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셀발 — 유럽연합(EU) 공산품이 미국 시장에 진입할 때 적용되는 15% 관세 상한이 모든 품목에 일괄적으로 적용되며, 이는 최혜국대우(Most-Favoured Nation·MFN) 세율을 포함한 것이라고 EU 당국자가 5일(현지시각) 밝혔다.
2025년 8월 5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EU 측 관계자는 “EU와 미국 사이에 별도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지 않은 상태라 하더라도, EU 수출업체는 MFN 원칙에 따라 최대 15%를 넘지 않는 균일 관세율을 적용받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철강과 알루미늄은 이번 조치에서 제외되며, 해당 품목은 이미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Section 232)’ 조사 결과에 따라 별도의 관세가 부과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의약품과 반도체는 현재 무관세 상태지만 추후 232조 조사로 관세가 부과되더라도 15%를 초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자동차 및 부품에도 동일한 15% 상한이 적용되며, 1)별도의 수입쿼터나 물량 제한은 없다.” — EU 관계자
MFN이란 무엇인가
최혜국대우(MFN)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핵심 규범 가운데 하나다. 특정 국가에 부여한 최저 관세율이나 가장 우대받는 조건을 모든 회원국에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원칙이므로, 차별적 대우를 금지한다. 따라서 EU가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았더라도, 미국은 WTO 회원국인 EU에 대해 자국 관세율 체계 중 가장 우호적 조건을 제공해야 한다.
다만 미국은 무역확장법 232조나 무역법 301조처럼 안보나 불공정 관행을 근거로 예외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이번 발표에서 EU 당국자는 “232조에 따른 관세가 올라가더라도 15%를 상한으로 묶었다”는 점을 부각했다.
232조 조사와 관세 정책의 배경
무역확장법 232조는 특정 수입품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할 경우 행정부가 관세·쿼터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 시절 철강·알루미늄 관세(25%, 10%)가 대표적 사례다. 이 조치는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상당 부분 유지돼 왔다. 이번 EU 대상 관세 상한 설정은 국가안보 명분 관세가 무제한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로 풀이된다.
시장 영향 및 업계 반응
수출업계에서는 일정 수준의 불확실성이 제거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브뤼셀 소재 한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관계자는 “15%를 초과하지 않는다는 점이 명확해진 만큼 가격 전략과 공급망 조정을 장기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일부 철강·알루미늄 기업들은 여전히 높은 232조 관세율(최대 25%)에 노출돼 있어 정책 불확실성이 지속된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EU 집행위원회는 “이들 품목에 대해서도 협상 테이블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으나, 구체적 일정은 공개하지 않았다.
소비자 물가에 미칠 파급효과
관세는 결국 소비자 가격에 전가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유럽산 자동차·고급 화장품·식품에 대한 15% 관세는 미국 내 소매 가격을 끌어올릴 여지가 있다. 다만 관세 상한이 명확해진 만큼, 기업들은 가격 인상폭을 관리하고 환율 변동을 이용해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전망과 과제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를 ‘제한적 긴장 완화’로 평가한다. ‘탈세계화’ 흐름 속에서도 EU와 미국이 최소한의 다자 규범을 준수하려는 신호라는 것이다. 그러나 반도체·의약품처럼 전략적 가치가 높은 분야에는 추가 규제가 잇따를 가능성이 남아 있다.
EU 상공회의소는 성명에서 “232조 관세의 광범위한 적용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단기적 상한 설정만으로는 공급망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무역 전문 로펌 스티픈슨앤드가트너의 파멜라 리 변호사는 “이번 15% 상한이 WTO 규범과 충돌하지는 않지만, 미국 의회가 새로운 산업정책 법안을 추진할 경우 또 다른 예외 조항이 등장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결론적으로, EU 상품은 당분간 15%를 넘지 않는 관세 울타리 안에서 미국 시장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철강·알루미늄 등 핵심 소재 산업은 여전히 높은 관세 위험에 노출돼 있으며, 반도체·의약품처럼 안보·기술 요소가 결합된 품목에 대해서도 관세 변화가 예고돼 있다는 점에서 기업들의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요구된다.
※ 용어설명
• MFN(최혜국대우) : 특정 국가에 제공한 최저 관세나 가장 우대 조건을 다른 모든 WTO 회원국에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원칙.
• 무역확장법 232조 : 수입품이 국가안보를 위협할 경우 미국 대통령이 관세·쿼터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 법적 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