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화물철도망의 구조적 단절이 물류 효율성을 떨어뜨리면서, 전체 공급망을 옥죄고 있다는 지적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열차 한 편이 동해안에서 서해안까지 거침없이 달릴 수 없는 현재의 파편화된 시스템이 기업 경쟁력과 국가 물류비용을 갉아먹는다는 분석이다.
2025년 7월 19일, 인베스팅닷컴 보도에 따르면 미국 경제의 약 12%만이 ‘단일 노선(싱글라인) 서비스’를 통해 전국 철도망과 직접 연결돼 있다. 다시 말해 열 곳 중 아홉 곳의 지역 경제가 최소 한 번 이상의 ‘철도 환적(인터체인지)’을 거쳐야 하며, 그 과정에서 비용·지연·운영 마찰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많은 화주들이 장거리 운송에서 철도를 외면하거나, 아예 대체 수단을 찾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 본토는 현재 동부·서부·남부·중서부 등 4대 철도 ‘영지(fiefdom)’로 나뉘어 있다. 19세기 말부터 이어져 온 맥락, 그리고 20세기 초반 반독점 규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지역별 거대 철도사들은 자사의 관할권 안에서 압도적 지배력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이들 간 선로·시스템·운영 규정이 완벽히 호환되지 않아 화물열차가 관할 구역을 벗어나는 순간 반드시 ‘핸드오프’(운용 권한 이양)가 필요하다.
‘핸드오프’ 과정에서는
차량 검사, 서류 재등록, 운송 일정 재조정
등이 함께 이뤄지며, 짧게는 수 시간에서 길게는 수십 시간까지 지연이 불가피하다. 이는 화주에게는 추가 운임과 창고료, 철도사에는 회전율 저하와 설비 유휴 시간을 의미한다.
이 같은 구조적 비효율을 해소하기 위해 월가 리서치 기관 번스타인(Bernstein) 분석팀은 ‘동·서부 대륙횡단 철도사 간 합병’이라는 해법을 제시했다. 번스타인은 “2001년 도입된 철도 합병 심사 강화 규정이 시장 경쟁을 보호하는 순기능도 있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전국 단일 철도망 구축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고 평가했다.
2001년 규정은 미국 연방표면교통위원회(STB)가 도입한 것으로, 합병 시 1경쟁 제한 우려, 2운임 상승 가능성, 3서비스 품질 저하를 엄격히 검증하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번스타인은 “화주 접근성(access) 보호라는 명분이 오히려 네트워크 통합(integration)을 막아 전체 비용 구조를 악화시키는 아이러니를 초래했다”고 꼬집었다.
단일 노선 서비스가 가져올 잠재적 경제 효과
철도 업계에서는 ‘Single-Line Service’를 통해 ① 운임 10~15% 절감, ② 평균 운송시간 20% 단축, ③ 차량 회전율 1.5배 개선 등의 효과를 기대한다. 선로·관제·규정이 한 회사에 일원화되면, 운영 계획을 더 정교하게 짜고, ‘핸드오프 리스크’를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70~1990년대 시행된 대형 철도 합병들은 대부분 비용 절감과 효율 증대를 입증했다.
역사적 맥락도 거론된다. 번스타인은 이번 연구 노트를 통해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1862년 태평양철도법(Pacific Railway Act)에 서명한 이후, 미국 대륙을 하나로 엮는 철도 프로젝트가 본궤도에 올랐다”며 “현대판 ‘제2의 태평양철도법’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그러나 규제 당국이 24년 만에 합병 제한을 완화할지는 미지수다. STB는 “경쟁은 철도 산업의 생명선”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화주 단체들도 ‘거대 독점’에 대한 우려를 거듭 제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글로벌 공급망이 팬데믹·지정학 갈등·기후 이슈 등으로 압박받는 상황에서, ‘대륙횡단 단일 철도망’ 논의는 끊임없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 진단과 전망
산업·교통정책 전문가들은 “철도는 트럭 대비 탄소배출을 75% 이상 줄일 수 있는 친환경 운송수단”이라며,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감안하면 통합 네트워크 구축이 사회적 편익도 크다고 평가한다. 다만 노조·지역사회·주당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규제 완화 → 합병 추진 → 인프라 투자’의 3단계가 매끄럽게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치적 설득 작업이 필수적이다.
번스타인 보고서는 “결국 게임 체인저는 화주(Shipper)들의 목소리”라고 결론내렸다. 만약 월마트·아마존·포드 같은 대형 제조·유통사가 “단일 노선 없이는 납품망을 재편하겠다”는 식으로 강력한 시그널을 보낸다면, 규제 정책도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용어 설명
싱글라인 서비스: 화물이 시작부터 끝까지 한 철도사 네트워크 안에서만 운송되는 방식. 환적이 없기 때문에 운송 시간과 비용이 줄어든다.
인터체인지: 관할이 다른 철도사 사이에서 화물열차를 인계·인수하는 절차. 선로 규격, 안전 규정, 통신·관제 시스템 차이로 인해 시간이 지연될 수 있다.
기자 견해
현재 구조는 일종의 역사적 타협의 산물이지만, ‘경쟁 보호’와 ‘공급망 효율’이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기 시작했다. 필자는 국가 차원의 로드맵이 없으면 민간 합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다. 이는 고속도로·전력망·통신망 구축과 유사하게, 연방 정부가 중장기 인프라 전략 아래 연방·주정부·민간의 역할을 재분배해야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화물열차는 여전히 국경 없는 대륙을 달리면서도 정작 ‘철도 국경선’ 앞에서 멈춰 서는 모순을 반복할 것이다.