제 영향 ③기업·투자자·국가 차원의 전략 시나리오 ④장기 매크로 변수와 리스크 관리 방안 등을 입체적으로 해부한다.
2. VEU 제도의 역사와 철회 결정의 법적 구조
2-1. VEU란 무엇인가?
- 도입 연도: 2007년 조지 W. 부시 행정부
- 목표: ‘검증된 최종 사용자’로 지정된 외국 기업에는 건별 수출 허가 면제, 패스트트랙 인허가 제공
- 주요 수혜 품목: 리소그래피, 식각, CMP 장비 및 EDA 소프트웨어
- 지정 기업(중국 내 소재): TSMC 난징, 삼성전자 시안·쑤저우, SK하이닉스 우시 등 총 9개 팹(2025년 기준)
2-2. 철회 결정문 핵심 문구
“Effective January 1, 2026, items controlled under ECCN 3B, 3C, 3D will require individual validated licenses when destined for the PRC facilities previously enrolled in the Validated End User program.”
요약하면 모든 첨단 제조 장비·부품·설계 SW 수출이 ‘사전 심사+건별 허가’ 체제로 회귀한다는 뜻이다.
3. 거시·미시 데이터로 본 현주소
항목 | TSMC 난징 | 삼성 시안 | SK하이닉스 우시 |
---|---|---|---|
공정 노드(주력) | 28 nm | V-낸드 (1a ~ 1b) | DDR5 D램 (1β) |
중국 매출 비중 | 3% (2024) | 12% | 32% |
장비 국산화율 | ≤ 10% | ≤ 5% | ≤ 5% |
대미(對美) 장비 의존도 | ≈ 70% | ≈ 75% | ≈ 80% |
자료: 각사 IR, SEMI, TrendForce 재가공
4. 장기 영향 분석
4-1. 기술·공정 측면: 업그레이드의 ‘물理적 상한’
VEU 철회는 ‘증설 제한’이 아닌 공정 고도화 차단을 노린다. 난징 28 nm 팹, 우시 D램 라인은 이미 EUV·DUV 바운더리 상단에 근접해 있다. 만약 7 nm 또는 1γ D램으로 스텝업하려면 ASML NXE 시리즈 EUV 장비가 필수다. 그러나 ASML EUV에는 미국산 광학·메트롤로지 핵심 부품이 15% 이상 들어간다. 개별 허가→거의 불가능 구조이므로 중국 내 로컬 팹은 ‘공정 스테이징(동결)’에 직면한다.
4-2. 공급망 지리학: 뉴 아웃소싱 흐름
McKinsey & Co.는 2024년 말 보고서에서 “2028년까지 중국 내 선단 공정(≤ 14 nm) 비중이 글로벌 캐파의 4% 미만으로 축소될 것”이라 전망했다. 이번 조치는 그 일정을 2~3년 더 앞당길 가능성이 높다. 물리적 캐파 부족은 자연스럽게 동남아·인도·미국·일본으로의 팹 이주를 가속한다.
- 미국·멕시코 국경 벨트: TSMC(애리조나), 삼성(텍사스), 인텔·브로드컴(오리건·뉴멕시코) 등 ‘실리콘 관세장벽’ 안쪽 구축
- 일본 큐슈·호쿠리쿠: Rapidus 2 nm·TSMC 熊本 fab 공동 클러스터
- 인도 구자라트: Micron · 태국 ASE 패키징과 연결되는 ‘Design+OSAT’ 생태계
4-3. 매크로 효과 시뮬레이션 (2026~2035)
구분 | 실질 GDP 기여도(누적) | 상쇄 변수 | |
---|---|---|---|
미국 | 중국 | ||
반도체 설비 투자 | +0.34 pp | −0.27 pp | 中 국산화 정책 |
첨단제조 일자리 | +11.8 만 명 | −9.5 만 명 | 로봇 자동화 |
생태계 파급(설계 SW, 소재) | +0.09 pp | −0.06 pp | 한·대만 → 해외 이전 |
주: 연준, PIIE, IMF 데이터를 바탕으로 필자 추정
5. 기업별 전략 분석
5-1. TSMC: ‘+α 모달리티’ vs. 중국 고객 유지 딜레마
28 nm까지의 난징 팹은 IoT·자동차용 MCU에 최적화돼 있어 철수 비용 < 유지 비용 구조다. 그러나 애리조나 Fab 21 Phase II (EUV) 2027년 가동이 확정되면, 난징에서 28 → 16 nm 변신은 사실상 불가다. TSMC는 이미 미국·일본·독일 3개 지역 ‘팬아웃’ 로드맵을 활용해 중국 매출 비중을 10% → 3%로 떨어뜨릴 계획이다.
5-2. 삼성전자·SK하이닉스: 메모리 ‘투트랙’ 재편
- 삼성 시안: V-낸드 5대 라인 중 4기만 가동, 128-단 이하 제품 전용. 차세대 3D-낸드 (236-단) 라인은 평택 P3·P4로 이동.
- 하이닉스 우시: EUV 적용 1γ·1δ는 경북 용인 CLX 팹이 전담. 우시는 DDR4·DDR5 저단가 모델+HBM 후공정 일부로 축소.
- 장기적 관건:
- EUV 장비 수급→ 국산화 <20 %로 제한 시 中 로컬 메모리와의 가격 경쟁 심화
5-3. ASML·LAM·Applied Materials: 매출 재조정 시나리오
달러 기준 장비사 총 주소가능시장(TAM)은 2024년 1,070억 달러 → 2028년 1,330억 달러로 성장 전망이다. 그러나 ‘중국 컨트리 리스크 디스카운트’가 15 ~ 20% 포인트 상시 적용될 확률이 높다. 동사는 이미 로드맵 분권형 크레딧(지역별 선결제 모델)을 도입해 현금흐름 불확실성을 완충 중이다.
6. 정책·외교 변수: 美·日·네덜란드 〈대중 수출 통제 동맹〉 심층 해부
- 규제 리스트 진화: 2022년 10월 ‘10-21 규칙’ → 2023년 10월 〈수출 라이선스 재정의〉 → 이번 VEU 철회로 BIS 조치가 ‘관세+투자 제한’으로 겹겹이 확장
- 일본 반도체 전략: 〈경제안전보장촉진법〉 개정안 통과(2024), ‘설계-제조-패키징’ 통합 인센티브 3조 엔
- 네덜란드 정부-ASML MOU: 고급 DUV(NXT TwinScan 2000 시리즈) 이상의 중국 수출 사전보고 의무화
이처럼 기술 3국은 ‘수출 통제 트라이앵글’을 통해 중간재 → 장비 → IP → 인재 → 투자 4단계 병목을 디자인하고 있다.
7. 중국의 대응 카드와 한계
7-1. 장비 국산화·인력 역이탈·패키징 강화
- 2024년 기준 중국 자급 장비 점유율 29% (CSIA)
- 2027년 목표치 50%이나, 리소그래피 EUV·E-Beam 계열 난항
- HiSilicon · SMIC 14 nm 재설계 및 ‘Design + Back-end’ HBM-lite 로컬화 추진
7-2. 전가 전략: ‘패스-스루’ 무효화
관세·수출 규제를 가격·환급·보조금으로 상쇄하는 패스-스루 효과가 이미 둔화되고 있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WSTS)는 중국 내 설비투자 회복 지연으로 2026~27년 DRAM·NAND 캐파 증가율을 각각 −2.3%, +1.1% 수준으로 하향했다.
8. 투자자·기업·정부를 위한 실천적 프레임워크
8-1. 투자자 체크리스트
- ① FAB2.0 지수(미국·일본 신규 캐파/중국 캐파) 매 분기 모니터
- ② 장비사 매출에서 중국향 비중 > 20% 기업은 리밸런싱 고려
- ③ 미국·일본 인센티브 수혜주: 지멘스 EDA, JSR 바이오, KYOCERA 패키징
8-2. 한국 정부·기업 시사점
- 정부: ‘K-칩스법’ 개정으로 稅 공제율을 미국·일본(25~40%) 수준으로 상향
- 기업: 구축 중인 용인·평택 ‘메가 클러스터’를 미·일 전략연맹과 호환되는 오픈 생태계로 설계
- 스타트업: 패키징 Fo-WLP·AI 용 소재·검사 SW 니치 마켓 선점
9. 결론: ‘탈중국’은 끝이 아니라 시작
VEU 특혜 철회는 단순한 수출 프로세스 변경이 아니다. 미국·일본·네덜란드가 그린 ‘기술 관세장벽’이 데이터·IP·인재를 포함한 다차원 공급망 블록화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중국은 국산화와 패키징 강화로 대응하겠지만, 선단 공정 갭은 더 벌어질 것이다. 반대로 미국·일본·대만·한국은 ‘기술 보호 프리미엄’이라는 새로운 가치 평가 체계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패러독스도 존재한다. 글로벌 공급망이 지역화되면 단가 상승·R&D 중복·중소 팹 도태가 불가피하다. 따라서 각국은 산업안보와 효율성 간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필자는 〈동맹 내 CAPA 공유+R&D 컨소시엄〉 모델이 향후 10년의 ‘최적 타협’이 될 것이라 본다. 이른바 Fab-as-a-Block 개념이다.
결국 이번 조치는 ‘탈중국의 끝’이 아닌 ‘블록형 공급망 시대’의 서막일 뿐이다. 투자자와 정책 입안자는 장밋빛 전망만큼이나 비용·리스크 측정지표를 정교화해야 한다. 지정학 + 기술 + 자본 세 축이 얽힌 거대 게임에서 승자는 속도보다 전략적 유연성을 갖춘 쪽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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