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월가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9월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에 더욱 무게를 두고 있다.
2025년 8월 12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시장 예상에 부합하는 ‘완만한 상승’에 그치면서, 직전 약세를 보인 고용지표와 맞물려 연준이 다음 회의에서 금리를 25bp(0.25%포인트)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이 크게 확대됐다.
같은 날 집계된 LSEG(구 리피니티브)의 금리선물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 자료에 따르면, 9월 인하 확률은 발표 직전 89%에서 발표 후 98%로 급등했다. 이는 사실상 시장 참가자 대부분이 인하를 ‘확정’에 가깝게 보고 있음을 뜻한다.
7월 CPI 세부 내용
미 노동부가 발표한 7월 CPI는 전월 대비 0.2% 상승했고, 전년 동월 대비로는 2.7% 올랐다. 시장 컨센서스는 각각 0.2%, 2.8%였다. 식품·에너지 등 변동성이 큰 항목을 제외한 근원 CPI는 전월 대비 0.3% 올라 1월 이후 최대폭을 기록했으며, 전년 대비로는 3.1% 상승해 6월(2.9%)보다 확대됐다.
이러한 결과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단행한 대규모 수입관세가 아직까지는 소비자물가에 본격 전가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금융시장에서는 ‘관세→투입물가 상승→소비자물가 급등’이라는 고전적 인플레이션 경로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시장 반응: 국채 금리·선물 지표
물가 지표 발표 직후, 연준 통화정책 변화에 민감한 미 국채 2년물 수익률은 3.749%에서 3.729%로 약 2bp 하락했다. 채권 가격이 상승했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금리 인하 기대가 커지면 단기물 금리가 먼저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시장은 더 뜨거운 물가를 조용히 예상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 모건스탠리IM 모기지·증권화투자 공동책임자 앤드루 슈추로브스키(Andrew Szczurowski)
그는 이어 “연준의 이중책무 가운데 완전고용 목표가 물가목표보다 더 어긋났다는 점이 명확해졌다”며, 고용지표 부진이 인하 필요성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고용지표와의 연계
앞서 발표된 7월 비농업부문 신규고용은 시장 예상치를 하회했으며, 5·6월 수치는 대폭 하향 조정됐다. 고용시장이 식어가고 있다는 신호가 누적되는 가운데, 연준 내부에서도 ‘실업률 안정’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투자자들은 9월 회의 이전에 발표될 8월 CPI·고용지표가 연준의 최종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지만, “단기간에 방향성을 뒤집을 정도의 강한 물가 압력은 나타나기 어렵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해석과 정치적 파장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CPI 발표를 ‘관세가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했다. 그는 SNS를 통해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들의 예측이 틀렸다”고 비판하며 “관세로 인한 가격 급등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한편, 조지프 라보르냐(Joseph Lavorgna) 재무부 장관 고문은 “수출업체들이 가격 인하를 통해 관세를 흡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지난 6개월간 물가상승률이 기대 이하였다는 사실 자체가 명백한 데이터”라며 ‘인플레이션 우려 과장론’을 폈다.
전문가 시각: 관세 효과 ‘지연 인식’
이에 대해 PIMCO의 이코노미스트 티파니 와일딩(Tiffany Wilding)은 근원 CPI가 연말께 3.4%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관세 비용이 소비자 가격으로 전가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 달 만에 가격이 껑충 뛸 것이라 기대해선 안 된다. 서서히 스며들 듯 나타날 것이다.” — PGIM 픽스드인컴 수석 이코노미스트 톰 포르첼리(Tom Porcelli)
이처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관세 인플레이션’ 시점과 강도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며, 연준의 정책 선택지는 데이터 흐름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할 전망이다.
용어 설명: CPI·2년물 수익률·bp
CPI(Consumer Price Index)는 미국 노동통계국(BLS)이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로, 일반 가계가 구매하는 상품·서비스 가격 변동을 측정한다.
2년물 국채 수익률은 만기가 2년인 미 재무부 발행 국채의 이자율이며, 연준 금리 전망을 민감하게 반영한다. bp(basis point)는 0.01%p를 뜻하는 금융단위다. 예컨대 25bp 인하는 정책금리가 0.25%p 내려가는 것을 의미한다.
BLS 수장 교체 후폭풍
정치권에서는 또 다른 변수로, 트럼프 대통령이 불과 열흘 전 BLS(미 노동통계국) 국장을 경질하고 E.J. 안토니를 신임 국장으로 지명한 사실이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고용지표가 조작됐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펴 논란을 일으켰다.
안토니 신임 국장은 BLS 통계 품질을 비판해온 인사로, 향후 발표되는 물가·고용 지표 신뢰성 문제까지 다시 도마에 오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전망과 투자전략
월가 채권 딜러들은 9월 인하가 단행될 경우, 단기물 포지션 축소·장기물 스티프닝 거래(장단기 금리차 확대 기대) 전략을 준비 중이다. 반면, 인하가 불발될 가능성 2%에 베팅하는 ‘고위험·고수익’ 전략도 소수지만 존재한다.
결국 관건은 8월 수치다. 물가·고용 양측 지표가 모두 연준 목표와 멀어진다면, 9월 인하는 기정사실로 굳을 전망이다. 반대로 물가가 갑작스레 치솟거나 고용이 예상 밖으로 개선될 경우, 제로금리 재진입 속도는 다소 늦춰질 수 있다.
투자자들은 이미 연말까지 최소 두 차례, 최대 세 차례의 인하를 선물 시장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달러화는 강세 압력이 다소 완화되고, 신흥국 통화·자산이 상대적으로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연준은 9월 회의(현지시간 9월 16~17일)에서 정책금리 결정을 내리며, 직전까지 발표되는 8월 CPI·고용보고서를 집중 검토할 예정이다. 시장의 시선이 “데이터 의존적”이라는 연준의 원칙이 실제로 어떻게 구현될지에 쏠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