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발 — 미 해군과 공군이 12년에 걸쳐 총 8억 달러(약 1조 700억 원)를 투입한 인적자원(HR) 현대화 소프트웨어 두 건을 취소하거나 사실상 중단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사업이 거의 완료 단계에 이른 시점에서 ‘되돌리기 버튼’을 누르는 배경에는 세일즈포스(Salesforce)와 팔란티어(Palantir) 등 다른 민간 IT기업에 동일·유사 사업을 재발주하려는 움직임이 자리 잡고 있다.
2025년 8월 14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해당 결정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언했던 ‘정부 낭비 제거’ 기조와 정면으로 배치되며, 7명의 관계자 증언·내부 이메일·공문 등을 통해 수억 달러 규모의 세금 손실이 현실화될 위험성을 보여 준다.
‘DOGE(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는 트럼프 행정부가 방산 계약 효율화를 목적으로 만든 기구로, 자체 집계 기준 140억 달러 상당의 국방부 계약을 취소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감사기능 약화, ‘속도 우선’ 행정명령, 고위직 공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감독 장치가 무력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 공군·우주군 HR 플랫폼 ‘전략적 일시중단’
2019년 액센츄어(Accenture)는 오라클(Oracle) 기반 HR 플랫폼 확대 계약을 따내 공군·우주군 급여·휴가·인사 업무를 통합하기 시작했다. 사업비는 3억 6,800만 달러까지 커졌으며 최초 배포 시점은 2024년 6월로 예정돼 있었다. 2024년 4월 공군이 작성한 ‘상태 보고서’에는 “예정대로 진행돼 구형 시스템 사용 중단 시 연 3,900만 달러 절감”이라는 문구가 담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4년 5월 30일, 달린 코스텔로(Darlene Costello) 당시 공군 차관보 대행은 90일간의 ‘전략적 일시중단’을 지시하며 대안 기술 검토를 주문했다.
“세일즈포스·팔란티어 등 외부 벤더에게 기회를 주려는 내부 압력”
이 원인이라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특히 팔란티어 공동창업자 피터 틸(Peter Thiel)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초기 지지자이자 부통령 제이디 밴스(JD Vance)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정치적 영향력이 크다. 팔란티어는 2024년 4월 이민세관단속국(ICE)으로부터 3,000만 달러 규모 ‘불법체류자 식별 시스템’ 계약을 따낸 바 있다.
우주군은 기존 공군 시스템을 곧바로 넘겨받을 예정이었지만, 워크데이(Workday) 주도로 별도 HR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아 해당 사업에서도 이탈했다. 2024년 5월 7일 소규모 업체를 대상으로 한 ‘대체 플랫폼 연구’ 입찰 공고에는 “워크데이를 최적 솔루션으로 추천할 업체 선정”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 해군 ‘NP2’ 사업, 내부 갈등으로 표류
하와이 호놀룰루에 본사를 둔 나쿠푸나(Nakupuna) 컴퍼니즈는 2022년 오라클 기반 전사 HR·급여 통합 플랫폼 ‘NP2’를 인수·개발해 왔다. 미 회계감사원(GAO)에 따르면 2023년 이후 투입 예산만 4억 2,500만 달러에 달한다. 2024년 1월 컨설팅사 가이드하우스(Guidehouse)가 “기술적·비용적 최적안”이라고 평가하면서 상용화 직전 단계에 도달했다.
그러나 2024년 6월 5일, 릭 치즈먼(Rick Cheeseman) 해군 인사사령관(제독·은퇴)이 발송한 메모에서 “계약 취소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지시했다. 치즈먼 제독은 데이터 서비스업체 판테온데이터(Pantheon Data)가 수주한 1억 7,100만 달러 규모 별도 계약이 ‘중복’이라는 이유로 DOGE에 의해 전격 취소되자 격분했다. 5월 7일자 이메일에서 그는
“NP2 예산 전액 동결도 불사하겠다”
며 DOGE의 결정을 압박했다.
결국 해군 수뇌부는 “추가 평가”를 명령해 NP2를 무기한 보류 상태로 돌려세웠다. 나쿠푸나는 “배포 준비가 완료된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중단은 예기치 못한 결정”이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 법적·재정적 파장
연방 계약 전문 변호사 프랭클린 터너(Franklin Turner)는 정부가 ‘편의상 계약 해지(termination for convenience)’를 실행할 법적 권한은 있지만, 이를 위해 기존 업체 철수 비용과 대체 사업 재개발 비용을 모두 부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즉, 최소 8억 달러가 이미 투입된 데 이어 같은 규모의 예산이 ‘다시’ 필요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미 국방부 대변인 킹슬리 윌슨(Kingsley Wilson)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이행해 노후화된 계약 프로세스를 신속히 개혁 중”이라며, ‘속도·효율’ 기치를 강조했다. 그러나 감사총장 해임, 고위직 결원 등으로 견제 장치가 약화된 상황에서 대규모 예산 중복 집행 가능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 복잡 용어 해설
Termination for Convenience: 미국 연방조달법(FAR)에서 규정하는 계약 해지 방식으로, 정부가 공익 또는 기타 필요에 따라 일방적으로 계약을 종료할 수 있다. 이 경우 업체는 종료에 따른 정산·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Space Force: 2019년 창설된 미군 여섯 번째 군종으로 위성·우주 기반 자산 방어를 담당한다. 아직 규모가 작아 공군 산하에 편제돼 있으나 독자적인 조직 문화를 구축 중이다.
Workday: 미국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클라우드 기반 HR·재무 솔루션을 제공한다. 탄력적 도입과 사용자 친화적 UI로 대기업·공공기관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 전망과 쟁점
현재 공군·우주군·해군 모두 “대안 검토”라는 이름으로 기존 프로젝트를 동결한 상태다. 중복 사업 추진 시, 이미 책정된 예산의 두 배 이상이 소요될 수 있으며, 개발 일정도 최소 2~3년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연방 IT조달 자문기구 IT-AAC의 존 와일러(John Weiler) 국장은 “요구사항에 부합하지 않는 벤더로 아예 새 판을 짜려 한다”며 “심각한 비용·시간 낭비”를 경고했다.
한편 오라클은 “국방부의 현대화를 최적 비용으로 돕기 위해 DOGE와 협력 중”이라고 밝혀, 향후 법적 다툼과 로비전이 동시에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민간 IT업체들 간 수주 경쟁, 정치적 입김, 감독 부재가 뒤엉킨 국방부 HR 시스템 사업은 ‘비용 폭증’ vs ‘효율 개선’이라는 딜레마 속에서 향방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