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이 엔비디아(Nvidia)와 AMD가 중국 시장에 판매하는 AI 칩과 관련해 15% 수출세를 부과하기로 한 합의의 법적·제도적 타당성을 최종 검토 중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협상했다고 밝힌 사안으로, 향후 다른 반도체 기업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2025년 8월 12일, CNBC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카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현재로서는 두 회사에만 적용되지만 향후 다른 기업으로 확대될 수 있다”면서 “상무부가 세부적인 합법성·집행 방식을 조율하고 있으며 추가 정보는 상무부에 문의해 달라”고 말했다.
레빗 대변인의 발언은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엔비디아의 중국 전용 AI 칩인 H20 수출 라이선스를 승인하는 대가로 매출의 15%를 미국 정부가 받기로 했다고 공개한 직후 나왔다. AMD 역시 중국 매출 일부를 정부에 납부하는 조건으로 라이선스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승인을 내주는 만큼 국가에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합의의 핵심 배경
엔비디아 H20는 2023년 바이든 행정부가 도입한 AI 칩 수출 통제 이후 중국 수요에 맞춰 인공지능 연산 능력을 의도적으로 낮춘 모델이다. 미국 내에서 사용되는 H100·H200 시리즈와 동일한 아키텍처를 바탕으로 하지만, 규제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성능이 제한됐다. 그럼에도 엔비디아는 올해 초 H20 칩만으로 한 분기에 80억 달러 이상을 판매할 것으로 전망했으나, 4월 트럼프 행정부가 ‘라이선스 필수’ 방침을 내놓으면서 제동이 걸렸다.
GPU 기반 AI 칩은 고도의 병렬 연산을 제공해 대규모 인공지능 모델 학습과 추론에 필수적이다. 미국 정부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중국의 첨단 AI 칩 접근을 제한하고 있다. 특히 “해당 기술이 중국군 혹은 중국 정부가 미국을 앞지르는 데 쓰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합법성 논란과 관료적 절차
전문가들은 미 정부가 수출 라이선스 승인 대가로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식이 무역 확장법(Trade Expansion Act) 및 연방 수수료법과 충돌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현행법은 행정기관이 수수료를 부과할 때 ‘서비스 제공 비용 회수를 위한 최소 범위’로 제한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상무부·법무부·재무부 등 관계 부처가 세입 항목 분류, 회계 기준, 무역 규정을 두루 검토 중이다.
CNBC는 “공식화까지 여러 달이 걸릴 수 있다”는 워싱턴 무역 변호사들의 평가를 인용했다. 상무부는 아직 구체적 실행 지침이나 일정표를 내놓지 않았다.
중국의 대응 기류
블룸버그 통신은 8월 12일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에 H20 칩을 정부·안보 프로젝트에서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수출세 부과가 중국 내 수요를 위축시켜 엔비디아의 중국 의존도를 낮출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단, 민간·상업용 프로젝트에서는 대체재가 부족한 탓에 H20 수요가 일정 부분 유지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H20가 최신 AI 연산 면에서 H100·H200 대비 성능이 제한되지만, 여전히 중국 내 상당수 기업에는 매력적인 옵션”이라고 진단한다. 동시에 화웨이·바이두 등 중국 업체들이 독자적인 AI 반도체 개발을 가속화할 가능성도 함께 제기됐다.
수출 라이선스·관세 개념 정리
※수출 라이선스(export license)란 전략 물자에 해당하는 제품·기술을 해외로 반출할 때 발급받아야 하는 정부 인허가 문서를 의미한다. 콘텐츠 검증, 최종 사용자 확인, 재수출 제한 등의 조건이 포함된다.
※15% 수출세는 관세(tariff)가 아닌 ‘라이선스 승인 수수료’ 성격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사실상 추가 비용 부담으로 작용한다. 회계상 비용 처리·가격 전가 여부가 향후 실적에 결정적 변수가 될 전망이다.
시장·투자자 관점에서의 시사점
이번 조치로 엔비디아와 AMD의 중국 매출 총이익률이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일부 애널리스트는 “높은 AI 칩 수요, 미국·중동·유럽 등 신규 데이터센터 투자 붐”을 근거로 글로벌 ASP(평균판매단가) 상승세가 15% 수출세 부담을 상쇄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는 이미 끝난 거래”라고 밝힌 것과 달리 법적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점이 주가 변동성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12일 뉴욕장 개장 전 프리마켓에서 엔비디아 주가는 1% 하락, AMD 주가는 0.8% 하락을 기록했다.
전문가 분석 및 전망
“엔비디아 H20 접근만으로 중국이 AI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수수료 모델을 전례로 남길 경우 대(對)중국 기술 수출 정책이 ‘통제에서 과금’으로 진화할 수 있다.” – 뉴욕 소재 국제통상연구소(가칭)
필자의 판단으로는, 전략 물자 통제와 재정 수입 확대라는 정치·경제적 이해가 복합적으로 맞물려 있다. 향후 TSMC, 인텔, 구글 클라우드 TPU 같은 다른 첨단 칩·가속기 공급망에도 비슷한 모델이 적용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런 정책 변화는 글로벌 AI 생태계의 공급 가격 구조·탄력성·국가 리스크 프리미엄에 중대한 변곡점을 만들 수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중국 간 기술 패권 경쟁이 규제·통제 중심에서 수익 모델화 단계로 진입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히 ‘수출 제한’ 이상의 파급력을 갖는다. 업계·투자자·규제당국 모두가 합법성, 비용 부담, 공급망 안정성을 다층적으로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