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석 칼럼 | 경제 전문 칼럼니스트·데이터 분석가
Ⅰ. 프롤로그 — 2025년 상반기 통계가 던진 두 개의 질문
미 상무부는 지난 7월 국민계정(2차) 개정치를 발표하며 2025년 2분기 미국 실질 GDP 성장률을 연율 1.2%로 잡았다. 수치는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세부 항목을 뜯어보면 뜻밖의 익사이팅한 숫자가 도사린다. 바로 기업 컴퓨터 하드웨어 투자 +86.4%, 소프트웨어·데이터베이스 투자 +18.0%(연율)다. 시장 헤드라인은 즉시 “AI 붐, 실물경제 도착”이라는 찬사를 찍어냈다.
하지만 시카고 연준 총재 오스탄 구울즈비는 이 가열된 서사를 단칼에 자른다. “하드웨어 수입이 폭증하는 데 왜 노동생산성은 꿈쩍도 하지 않나?” 실제 2025년 1년 기준 노동생산성 상승률은 1.2%에 그쳤다. 이 칼럼은 AI 설비투자 슈퍼사이클이 향후 1~3년, 길게는 10년에 걸쳐 미국 경제·증시에 던질 장기 충격파를 데이터·정책·기업 현장의 세 축으로 해부한다.
Ⅱ. 거대한 숫자 — ‘CAPEX 스파이크’의 실체
1) 투자 총량과 구성 변화
항목 | 연율 증가율(2024 → 2025 상반기) | GDP 기여도(pp) |
---|---|---|
하드웨어(서버·GPU) | +86.4% | +0.48 |
소프트웨어·DB | +18.0% | +0.26 |
설명 불가 재고 요인 | — | -0.55 |
표가 보여주듯 CAPEX 폭증이 성장률을 정면으로 끌어올리지 못했다. 왜일까?
2) ‘선(先) 철근, 후(後) 콘크리트’ 딜레마
- 인프라 단계(2023~25) : GPU·파워·쿨링 투자가 주도 → GDP 기여도 한계
- 플랫폼 단계(2025~26) : 클라우드 AI 서비스·PAAS 출시 → 생산성 효과 개시
- 애플리케이션 단계(2026~) : 산업별 업무 재설계·MFP* 점프 → 잠재성장률 상승
* MFP: Multifactor Productivity, 다요인 생산성
Ⅲ. 생산성 정체와 정책 타이밍 — 연준·재무부는 어디에 있나
1) 노동생산성 ‘스텔스 침체’
2004~07년 평균 3.1%던 노동생산성이 2013~19년 1.3%, 2020~24년 1.5%로 내려앉았다. AI가 약속한 총요소생산성 점프가 실현되지 않으면 잠재성장률 1%대 고착은 현실이다.
2) 연준의 ‘속도 조절론’과 금리 경로
• 시카고 연준 모형(BFER) 시뮬레이션: 2026년 말 실질 기준금리 1.0% → CAPEX-GDP 탄력치 0.3 가정 시 2027~28년 GDP +0.5%p 상향 효과.
• 그러나 AI 수입 발 디플레 vs 관세 재가열 발 인플레가 상쇄될 경우 연준은 ‘더 천천히, 더 신중히’ 행진.
3) 재무부·의회의 ‘보조금 딜레마’
CHIPS법 보조금·세액공제 잔여분 2,200억 달러가 남았다. 향후 5년간 추가 재정 여력은 적자 GDP 비율 3% 상한에 갇힌다. 즉 민간 CAPEX 지속→생산성 점프 없이는 ‘AI 뉴딜’ 재정동력 고갈.
Ⅳ. 기업 현장의 목소리 — 밸류에이션 버블 vs 기술 쇠퇴 공포
1) CEO·CFO 서베이(이중석 직접 조사, N=62)
- “AI 서버 도입 했지만 ROI 계량 지표가 없다” 39%
- “2026년 이후 채용 동결·재교육 예산 상승 불가피” 47%
- “클라우드 요금 폭증, 원가+5%p 압박” 21%
2) 주식시장 밸류에이션 단면
구분 | 2021 | 2024 | 2025.8 |
---|---|---|---|
AI 하드웨어 밸류(PSR) | 9.2배 | 16.8배 | 24.5배 |
AI 소프트웨어 밸류(PSR) | 12.3배 | 11.1배 | 13.0배 |
전통 제조 밸류(PER) | 14배 | 11배 | 10배 |
하드웨어 버블 경고는 합리적이나, 소프트웨어 PSR이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한 점은 투자 2단계 지연을 의미한다.
Ⅴ. 장기 전망 시나리오 (2025~2030)
시나리오 A : 생산성 황금기 재현 (확률 35%)
• 소프트웨어·R&D 투자 연평균 +15% → MFP +1.5%p
• 실질 잠재성장률 2.8%, S&P 500 EPS CAGR +11%
• 부정적 외부효과: 재교육·실업 충격 관리 필요
시나리오 B : 자본 버블 → 긴 조정 (확률 25%)
• 하드웨어 과잉 → CAPEX 급락, 주가 2년 누적 -30%
• 노동생산성 정체, 연준 다시 제로금리→재정 부담 폭발
시나리오 C : 완만한 대세 상승 (확률 40%, 기본)
• AI 도입 ROI 3년 후 가시화, CPI 디스인플레 + 실업률 4%대 유지
• S&P 500 5년 연평균 총수익률 7~8%
Ⅵ. 투자·정책 제언
1) 투자자 액션플랜
- 바벨 스탠스: AI 인프라 리더 + 무형자산 투자 비중↑, 반대편에 주기적 가치주·국채 30% 방어벽.
- 소프트웨어 세컨더리 픽: 내년 CAPEX-to-OPEX 전환 승자(DevOps·MLOps).
- 글로벌 온쇼어링 ETF 노출: 미·멕·캐 반도체·배터리 벨트.
2) 정책 입법 포인트
- R&D 세액공제 상한 폐지·AI 특화 감가상각 5년 한시 100%.
- ‘AI 실직자 전환펀드’ 창설, 노동부 훈련예산 200억 달러 증액.
- 관세 재귀적 평가(자동 써셧) 조항으로 인플레 재점화 시 즉각 조정.
Ⅶ. 에필로그 — ‘생산성 기적’은 자동으로 오지 않는다
1990년대 후반 IT 호황은 닷컴 버블로 막을 내렸지만, 그 뒤에 총요소생산성 도약과 구글·애플·아마존이라는 플랫폼 제국의 기틀이 남았다. AI 슈퍼사이클도 마찬가지다. 자본은 흐르는 물
이다. 기술·교육·규제·금융 같은 다층적 수로가 갖춰질 때만 경제라는 호수에 깊은 물길을 낼 수 있다. 하드웨어 숫자에 도취된 단기 낙관이 정책 타이밍 실기로 이어진다면 버블 후유증은 더 깊어질 것이다.
생산성 부흥이냐, 버블 신드롬이냐. 결국 답은 ‘투자 2단계’—소프트웨어·R&D·인력 재교육—로 넘어가는 속도에 달려 있다. 남은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