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발 – 미국의 대형 은행과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달러 연동형 가상자산인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본격적으로 저울질하고 있다. 하지만 규제 해석과 기술적 검증, 자본규제 등 넘어야 할 산도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5년 8월 12일, 인베스팅닷컴의 보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월 18일 ‘GENIUS법(Guidelines for Emerging National and International US-Dollar Stablecoins Act)’에 서명하며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연방 차원의 첫 제도적 틀을 마련했다. 이 법은 달러에 1:1로 연동된 토큰의 정의, 발행 요건, 자금세탁방지(AML)·고객확인(KYC) 의무 등을 구체화해 가상자산이 일상 결제 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법적 기반을 제공한다.
스테이블코인이란 무엇인가?
스테이블코인은 가격 변동성이 큰 비트코인·이더리움과 달리, 달러·유로·엔 등 법정화폐를 담보로 삼아 가치를 고정하도록 설계된 디지털 토큰이다. 이용자는 1달러 상당의 스테이블코인을 송금하거나 결제하면 즉시 정산되는 ‘24시간 365일’ 금융 인프라를 경험할 수 있다. 다만 발행사가 실제 준비금을 얼마나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는지,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해킹에 취약하지 않은지 등이 주요 리스크로 꼽힌다.
기업들의 행보
월스트리트저널과 인베스팅닷컴 취재를 종합하면 뱅크오브아메리카(BoA)·씨티그룹·모건스탠리·JPMorgan Chase 등 대형 은행은 지난달 실적발표(IR) 콜에서 “자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BoA와 씨티그룹 최고경영자(CEO)는 개발 전담 팀을 꾸렸으며, JPMorgan의 제이미 다이먼 CEO는 “은행권 스테이블코인 생태계에 반드시 참여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소매·플랫폼 기업도 발 빠르게 움직인다. 지난 6월 월마트와 아마존이 ‘로열티 프로그램 결제 코인’ ‘글로벌 셀러 정산용 코인’ 등을 검토 중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두 회사는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국경 없는 결제 속도·수수료 절감 효과가 명확하다”고 전했다.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고객을 플랫폼에 락인(Lock-in)하고, 동시에 글로벌 정산을 실시간으로 처리하려는 니즈가 커지고 있다.” – 스테픈 애셰티노(법무법인 스텝토 파트너)
발행 vs. 제휴, 어떤 전략을 택할까?
기업들은 ‘독자 발행’과 ‘외부 스테이블코인 연동’ 중 선택해야 한다. 자체 발행 시 브랜드 시너지와 수수료 수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준비금 보관·회계·규제 대응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 반면 서클(Circle)의 USDC처럼 이미 검증된 코인을 통합하면 시행 초기 리스크는 낮아지지만, 플랫폼 통제력과 수익원 확보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무디스의 질 드윗 컴플라이언스 총괄은 “대형 은행처럼 이미 AML·KYC 체계를 완비한 곳이 초기 경쟁 우위를 점할 것”이라며, 핀테크·커머스 기업들은 추가 시스템 구축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은행권의 특별 고려사항
은행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보유하면 바젤Ⅲ 등 건전성 규제에 따른 위험가중자산(RWA)이 늘어 자본비율이 악화될 수 있다. FIS 디지털통화 전략총괄인 줄리아 데미도바는 “GENIUS법은 민간 발행을 허용했지만, 연준·통화감독청(OCC)이 최종 규제 세부안을 마련하기 전까지 은행들은 추가 자본 적립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어느 블록체인을 선택할 것인가?
이더리움·솔라나 등 공개형(퍼미션리스) 블록체인은 거래 투명성이 높고 글로벌 이용 사례가 풍부하다. 그러나 은행권은 거래 내역 비공개, 접근제어 등이 가능한 프라이빗(퍼미션드) 블록체인을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 바스티온의 나심 에드키우악 CEO는 “대규모 트래픽을 견디고 해킹에 노출되지 않은 퍼블릭 체인의 메리트가 더 크다”고 반박하며, 기술적·비즈니스적 절충 모델이 등장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규제 타임라인과 불확실성
GENIUS법은 서명 즉시 발효됐지만, 실질적인 시행령과 감독 원칙은 최소 2~3년 이상 지연될 수 있다. Treasury는 해외 스테이블코인 규제 적합성 가이드라인을 내놓아야 하고, OCC는 리스크관리·거버넌스 기준을 구체화해야 한다. 법무법인 스텝토의 애셰티노 파트너는 “모든 규제가 단계적으로 적용될 것이며, 초기 파일럿(Pilot) 발행이 선행된 뒤 본격 상용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자 관전평*전문가 의견을 바탕으로 한 기자 해설
스테이블코인은 ‘디지털 달러’로 불리며 지급결제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그러나 규제 불확실성과 기술 선택이 복잡하게 얽혀 초기 시장 진입 비용이 클 것으로 보인다. 선제적으로 준법·보안 체계를 갖춘 전통 금융기관이 우위를 점하겠지만, 빠른 의사결정과 글로벌 리테일 네트워크를 지닌 빅테크도 만만치 않은 경쟁력을 지닐 전망이다. 결제 산업의 지형이 은행-핀테크-빅테크 삼파전으로 재편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