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미국 연방 교통부(Department of Transportation)가 캘리포니아 고속철도(California High-Speed Rail) 사업에 배정됐던 $40억(약 5조4,000억 원) 규모의 연방 지원금을 전격 취소하면서 프로젝트 존속 여부가 중대한 기로에 섰다.
2025년 7월 17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숀 더피(Sean Duffy) 미 교통부 장관은 워싱턴 D.C. 교통부 청사 앞 브리핑에서 “16년 동안 150억 달러를 쓰고도 단 한 줄의 레일도 깔리지 않은 상태에서 총 사업비가 1,3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지만, 완공 일정과 추가 재원 확보 방안이 전무하다”며 예산 회수 배경을 설명했다.
더피 장관은 “우리는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싶었지만, 재정·시간·투명성 측면에서 더는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결국 플러그(plug)를 빼야 했다”고 못 박았다. 그는 이어
“이번 조치에 대해 어떠한 소송이 제기돼도 연방정부가 승소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고 강조했다.
사업 경과와 재정 문제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추진해 온 고속철도 사업은 주(州) 남부 로스앤젤레스에서 북부 새크라멘토·샌프란시스코를 연결해 주내 주요 도시 간 이동 시간을 대폭 단축하려는 초대형 인프라 계획이다. 그러나 착공 이후 예산 초과, 환경 규제, 토지 보상, 설계 변경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공정이 지연돼 왔다.
장기간 이어진 지연으로 이미 16년 동안 150억 달러가 투입됐음에도 가시적 성과가 없자, 연방정부는 ‘재무 건전성’과 ‘납세자 보호’ 원칙을 근거로 $40억 규모의 지원금 회수 결정을 내렸다. 이는 총예산 1,300억 달러 이상으로 불어난 사업 비용 가운데 상당 부분을 차지하던 연방 자금을 끊어낸 조치다.
법적 공방 가능성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프로젝트 취소는 40만 개 이상의 잠재적 일자리와 지역 경제 활성화 기회를 저해한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다만 더피 장관은 “소송이 제기되더라도 자금 철회 권한은 연방 교통부에 있으며, 계약 불이행 및 일정 지연이 명확한 만큼 승소에 자신이 있다”고 밝혔다.
연방정부가 예산 회수를 선포하면 주정부는 지방채 발행이나 민관합작(PPP) 형태로 부족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고금리 기조와 투자 회수 전망 불투명으로 자금 조달 여건은 악화돼 있다.
고속철도란 무엇인가?
고속철도(High-Speed Rail)는 시속 250km 이상으로 주행 가능한 전용 선로를 이용해 도시간 이동 시간을 대폭 줄이는 교통수단이다. 일본의 신칸센, 프랑스의 떼제베(TGV)가 대표적이며, 기존 항공·고속도로 교통수단을 대체하거나 보완한다. 미국 내에서는 장거리 이동 수요가 많지만, 인프라 지연과 적정 요금 체계 확립 문제로 상업적 성공 사례가 제한적이다.
미국 연방정부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이후 친환경·대중교통 인프라 예산을 확대해 왔으나, 수익성·예산 집행 투명성을 강조하며 사업성 없는 프로젝트에는 엄격히 대응하고 있다.
전문가 진단
인프라 정책 전문가들은 “연방 지원 중단은 사실상 사업 전면 재검토를 의미한다”며 “주정부가 자체 재원을 투입하지 못하면 프로젝트 축소 또는 단계별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로스앤젤레스 지역 경제연구소는 “물가 상승과 건설 자재 가격 급등을 감안할 때, 추가 비용 증가가 불가피해 투자 매력이 더욱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관측통은 “교통부가 다른 주와 도시철도·통근열차 사업엔 예산 지원을 늘리는 만큼, ‘사업 관리 리스크’가 큰 프로젝트를 걸러내려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향후 시나리오
캘리포니아 주 의회는 긴급 예산 청문회를 열어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주 교통국 고위 관계자는 “주정부 단독 재원 조달이 쉽지 않다”면서도 “장기적 교통 혼잡 해소와 탄소배출 저감 차원에서 프로젝트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그러나 공사 중단이 장기화될 경우, 이미 매몰된 150억 달러 외에 보상·계약 해지 비용이 추가 발생할 수 있어 재정·정치적 부담은 가중될 전망이다.
결국 이번 예산 철회는 연방정부가 대형 인프라 사업의 책임성을 강화하려는 움직임과 맞물려 있다. 향후 연방·주정부 간 협상, 사법부 판단, 민간 투자 유치 여부가 고속철도 사업의 운명을 결정지을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