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EU 통상 갈등, 30% 관세 시계 ‘째깍’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5년 7월 18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공화당 상원의원 만찬에서 연설하는 모습.
Photo by Allison Robbert/For The Washington Post via Getty Images
2025년 7월 21일, CNBC 뉴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 행정부는 유럽연합(EU)에 대해 8월 1일부터 30%의 기본 관세(baseline tariff)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하워드 러트닉(Howard Lutnick) 미 상무장관은 주말 CBS ‘페이스 더 네이션’ 인터뷰에서 “8월 1일은 ‘하드(hard) 데드라인’”이라며 “그날부터 새로운 관세율이 적용된다”고 못 박았다.
러트닉 장관은 “미국과 EU는 세계 최대 무역 파트너”라며 “결국 합의를 이뤄낼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그는
“8월 1일 이후에도 협상은 계속될 수 있지만, 그때부터는 관세가 부과되기 시작한다”
고 덧붙였다. 이는 EU가 마지노선 이전에 협상을 타결하지 못할 경우 즉각 비용 부담이 현실화된다는 의미다.
EU, 보복 관세 카드 ‘장전’…그러나 美 “실행 못 할 것”
EU는 30% 관세가 현실화하면 3단계 보복 조치에 돌입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첫 번째 단계로 1 최대 210억 유로 상당의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를 잠정 유예하고 있으며, 2 720억 유로 규모의 2차 리스트도 준비해 둔 상태다. 그러나 러트닉 장관은 이를 일축하며 “그들은 실제로 그런 조치를 취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EU 관계자는 CNBC에 “헝가리를 제외한 모든 회원국이 대미 강경 대응 기조로 기울었다”고 전했다.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예외로 분류된다.
복잡한 미·EU 통상구도, 영국·미국 합의와는 ‘결이 다르다’
EU는 영국이 지난 6월 체결한 영·미 무역협정과 유사한 수준, 즉 10% 기본 관세선으로 낮추기를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최소 15~20%를 고수하고, 자동차 관세(25%)는 유지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지난 18일 보도했다. 이는 독일 완성차 수출업체들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미국과 EU의 2024년 교역 규모는 1조 6,800억 유로(약 1조 9,600억 달러)에 달한다. 재화 부문에서 EU가 흑자를 냈지만, 서비스 부문에서는 적자를 기록해 전체로는 약 500억 유로 규모의 흑자를 거뒀다. 트럼프 대통령은 “EU가 무역 흑자로 이익을 본다”며 불균형을 지속적으로 문제 삼고 있다.
전문가 회의론 고조…“브뤼셀, 시간 촉박”
경제학자들과 애널리스트들은 “EU가 영국식 협정 틀을 재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미국과 EU 간에는 디지털세·농업보조금·규제 기준 등 복잡한 이슈가 얽혀 있어, 비교적 단순 구조의 영·미 협상과 달리 협상 난도가 높다는 설명이다.
특히 EU가 도입을 검토 중인 ‘반강제수단(anti-coercion instrument)’은 미국을 상대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역 대응 카드로 꼽힌다. 이는 EU 집행위원회에 광범위한 보복 권한을 부여하는 새 규정으로, 미 관세 압박에 맞춰 대규모 관세·투자 제한·수입 허가 보류 등을 단행할 수 있다.
이 같은 압박 속에서 EU 협상단은 ▲자동차 ▲철강 ▲항공우주 부문에서 차등·유예 조항을 추가해 관세율을 낮추는 방안을 미국 측에 제안했으나, 구체적 돌파구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낯선 용어 해설
• Baseline Tariff(기본 관세)란 협정 타결 전까지 일괄 적용되는 일종의 하한선 관세율을 의미한다. 이후 품목별 감면이 가능하다.
• Anti-Coercion Instrument(반강제수단)은 제3국의 일방적 경제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EU가 2023년 제정한 수단으로, 관세·투자 제한·정부조달 배제 등 포괄적 대응을 가능케 한다.
향후 일정과 시장 영향
무역전문가들은 “8월 1일 관세 발동이 현실화될 경우, 자동차·의류·농산물·주류 등 미국산 고가 소비재 가격이 즉시 오를 것”으로 전망한다. 아울러 EU 기업들의 미국 시장 점유율 하락, 역내 공급망 재편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대로 미국 소비자들은 유럽산 와인·치즈·럭셔리 브랜드 제품 가격 상승을 체감할 가능성이 높다. 투자은행들은 “고관세 국면 장기화 시, 유로존 GDP 성장률이 최대 0.4%p 둔화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제시했다.
현재 EU 집행위는 7월 말까지 최소 두 차례 고위급 협상을 추가로 진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협상 시한 연장은 없다”고 천명한 만큼, 양측이 합의문 초안을 확정하기에는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문가 시각
국제통상법 학자인 김민수 서울대 교수는 “30% 관세는 세계무역기구(WTO) 양허세율을 크게 상회하는 조치로, EU가 WTO 분쟁 해결 절차에 제소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그는 “WTO 분쟁 절차는 평균 2~3년이 소요돼 단기 대책으로는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뉴욕 소재 투자자문사인 애스펜 글로벌의 이은주 이사는 “관세 충돌이 현실화되면 달러 강세·유로 약세가 심화할 수 있다”며 “수입 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 우려로 이어져 연준(Fed)과 ECB의 통화정책에도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양측 모두 ‘치킨 게임’을 벌이는 상황에서, 시장은 8월 1일 이후 수 주간 발표될 교역·소비 지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